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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덕의 사진이야기 - 진화하는 사진가
제2차 세계대전 후 사진은 신문, 잡지, 서적, 광고 등에 그 영역을 넓혀가기 시작하였다. 특히 컬러인쇄라는 새로운 기술의 등장으로, 때로는 실물보다 더 산뜻한 색으로 나타낼 수 있어 인간의 감각을 자극하는 강력한 정보매체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하였다.
세계는 마치 사진의 매력 속에 빠져버린 듯 모든 정보가 사진화되어 가는 환경 속에서, 영화와 TV라는 새로운 영상 미디어의 태동과 아울러 사진표현은 커다란 변화를 이루면서 나아가지 않으면 안되었다.
변화하는 기록
이와 같이 사진의 환경은 현실과 이미지의 경계가 불확실하게 되어버린 새로운 상황을 맞으면서, 지금까지 사진의 표현을 성립시켜 온 기본 틀에 또 다른 감각으로 눈을 돌리게 하였다. 또한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확립한 포토저널리즘 스타일은 잔혹한 전쟁사진에 의해 양심을 눈뜨게도 하는 반면, 양심을 마비시키기도 하는 모순된 이중 작용을 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사진가들은 보다 명확하게 피사체에 대한 자기의 감정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물론 사진가 자신의 비전은 훌륭한 사진창작을 위한 요소가 되지만, 과거의 포토저널리즘 사진가들은 자신의 방향이나 개성을 한정된 객관적 위치에서 찍는 것을 바람직하게 생각하였다.
그러나 저널리즘을 개인적인 시각과 기법으로 촬영하고자 하는 사진가들이 출현하기 시작하였다. 대표적으로 「라이프」지의 사진가로서 부상을 입어가며 세계대전에 종군한 유진 스미스는 기존의
「라이프」지의 스타일에 만족하지 않고 보다 개인적인 사진을 지향한 사진가였다. 또한 세계대전 이전의 포토저널리즘 양식을 배제하면서 신문, 잡지로부터 되도록이면 제약을 받지 않고 ‘개인적 시각’을 확립하기 위한 최초의 사진가 집단 『매그넘』을 결성한(1947년)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 로버트 카파, 데이비드 시모어 들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1955년 20C 사진계의 최대 이벤트라 할 수 있는 「인간가족(The Family of Man)」전이 개최되었다. 브레송과 카파 등 매그넘 멤버의 사진을 중심으로, 윌슨천문대의 망원카메라에 의한 오리온성운의 사진으로 시작하여, 「천국의 길」이라고 이름 붙여진 유진 스미스의 자녀를 찍은 사진으로 마무리를 한 「인간가족」전은 전쟁에 대한 회답으로써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개최되어 “지구의 모든 인간은 하나”라는 메시지를 각인시켜 준 장대한 휴먼 포토 스토리였다.
「인간가족」전은 그 후 세계 37개국에 순회 개최되었는데(1957년 서울 경복궁 미술관 개최), 과테말라에서는 고산지대의 수천 명 주민이 맨발로 산을 내려와 사진 앞에 진을 치고 감상하는 등 국적과 계층, 연령을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하였으며, 사진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려 보여 준 대사건이었다. 에드워드 스타이켄이 주도한 이 전시의 구성 방법은 합리적, 계몽적, 인간 중심적인 「라이프」지의 취지와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진은 차츰 일상생활에 사진이 보편화되어 가면서 사람들 사이에서 객관적인 사진 기록에 대한 의미와 감수성은 변질되어 갔다.
윌리암 클라인의 출현
1950년대의 새로운 사진표현은 사회와 인간성으로부터 단절되어 마음을 비워버린 눈으로 세계를 바라보기 시작하였다. 사진이 보편화된 상황 속에서 ‘보는 일’에 의문을 던지고 일상의 지각에서 탈피하여 자신이 보는 일과 사진을 지금까지는 없었던 기법으로 촬영하여 나타내려고 하는 의지가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러한 새로운 사진표현의 출현이 파리의 아메리카인으로 활약한 윌리암 클라인(William Klein 1928~ )의 「뉴욕」이란 사진집이다. 간판, 상표, 기호, 숫자, 전광판, 인간, 도로 등 뉴욕의 단편이 등가적이면서, 입자가 거칠며 콘트라스트가 강한 인화지를 사용한 이 사진집은 “뉴욕의 멋진 생활, 도약, 목격, 시끌법적한 소리” 라는 시니컬한 서브타이틀을 붙여 1956년 파리에서 출판되었다.
초점이 흐려 있고 원근감과 구성이 무시되어 거칠고 투박한 영상의 기법으로 인화지 상에 검은 농담으로 꿈틀거리는 듯 보이는 그의 사진집은, 무엇보다도 우선 ‘인간의 눈’이 붕괴되어가는 듯한 방향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들의 사진에는 지금까지의 사진표현에 익숙해져 있던 인간의 관심과 흥미는 완전히 사라지고, 사람들은 마치 무기물처럼 뉴욕 거리의 번잡스럽기까지 한 네온사인, 간판 등과 동화되어 있었다. 그것은 인간 의식의 암부와 충돌하는 것과 같이, 변모해가는 시대와 인간의 감정과 교차하는 듯한 새로운 다큐멘트의 모색이었다.
이와 같이 세계대전 후 인간의 내부에 꿈틀거리고 있던 새로운 감정은, 그것을 적확하게 나타내는 사진표현에 의해 사람들에게 그 양상을 인식시켜 갔다. 이러한 작업의 경향은 50년대와 60년대에 걸쳐서 여러 사진가들의 다양한 사진표현에 의해 선보이게 된다. 특히 그 중에서도 클라인의 사진과 함께 충격적이었던 것이 로버트 프랭크의 「어메리칸(The Americans)」(1958년)의 출판이었다.
개인적 영상
스위스 태생으로 미국으로 이주한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 1924~ )는 「인간가족」전에도 사진을 출품한 사진가였으며, 사진의 규범에서 벗어나 사람들의 일상으로 들어가 인간이 곁눈질로 언뜻 훔쳐 본 듯한 균형이 덜 잡히고 위태로우며 목표가 없는 영상들을 이 사진집에 제시하였다.
프랭크는 브레송이 주장한 ‘결정적 순간’을 찍은 사진은 현실의 진정한 세계를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인 프레임에 세상을 집어넣어 버리는 것으로 생각하고 “일상적인 무작위의 순간을 촬영하여도 그것이 행위의 정점이거나 무드가 달아오른 결정적인 순간일 필요는 없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어떤 종류의 유형이든 대상을 사진의 화면에 가져오는 일은 사진에서 정직함을 담아내는 것이다. 세계는 어지럽게 변해가고 있어 완전한 이미지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하였다.
그의 「어메리칸」은 현실을 객관적으로 찍어낸다는 지금까지의 사진관으로부터의 결별이었으며, 사진을 자신의 행동과 정신을 담아내는 것으로써 단편적이면서 직관적으로 인간의 일상과 경험을 사진영상으로 대응시켜 나간 것이었다. 그는 시간과 공간에서 무엇인가를 구상하지 않고 단지 그의 내면에 있어서의 진실한 무엇인가를 탐구하여, 때로는 익명의 사람들의 시선 속으로 잠입하여 들어갔다. 「어메리칸」은 어떤 의미에서 「라이프」지가 기록해 오던 미국의 뒷모습을 ‘이방인의 눈’으로 확인시켜 준 것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미국의 환경에 위화감을 상기시키면서 비인간적인 세계를 방황하는 미국인들의 모습을 찍은 이 사진들은, 「라이프」지의 인간미 넘치는 사진보도가 미국 사회에서의 다소 의도적인 시각이었음을 재확인시켜 주는 것이었다. 몹시 횅하고 잔혹하며, 고독하며 공허한 장소, 이것이 세계대전 이후의 인간의 심상적 풍경이며 변모해가는 시대의 모습이었다. 이는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감정을 다룬 최초의 사진이며 현대사진의 출발점이 되었다.
주관적 사진
같은 시기 독일의 오토 슈타이너트(Otto Steinert 1915~1978)는 ‘주관적 사진’이라는 새로운 사진의 양식을 제창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에 군의관으로 종군한 그는 1949년에 결성된 진보적 사진가 집단『포토포름』의 주요 멤버로서 정력적인 활동을 개시하여 1951년에 잘르부류켄 국립미술학교에서 「주관적 사진」전을 열고 1954년에 제2회전을, 1958년에 제3회전을 개최하는 등 50년대에 그의 사진개념을 널리 알려 커다란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
‘주관적 사진’이란 인간을 통한 개별적인 사진이라고도 하는데, 그 사진은 추상적인 포토그램에서 심리적인 내용을 나타내는 보도사진까지 범주에 포함하였다. 즉 ‘주관적 사진’이란 하나의 유파라기보다 사진 본연의 특징을 나타내는 말이다. 각각의 사진에 내포되어 있는 다양한 개념과 테마는 각각의 상상력의 영상이며 자신의 무의식과 대화하는 양식이기도 하였다.
슈타이너트는 사진을 인간 고유의 감성과 사상에 대한 각성의 수단으로 소생시켰다. 그것에는 또한 인간의 정신을 사진이라는 표현 수단에 의해서 눈에 보이는 것으로 만들려는 의지가 있었으며, 필연적으로 개개의 개념을 재정의하려는 것이었다. 이러한 사진관은 동시대 미국의 프레드릭 소마, 아론 시스킨드, 해리 캘러한과 프랑스의 에드워드 브바, 이지스, 윌리 로니 등의 작가들에게서도 공통적으로 엿볼 수 있다.
사진이 기록이라는 개념으로 확립된 20년대와 30년대에 걸쳐서의 인간과 사회는, 그 대상의 표현도 정지된 한 점의 위치에서 찍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세계대전 후 이러한 관점은 통용되지 않게 되었으며, 사회와 인간은 격심하게 변화하여 기록하는 사진가도 동시에 변화해가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이와 같이 사진 기록이라는 행위가 성립되기 위한 기반이 흔들린 이상, 그때까지의 사진표현은 점차 그 효력을 상실하여 갔다.
윌리암과 프랭크의 사진 혹은 캘러한과 시스킨드의 사진은, 일찍이 명료하였던 주체와 객체, 자신과 타인의 경계가 허물어져 가기 시작한 시대 상황 속에서 인간의 감성이 개입되기 시작한 것이었으며 이것이 심상적인 사진표현으로 정착되어 갔다.
이처럼 사진표현에 있어서 ‘주관’이라는 용어가 문제가 되었던 시대가 없었으며, ‘객관’이라는 어휘가 급속도로 그 의미를 상실해간 시대도 없었다. 그리고 사진의 기록은 있는 그대로 보이는 외면적인 현실뿐만 아니라, 거기에서 느껴지는 세계와 의식의 내부에 작용하는 느낌까지 도달하게끔 되었다. 이와 같이 사진은 50년대에서 60년대에 걸쳐서 시대의 현실과 개인의 현실을 함께 내포하며 새로운 비전으로 부상해 간 것이다.
글 / 강현덕(한국사진 학술교육분과위원)
- 이 글은 '한국사진'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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