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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덕의 사진이야기 - 인간과 환경의 사이
TV라는 새로운 미디어의 강력한 침투에 의해, 1960년 이후 그때까지 융성하였던 포토저널리즘은 후퇴하기 시작하였다. 그래프잡지도 점차 폐간되기 시작하였는데 그 중 1971년 「루크」지, 1972년「라이프」지가 폐간되었다. 이 시기 미국에서는 시민운동, 여성문제, 성혁명, 마약과 베트남전쟁 등 지금까지의 도덕관과 가치관이 뒤엉켜 복잡한 사회문제가 대두되었다. 이러한 시대 상황은 사진가들에게도 영향을 미쳐, 사진을 대하는 태도나 사진을 발표하는 장도 크게 변하기 시작하였다. 기존의 신문, 잡지뿐만 아니라 미술관, 화랑이라는 새로운 장으로도 사진이 진출하였다.
개인적인 시점
사진이 사회적으로 그 위력을 잃고 사진가 자신이 현실과 시대의 문제에 대해 한계를 느끼게 됨에 따라, 사진은 점점 사적이며 일상적인 요소를 내포하며 흘러가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사정과 관련하여 뉴욕현대미술관의 존 샤코우스키는 “베트남전쟁은 돌연 우리들에게 미국의 도덕적인 붕괴에 대해 가르쳐 주었다. 신문과 잡지에 게재되는 사진에는 아무런 내용도 찾아볼 수 없다. 마찬가지로 최근의 역사적인 사건을 취급하는 다른 사진에도 피상적이며 불선명한 것밖에 없다. 60년대의 시민운동 때 많은 신문과 잡지에 게재된 사진 중에서 대표적인 것은, 경찰견이 데모를 하는 사람을 물고 있는 표면적인 사진뿐이었다.”라고 하였다.
포토저널리즘의 쇠퇴는 대부분의 인간이 객관적인 입장에서 시대를 보는 것에서, 주관적이며 사적인 관점으로 세계와 현실을 보게 되는 시각의 이행이었다. 동시에 개인의 내면과 사회 환경의 심층을 접하게 되는 사진의 새로운 국면을 맞는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사진가들은 윌리암 크라인과 로버트 프랭크에 의해 1950년대 말에 제시된 사진표현의 새로운 방식을 기초로 하여, 그때까지 포토저널리즘에서 시도하지 않았던 시대와 사회성의 ‘심리적인 문제’, ‘내면적인 묘사’를 사진으로 표현하기 시작하였다.
대표적인 사진가로서는 주관적인 소설처럼 개인의 내면으로 접근을 시도한 랄프 깁슨과 개인의 방랑이라는 상황으로 새로운 테마를 만들어낸 요셉 쿠델카 등이 있다. 그들에 의해 제시된 사진은 감상적인 태도와 안이한 휴머니즘을 거부하고, 냉정하게 전개되는 사회현상으로 침투해 들어갔다. 또한 일상생활에 개인의 심리가 오버랩되면서 지금까지 보이지 않았던 현실감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1960년대에 이러한 과정은 서서히 진행되어 갔다.
사회적 풍경
조지 이스트만하우스에서 기획한 「컨템포러리 포토그래퍼-사회적 풍경을 향하여」전(1966년)은 이러한 새로운 사진가들의 움직임을 취합한 최초의 사진전이었다. 이 전시에는 리 프리들랜더, 게리 위노그랜드, 듀안 마이클, 브루스 데이비드슨, 대니 라이온 등 1960년대를 리드한 5명의 대표적인 사진가가 선출되었다. 그 내용은 초상, 정물, 보도, 예술사진이라는 사진의 기능적인 분류를 거부한 것으로, 종래의 사진관을 크게 뒤엎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전시는 결코 사진의 새로운 스타일을 표명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 전시를 기획한 네이상 라이온즈가 의도한 것은 사진가가 세계를 바라보는 자세를 떠올리게 하는 것이었으며, ‘인간과 환경’이라는 각도의 시각에 메스를 가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여기에 선별된 사진가들은 독자적인 사진관과 방법론을 가지고 있다. 게리 위노그랜드(Garry Winogrand 1928~1984)는 구겐하임 장학금으로 미국의 각지를 순회하며 ‘미국의 생활양식 기록’이라는 테마로 편견과 선입관을 배제한 새로운 시각을 개척한 사진가였다. 「인간가족」전에도 출품한 그는 1960년대 사회의 변화와 성과를 「퍼브릭 리레이션」이라는 사진집으로 발표하였는데, 여기에는 아폴로 11호 발사와 우주인, 학생데모, 모하메드 알리의 기자회견, 대통령 후보의 연설 등 대중이 모여듦에 따라 생기는 여러 가지 현상을 독특하고 순간적인 비전으로 포착하였다. 그의 사진은 대상을 내면화하여 주관을 표현한다는 것이 아니라, 찍어야만 하는 환경 조건에 근거하여 셔터를 누른다는 새로운 스냅 샷의 전형을 보여 주었다. “나는 사소한 현실 설령 그것이 하찮은 것이더라도 필름 상에 담아낸다. 그리고 만약 그 현실이 나 이외의 어느 누구에게도 무엇인가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그것으로 족하다.”고 말하는 그의 사진은 타이틀도 없이 촬영 장소와 일시만을 명기한 것만으로도, 물질문명의 정점에 도달해 있는 미국이라는 환경과 인간의 사이에 놓여있는 대상을 새로운 각도로 시원스럽게 부상시켰다.
또한 듀안 마이클(Duane Michals 1932~ )의 사진에는 「처녀의 꿈」, 「추락한 천사」라는 짧은 문구 형태의 이야기를 연출하기 위해 사진이 일러스트처럼 사용되었다. 몇 장의 사진이 연속적으로 나열되기 때문에 ‘시퀀스’로 불리우나, 마이클은 이러한 허구화된 시공을 사진으로 만들어냄에 따라, 사진이 사진으로 성립하는 과정과 사진을 사회 속의 한 일원으로서 자리매김하는 것을 목적으로 일반인에게 선보였다.
리 프리들랜더(Lee Friedlander 1934~ )도 자신의 일상 감각을 자기 나름으로 정착시키고자 사회 관찰과 문명 비평이 아닌 풍경으로의 접근을 시도하였다. 그가 구겐하임재단의 장학금을 받고 촬영여행을 했을 때의 테마는 ‘변해가는 미국의 풍경’이었다. 멤피스, 리 아베뉴라고 이름 붙인 무인의 폐허의 거리를 찍은 사진에는, 확실히 미국의 옛 풍경이 변하여 간 과정과 경험이 감도는 모습들이 중첩되어 있다.
이러한 작품의 경향에 대해 네이상 라이온즈는 “과거에 우리들은 사진가들의 작품을 다큐멘터리와 사회적 리얼리즘이라는 단어로 평가해 왔으나, 그것은 주제의 인식에 근거한 일반적인 고찰에 지나지 않았다. 「사회적 풍경을 향하여」는 새로운 장르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한 것이 아니라, ‘인간과 환경’의 풍경에 대한 개념을 확대한다고 하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강조하였다.
뉴 다큐멘트
환경에 대한 이러한 사진의 방향은 리 프리들랜더, 게리 위노그랜드와 다이안 아버스라는 특이한 여류 사진가들에 의해 보다 명료하게 제시되었다. 이들은 1967년 뉴욕현대미술관에서 「뉴 다큐멘트」전을 개최하였는데, 이 전시에서 특히 주목을 받은 것은 다이안 아버스의 사진이었다.
다이안 아버스(Diane Arbus 1923~1971)는 1950년대 어빙 펜, 리차드 아베돈의 사진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패션사진가였으며, 1960년대 초 「에스콰이어」, 「하퍼스바자」지 등 잡지를 무대로 하여 포토저널리스트로 전향하였다. 그 후 객관적인 시각에서 탈피하여 기인이나 성도착자를 모델로 한 극히 사적인 시각으로 미지의 영역을 추구해 나갔다. 이러한 그녀에 대해 샤코우스키는 “미국의 도덕적인 면과 그것이 붕괴되는 쇼킹함을 묘사해 낸 우수한 사진가”라고 하였는데, 그녀는 무엇보다도 1960년대라고 하는 특별한 시대 상황 속에서, 사진에 자기 자신이 아닌 타자성을 담아내려고 하였으며, 타인과 자신과의 관계를 묘사한 사진가였다.
그러나 그녀는 프리들랜더와 위노그랜드와는 결정적으로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훔쳐보거나 엿보는 듯한 스냅 샷의 관점에서 사진을 찍어낸 반면, 아버스는 어디까지나 대상을 정면으로 마주보고 피사체에 대한 엄밀한 정면성을 고집하였다. 프랭크나 크라인의 거리나 인물의 스냅사진이 스쳐 지나가면서 찍은 것이고 피사체와 깊은 연관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아버스의 사진은 극히 인간과의 만남과 대상과의 주고받음 그리고 인간을 직접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사진기를 통해서 피사체와 신체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주고받으며, 현실 속에서의 자신이 피사체의 타인으로 변해가는 과정과 그 인간성에 감응하려고 하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자기의 해체
아버스는 1960년대를 통해 그러한 극한적인 사진행위를 계속하다 아쉽게도 1971년 자살하고 만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무렵부터 사진가들 사이에서는 셀프 포토레이트가 유행하게 된다. 프리들랜더는 거울과 창문에 반영된 자신의 모습을 피사체로 한 연작을 「셀프 포트레이트」라는 타이틀로 1971년 발표하였다. 쇼 윈도우나 호텔의 거울에 비친 자신만을 찍은 이 사진들은 사물이나 자신의 내면이 결여된 차원의 상황을 엿볼 수가 있다.
사진의 무명성이라는 것에 관심을 끌어간 프리들랜더는 자기의 소멸이라는 상황을 마치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을 찍는 것처럼 사진화하여 갔다. 또 마케도니아에서 미국으로 귀화한 루카스 사마라스는 셀프 포트레이트를 보다 급진적으로 전개하였다. 그는 자신의 모습을 인스탄트사진으로 찍어 채색을 하거나 자국을 내고 이물질을 붙이기도 하여 자신의 내면을 철저히 배제하였다. 이러한 셀프 포트레이트는 일상적인 사물이나 자신을 찍는 행위가 아니라, 무명화한 오브제의 변용을 반복해 나간 것이었으며 인위적으로 재구성한 것이었다.
1960년대 말부터 두드러진 현상으로 다큐멘트에서 픽션으로 넘어가려는 사진의 새로운 전개 방향은 이러한 작가들의 움직임과 무관하지 않다. 로버트 하이네켄, 제리 율스만, 레이 메카 등 일명 이미지파로 불리는 사진가들은 해체된 자기의 지평에서 인위적인 사진표현을 시도하였다. 이들 이미지파의 사진 대부분은 사진의 기본적인 특성으로 노광이 될 때의 기계적인 스트레스성 사진이 아니라, 사진기로 촬영된 이미지를 몽타주, 꼴라주, 암실기법 등으로 크게 변화된 사진들이었다. 그 무렵의 이러한 인위적인 사진은 모조품처럼 생각되었지만, 참신한 시각을 제시하는 새로운 사진가들의 등장으로 그러한 편견은 서서히 사라져갔다.
그들은 사진영상을 이용하면서 일상의 주변에 퍼져있는 모든 이미지를 객체화시켜 인위적인 시각 정보가 넘쳐나는 사진 환경을 만들어갔다. 그리고 미디어의 발달과 함께 사진가인 인간과 인간이 살아가는 환경의 틈새 속에서 사람들에게 널리 새로운 사진 이미지를 부각시켜갔다.
글 / 강현덕(한국사진 학술교육분과위원)
- 이 글은 '한국사진'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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