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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덕의 사진이야기 - 빛의 묵시록
1980년대 새로운 사진표현을 시도한 사진가들의 작품을 수록한 사진집이 「뉴 디렉션」이다. 이를 편집한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 웨스톤 네프는 1978년경을 기준으로 사진을 ‘찍는take’ 시대에서 ‘만드는make’ 시대로 넘어갔다고 지적하였다.
너무 광범위한 구분이기는 하나, 1978년은 존 샤코우스키의 디렉션으로 뉴욕현대미술관에서 「1960년대 이후의 미국사진-거울과 창」이라는 중요한 사진전이 열렸던 해이기도 하다. 이 전시에서 샤코우스키는 1960년대 이후 사진의 흐름을 파악하여, 20C 전반에 확립된 근대사진이 20C 후반에 어떻게 변화하였는지를 분석하였다.
사진표현의 붕괴
그는 「거울과 창」전을 기준으로, 사진을 자기표현의 수단으로 하는 ‘거울’파와 사진을 외형의 탐구를 위한 수단으로 하는 ‘창’파로 나누어, 다양한 사진표현의 세계에 하나의 축을 구축하려고 하였으나 명쾌한 해답을 도출하지 못하였다. 한편 1970년대 후반 이후 인간과 사회현실을 중심으로 사진을 표현하는 사진가들의 사고와 가치관이 크게 흔들리게 된다. 이들은 현실의 세계에서 자신을 중심으로 일어날 수 있는 가공의 세계를 연출하고 조합하여 다양한 이미지로써 표현의 영역을 넓혀갔다.
대표적으로 신디 셔먼은 자신이 직접 모델이 되어 자기의 몸짓, 시선, 배경, 의상 등으로 영화배우나 TV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연출하여 「무제 필름 스틸」이라는 시리즈를 1978년 발표하였다. 올리비아 파커도 이 해에 소녀와 같은 섬세한 감수성으로 소재를 조합하여, 불가사의한 정감을 표출한 사진집 「사인즈 오브 라이프」를 출판하였다.
프랑스에서도 같은 시기 베르나르 포콩이 소년의 마네킹에 옷을 입혀 실내나 실외에 배치시켜 촬영한 유년일기와 같은 사진집 「여름방학」을 출판하였다. 독일에서도 아르노 얀센이 곤충, 금속, 식물 등으로 초현실주의적 구성으로 조합한 신주관주의사진을 제창하였다. 또 영국의 데이비드 호크니도 풍경을 인스탄트 카메라로 촬영하고 이를 시간과 공간의 흐름인 모자이크 상태로 조합하여, 보통 사진의 크기를 초월한 대형사진으로 작화하는 방법을 선보였다. 게다가 샌디 스코글런드는 원색으로 칠한 실내공간에 고양이나 고기의 오브제를 배치하고 그 속에 실재 인물을 배치하는 설치 촬영을 하였다. 또 바바라 카스틴도 러시아의 구성주의와 바우하우스의 공간이론에 영감을 얻어 유리, 거울, 금속 등의 구성물을 대형 사진기로 촬영하였다.
웨스톤 네프는 샤코우스키의 「거울과 창」의 이분법을 근거로, 이러한 사진가들의 작품은 그들이 사진의 표현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그 형식 자체를 재구성하여 나타낸 것이라고 하였다. 1970년대까지의 사진을 객관성과 주관성에 입각하여 작가의 의도를 나타낸 것이라면, 1980년대에 와서는 그러한 사진특성을 용해시켜 그 경계가 불분명하고 다양한 표현의 스타일과 접근으로, 무엇인가 설명할 수 없는 경지로 만들어내기 시작하였다고 지적하였다.
이러한 새로운 사진은 현실을 포착한다고 하는 기존의 사진 특성과 본질을 완전히 무시하고, 개인의 꿈과 기억 등의 경험에 근거하여 마치 게임을 즐기듯 허구의 세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이들 사진의 모든 요소는 표면적이며 현실세계에 존재하면서도 그 진실성이 결여되어 있다. 그들의 발상은 사회와 자연, 현실과 인간이라는 원천에서가 아니라, TV와 영화, 회화와 광고 등의 이미지에서 차용한 것들이다. 그들은 현재의 시간과 과거의 시간을 등가적으로 수용하여, 과거의 형태와 현재의 형태를 동일한 방법으로 구성하였다. 또한 현실에서가 아닌 미디어에 의한 다양한 인식으로 축적되어 온 기억과 감정을 합성하여, 이것을 재차 새로운 공간 속으로 입체화시켜 갔다.
뉴 컬러 운동
이러한 사진은 지금까지의 사고로서는 찍을 수 없었던 것이었으며, 사진이라는 표현형식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만드는 사진’은 우리들 사회 주변의 커다란 환경 변화에 주목한 것이기도 하나, 무엇보다도 뉴 컬러 운동이라는 움직임과도 연관이 있었다. 예를 들어 지금까지의 사진표현은 흑백사진으로 한정되어 있었지만, 1970년대 후반부터 사진가들은 컬러사진에 주목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다이트랜스퍼와 색확산전자방식이라는 새로운 색채표현의 지평으로 빛과 색을 미세하게 조절하고, 현실의 색채와는 다른 복잡한 색 재현으로 정교한 톤과 광선을 만들어내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뉴 컬러 운동에 앞장선 사진가가 윌리암 이글스톤이었다. 그는 1976년 뉴욕현대미술관에서 당시로서는 흑백보다 다소 예술적 감각이 떨어진다는 컬러사진으로 피사체에 대한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하여, 진지하고도 엄숙한 컬러사진의 가능성을 폭넓게 제시하였다. 또 조엘 메이에로위츠도 8×10의 대형 카메라로 미국의 각지를 촬영하여, 1979년 뉴 컬러 붐의 계기가 된 사진집 「케이프라이트」를 발표하였다. 그는 현상과 인화 등 모든 공정을 자신이 처리하여, 빛과 색의 뉘앙스를 잘 나타내기 위해 수차례에 걸쳐 색감을 조절하였다. 그리하여 사진의 컬러에 대한 독특한 감수성을 시험해가면서, 시대에 부응한 풍부한 색채감각의 세계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들의 컬러사진에서 가능성을 감지한 조엘 스턴펠드와 스티븐 쇼아 등 젊은 사진가들도, 1980년대 변모해가는 미국의 색깔을 독자적인 방법으로 만들어 갔다. 즉 그들은 이러한 컬러의 풍경을 예전과 같이 자연에 대한 관조나 묘사가 아니라, 사회 환경과 시대 정신의 정밀한 기록을 위해 사용하였다.
변하는 지형
이러한 경향은 인간사회가 급속도로 변해가는 지형을 그려내는 뉴 토포그래픽이라 불리우는 사진가들의 정신과도 맥을 같이한다. 이러한 흐름은 조지 이스트만하우스에서 열린 「뉴 토포그래픽-인간이 변화시킨 풍경사진」전에서도 보듯, 이들의 사진은 F64그룹이 촬영한 미국의 자연사진도 아니며, 마이너 화이트나 아론 시스킨드가 보여준 추상적인 풍경도 아니다. 단지 도시의 주변에 너저분하게 펼쳐져 있는 교외, 공장단지, 끝없이 뻗어있는 하이웨이 경관, 재해가 덮친 지방도시의 풍경일 뿐이다.
대표적인 사진가로는 핵무기 공장지대를 장엄하면서도 음침한 광경으로 촬영한 로버트 아담스, 원자력발전소와 수력발전소의 거대한 에너지를 내뿜는 풍경을 기록한 존 포르 그리고 도시화되어가는 서부의 황폐한 황야를 촬영한 루이스 볼트 등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러한 내용들을 고발하거나 규탄하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지리학자가 경관을 세밀하게 기록하듯 그 풍광을 바라보고 응시할 뿐이었다. 그리고 건조한 사막의 화재나 핵폐기물로 몸살을 앓고 있는 대지를 촬영한 리차드 미즈락, 불타 버린 해변가의 주택 내부에서 변해가는 자연의 모습을 투시한 존 디보라 등 많은 사진가들은 변모해가는 미국의 시대상에 따른 풍광과 지형을 담아내었다.
종말의 비전
이 무렵 사진표현의 또 다른 특징 중의 하나는 근원적인 신체표현이라는 주제이다. 조이스 바르니오, 아리스 오디론, 얀 사우덱 등 많은 사진가들이 인간의 육체를 사진으로 묘사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로버트 메이플소프가 대표적인 작가라 할 수 있다. 그의 사진은 육체의 극한 상황을 신선하면서도 극명하게 나타내었다. 그에게 있어서 인간의 몸은 인체라기보다 오히려 오브제로서의 대상물에 가까우며 무기물질과 같은 물체로 변해버린다. 미세하게 빛을 컨트롤해가며 육체의 조형세계를 사진으로 승화시킨 그는 현실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표현을 위해 모든 에너지를 집중시켰다. 그는 에이즈로 1989년 세상을 떠났으나, 그 이전 죽음과 직면하여 자기의 육체를 마치 물질과 같이 냉철한 과학자의 안목으로 정착시켰다. 그러므로 그의 사진은 변모하는 한 시점에 있어서 큰 획을 그어놓은 결정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변화의 물결에 요동치는 인간들의 육체표현은 조엘 피터 위트킨이라는 사진가에 의해 더욱 난해하게 드러난다. 양성구유자, 해부사체, 박제 원숭이, 성기와 뿔과 꼬리 등 육체와 그의 단편들을 아말감 상으로 검은 화면 속에 집합시킨 그의 사진은, 이른바 기능을 상실한 인간 잔해의 집하장과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1985년에 출판된 사진집 「위트킨」에 담긴 죽음의 이미지와 심볼들을 보면, 무엇보다도 우리들 주변의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죽음의 강박관념을 현재화시킨 것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1980년대의 사진표현에는 어딘가 모르게 묵시록적인 비전이 공통적으로 흘러오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육체를 촬영한 사진에서도, 풍경을 촬영한 사진에서도, 오브제와 예술적 공간을 취급한 사진에서도 모두 공통된 기묘한 톤이 함축되어 있다. 예를 들어 삶이 정지된 인형이나 오브제를 소재로 생을 이야기 한다거나, 인간이 인조인간이나 괴물로 치환되기도 하고, 풍경 속에서 미래의 참극을 예견하거나 죽음의 세계에 대한 기억의 단편을 재구성한다거나 하는 것들이다.
셔먼과 메이플소프와 위트킨의 사진은 이러한 시대 상황에 대한 신체의 저항으로 보이기도 하며, 때로는 거기에 남겨진 인간의 허물을 보는 듯하기도 하다. 즉 사진 속에서 하나의 인간 개념의 종말을 각인시켜 보여주었다.
이러한 사진표현의 방향은 사진과 필름의 물질적인 미디어에서, TV나 비디오와 같은 비물질적인 미디어에의 이행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지금과 같이 아날로그사진에서 디지털사진으로 급속도로 진보되어 왔듯이, 사진표현에 있어서도 사진을 찍는다고 하는 그 자체의 속성이 농후하게 상실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발명으로부터 169년의 궤적에서 사진은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다양한 표현을 창조하여 왔다. 현재의 메커니즘이나 표현의 양식으로 보아 사진술은 어느 정도 정점에 도달해 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이후에도 사진 그 자체는 과학기술과 미디어의 발전과 연계하여 새로운 표현을 시도하고 만들어낼 것이다. 지금의 디지털화한 사진의 공정과 매체의 기술적 편리함에 익숙해져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금까지 우리가 향유하여 온 사진에 대한 사고와 또 다른 구조를 가지게 될지도 모른다.
어쨌든 사진은 그동안 지나온 시간과 시대의 변천과 함께 역사의 침전물로 그리고 빛의 묵시록으로서 우리들의 삶을 주시해오고 있는 것이다.
글 / 강현덕(한국사진 학술교육분과위원)
- 이 글은 '한국사진'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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