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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841의 휴가 - 이규철
군인841의 휴가 (촬영1990-1991년)
- 사진가 이규철
작가의 인터뷰 중에서...
"...가장 애정이 가는 것은 군대작업입니다. 그리고 최근에 전시한 ‘달빛 소금에 머물다’가 작업을 하면서 가장 행복했던 사진입니다. 군대는 대한민국 관계의 축소판입니다. 계급, 조직사회의 특성을 알게 되면서 우리 모두는 20대 이후의 삶을 지배하는 의식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게 되지요.
야생에서 뛰놀던 아이들이 가축처럼 애완견 길들여지고 모난 부분이 깎여지면서 조직성에 길들여지는 느낌, 흔히 철들다 는 것과 획일화된다는 것과 사회화된다는 것, 순수함의 차이가 극명하게 갈리는 시기가 아 닐까. 관찰자의 시점을 갖게 되어요. 절절한 한 사람의 심정의 변화를 느끼기도 하고, 고참이 될수록 이미 조직에 자연스럽게 물든 나를 비인권적인 것들이 자연스러운 일상처럼 보여지게 되는 내 모습을 보게 됩니다.
예를 들어 내가 당하고 을 때의 있을때의얼차례가 주변동류가 당하고 있을 때의 계급의 변화에서 나오는 거리감, 피해자였던 적이 있었다가 가해자가 되었무뎌짐 같은 것들. 군대 내에서는 보통의 경우에 시간이 계급을 만들어줘요. 시간이 관계의 우위에 서게 만들죠. 소위 짠밥으로 표현 할 수 있어요. 작은 스튜디오 안에서도 은근히 군대문화가 상존하고 있어요. 모든 만남에 있어서 적용되는 것을 볼 수 있어요.
내가 처한 상황과 표현, 표출하고 싶은데 내적인 것을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이었습니다. 논농사지면서 들 일하면서 노래를 부르듯,감정의 정화처럼 저도 나를 정화시키는 작용을 해요. 카메라를 드는 순간 상황에서 한 발짝 떨어져 객관화시키는 위치에 서게 되요. 대상 을 사유하게 하고, 사진으로 발견하게 되는 나이라기보다는 그 느낌을‘사진적’으로 담아낼까 하는 스스로에게는 성찰의 시기였어요..."
글/ 강제욱 (사진가, 기획자)
평론 : 병사의 얼굴, 우리 시대의 압축 파일 ('군인841의 휴가’촬영1990-1991년)
나는 아직도 그 숫자를 외운다. 1306으로 시작되는 그 여덟 자리 숫자. 군번. 집 떠나 살던 20대 후반에는 제 생일도 찾아먹지 못하던 위인이 군복을 벗은 지 어느덧 20년째인데도 군번은 물론 입대일과 제대한 날짜를 기억하고 있다. 스무 살이던 그해 3월7일, 나는 논산훈련소 입구에서 더벅머리를 깎았고, 스물두살이던 그해 8월10일, 나는 ‘따블백’을 메고 서울로 복귀했다.
사진가 이규철이 내 앞에 펼쳐놓은 흑백 사진을 보는 순간, 나는 훌쩍 22년 전, 그 봄날로 돌아가 있었다. 특히 내무반 바닥에 ‘원산폭격’을 하는 사진이나, 바짝 군기가 들어 있는 신병의 굳은 표정, 철조망 앞에서 편지를 읽는 모습, 담배를 피우거나 샤워를 하는 장면을 나는 쉽게 지나치지 못했다. 거기 내 스무살 푸른 시절이 그대로 담겨 있었던 것이다.
아, 그때 나에게 쏟아지던 고참들의 쇳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대가리 박아!” “어쭈, 동작 봐라” “노래 일발 장전” 전투화를 닦던 구두약과 ‘짬밥’(혹은 식당) 냄새가 화약 냄새보다 더 생생한 까닭은 무엇일까.
생각난다. ‘이빨을 보였다간 맞아죽던’ 신병 시절, 작대기 두 개가 얼마나 부러웠던가. 제대 한 달을 앞둔 고참은 그야말로 무슨 할아버지처럼 보였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매번 속아왔다. 초등학교 1학년 때는 6학년이 얼마나 커 보였는지. 중1 때는 중3 형들이 어른처럼 보였고, 고1 때는 고 3 선배들이 세상을 다 아는 성인(聖人)처럼 보이지 않았던가. 그러나 정작 그 나이에 이르러 보면, 아무 것도 아니었으니, 이같은 ‘배신감’이 어디 나 혼자만의 체험이랴.
사진이 일상화한 이후, 사람들은 저마다 통과의례를 사진에 담아왔다. 첫돌, 입학과 졸업식, 결혼식, 회갑연 등을 기록한 사진들은 각자에게 중요한, 아니 결정적인 알리바이이다. 그 사진 속의 주인공들은, 간혹 삶이 무겁고 구차스러울 때 그 사진을 꺼내 들고, 그때 가졌던 꿈과 각오를 떠올리며, 다시 불끈 주먹을 쥐곤 한다.
통과의례 사진이 갖고 있는 힘은 그 사진이 갖는 일회성과 개인성 때문이다. 통과의례는 언제나 단 한 번이고, 사진 속의 인물은 이 세상에서 유일한 존재다. 저마다 주인공이다. 통과의례 사진은 개인사의 압축 파일인 것이다.
군대에서 찍은 사진이 한 장도 없는 나 같은 사람에게 이규철의 사진이 갖고 있는 의미와 기능은 각별하다. 이규철의 군대 사진은 분명 한 사람의 젊은 병사를 찍은 사진이다. 하지만 그 사진의 얼굴, 실존하는 유일무이한 피사체는 지워진다. 그 자리에 그 사진을 보는 관객의 얼굴이 들어선다. 이규철은 ‘한 사람의 군인’을 찍었지만, 대한민국의 성인 남성의 초상을 찍은 것이다(영화 <친구>를 본 386세대들은 모두 ‘저건 나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야’라고 말한다고 한다). 사진의 사회적 기능이 이렇게 큰 경우란 흔치 않다.
군대에서 사진병으로 근무했더라도 관심을 두지 않았을 병영의 일상을 포착하고 그것을 오래 간수해온 이규철의 작가 정신은 빼어난 것이다. ‘선견지명’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이 이상한 병사(그는 사진병이 아니었다)에게 총 대신 카메라를 허락한 지휘관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그 지휘관이 없었다면, 아마 한국 사진 역사는 아직도 제대로 된 ‘병사의 얼굴’을 소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대권 후보 아들이 병역을 기피했느냐, 안 했느냐, 허 모 일병의 죽음이 자살이냐, 타살이냐, 양심적 병역 거부를 수용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 등의 문제를 놓고 매체들이 연일 시끄럽다. 하지만 나는 이규철의 이번 사진전 옆에다 위와 같은 사회적 논란을 끌어다 놓고 싶지 않다. 시대적 맥락은 저 사진 속의 젊은 병사는 물론, 여기 이 중년의 관객의 내면에 이미 작동해 왔거니와, 좋든 나쁘든 이른바 ‘군사문화’는 우리들 무의식의 차원으로까지 내려가 있지 않은가. 오늘 밤 꿈속에서 ‘기상!’ 소리를 듣고 벌떡 일어날지도 모르겠다.
글/ 이문재(시인‘시사저널’편집위원)
보도 자료 :
KBS 인터뷰 중 (2002)
Arts N 매거진 (2002)
3asian.com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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