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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와 체모
시체와 체모
몇 달 전쯤 사진전을 기획한 적이 있었다.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50쪽이 넘는 전시 도록도 마지막 교정만을 남겨둔 상태에서 갤러리 측에서 갑자기 스톱을 걸었다. 전시가 예정되었던 40여 점의 사진 가운데에 들어있는, 해부하다가 만 사체들과 출산 장면을 찍은 사진이 문제가 된 것이다. 또 얼마 전에는 이것도 필자가 기획해서 출판한 누드사진 촬영기법서가 “여성의 유두를 비롯하여 체모, 둔부가 적나라하게 노출된 선정적인 사진들을 대량 수록하고 있다.”는 이유로 재제 결정통보를 받고, 급기야는 관계당국에 의해서 출판사 등록이 취소되는 사태에까지 이르고 만 것이다.
시체를 찍은 사진이나 체모가 드러난 누드 사진집을 보여주면 사람들은 거의 반사적으로 ‘이런 사진을 보여주어도 되는 것인가’ 하는, 놀란 듯한 얼굴을 한다. 보고 싶지 않은 것도 아니고, 또 그런 사진들을 보아서는 안될 특별한 이유나 법적인 근거를 대지도 못하지만, 누구나 그것이 당연한 사회적인 금기라고 처음부터 굳게 믿어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죽음도 체모도 자연스러운 인간의 속성이다. 어느 누구도 죽음을 외면할 수 없고, 체모도 역시 정상적인 신체의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철학은 발생이래, 삶의 문제와 마찬가지로 죽음을 가장 중요한 중심과제로 삼아왔고, 예술에 있어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그렇지 않고서야 죽음과 성의 모습들이 그처럼 많은 예술표현의 주제로서 작품 가운데 그렇게 자주 다뤄져 왔을 리가 없다.
그럼에도, 분별력이 약한 대중들을 대신해서 그것이 유익한 일인지 아니면 해로운 일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 특별한 권위와 의무를 부여 받은 ‘관계자’ 이외의 사람들에게는 사체나 체모가 나오는 사진은 제작해서도 안 되고, 보여 주어서도 안 된다는 얘기다.
하지만 다시 한번 말하지만 죽음도 체모(성)도 인간이 가진 자연의 속성이다. 사회의 문제가 아니라 어느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자기 자신의 문제다.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도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지 않고 살아도 좋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그것이 진정 선량한 사람들에게 수치심을 주거나, 청소년들의 건강한 정신에 해를 주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런 사진은 그냥 놓아두어도 자연히 도태되어 버리고 말 것이다. 어느 누구도 그처럼 혐오스런 사진을 언제까지나 들어다 보고 있으려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고, 또 억지로 금지시킨다고 해서 없어질 성질의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20여 년 전쯤의 프랑스에서, 그리고 80년대 이래의 일본에서도 사진에 있어서의 체모와 사체의 표현에 관한 문제가 사회적인 이슈로서 큰 논의를 불러일으킨 적이 있다. 지금은 어느 나라에서도 누드는 유두나 체모와 같은 특정한 부위가 가려지는 일 없이 자연 그대로 표현되고 있다. 그로 인해 특별히 청소년의 성범죄가 늘어났다거나, 사회질서와 미풍양속이 파괴되었다는 얘기는 아직 들어본 적이 없다. 누구나 마음만 먹는다면 누드사진이 실린 잡지나 사진집 따위를 우리 주변에서 입수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저질의 주간지에서부터 고급 월간지에 이르기까지 누드사진이 범람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다만 다른 것은 그 누드들은 유두나 체모가 보이지 않도록 포즈를 취하고 있거나 의상으로 가리고 있다는 점이다.
요컨데 통념상 가려야 할 곳만 가린다면, 그것이 아무리 명확하고 노골적으로 성적인 자극을 의도한 것이라 할지라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제의 본질은 체모나 유두, 그 자체에 있다가 보다는 그것을 드러내 보여주는 것을 반윤리적인 것으로 바라보는 인식과 그런 의식을 과도하게 조장해서 교묘하게 권력에 이용하려는 제도 자체에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성이나 누드는 예술이나 일상적인 광고와 같은 대중문화 속에서 현대의 표현분야의 하나로서 이미 깊숙하게 자리잡고 있으며, 그것을 어느 정도로 세련되고 매력적인 표현으로 끌어올리는가는 예술의 표현자들에게 맡겨진 역할이다. 전근대적이고 일률적인 기준에 따라 옥석을 가리지 않고 성에 관한 모든 표현 자체를 배제하려는 것은 자칫 전체주의적인 발상으로 오해 받을 수도 있다. 청소년들에 대한 악영향을 우려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것은 어쩌면 청소년들이 스스로 가치에 대해서 분별할 능력이 없다는 일방적인 인식이나, 아니면 가정과 사회에서 청소년들을 교육시킬 수 없다는 어른들의 자신감의 상실에 많은 부분 기인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폐쇄적인 종교국가나 보수적인 사회에서는 육체와 성에 대한 권력의 개입을 인정하는 예를 자주 볼 수 있지만,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성숙된 민주사회에서의 권력의 개입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개발도상국의 범주에서 벗어나 선진국의 대열에 진입하려는 한국은 지금 국제화와 세계화라는 시대적인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 적극적인 개방정책을 펴나가고 있다 정치와 경제의 분야에서 뿐만 아니라 문화와 예술의 분야에서도 그에 못지않은 개방과 선진화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지난 수십 년간 불균형하게 추진되어 나온 경제 일변도의 정책으로 인하여 우리가 문화의 모든 장면에서 어떤 대가들을 치르고 있는가를 돌이켜 생각해 볼 때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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