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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설과 예술
5년 전쯤인가, 뉴욕 소호지역에 있는 헌책방에서 메이플소프의 사진집을 산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만 공항에서 세관원에게 창피를 당했다. 책을 뺏기기까지는 하지 않았지만 낫살이나 먹은 사람이 이상한 사진집을 들고 다닌다는 식으로 빤히 바라보던 세관원의 눈초리가 따가웠던 것이 기억난다.
검은 슈츠 바지가랑이로 삐어져 나온 흑인 남성의 거대한 성기나,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노골적인 포즈를 찍은 사진은 우선은 누구 눈에도 충격적으로 비친다. 그렇다고 해서 양가집 규수가 아닌 다음에야 메이플소프의 그런 사진들을 보고 추악하다거나 성욕을 느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것은 섬세한 프린트의 질이나 화면구성, 광선 같은 것들이 너무 치밀하고 완벽하게 구사되어 있고, 어떤 잡스러운 생각도 끼여들 여지가 없을 정도로 모든 것들이 너무 아름답게 펼쳐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마디로 “아, 성기를 찍은 사진도 예술이 될 수 있구나.”라고 느낄 수 있게 만드는 그런 사진이다. 나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음에도 세관원의 눈초리는 따갑게 느껴졌다. 아마도 오랜 버릇처럼 그런 사진을 들고 다니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는 도덕적인 규제를 나 자신에게 걸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외설이란 무엇일까? 오래된 질문이고, 아직 누구도 마지막 해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질문이다. 성기, 그 자체인가? 알몸인가? 성행위인가, 아니면 성행위를 하고 있는 사람인가? 성적 행위를 남에게 드러내 보여주는 사람인가? 그렇다면 남이 볼 수 없는 은밀한 장소에서 나누는 성행위는 외설이 아닌가? 성행위나 성행위를 찍은 사진을 보는 행위는 외설인가? 외설적인 것을 보는 것도 외설인가? 외설은 국가가 나서서 형법으로 단속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 각자가 알아서 규제해야 하는가? 어떤 금지의 기준을 적용시켜야 하는가? … 질문은 끝없이 이어지지만 적당한 대답은 없다.
외설이란 무엇인가
스포츠신문의 사건보도나 연예인 관계 가십 성 기사, TV의 심야프로그램, 여성 잡지의 속옷 광고에 나오는 반라의 모델사진 같은 것들은 보통의 상상력을 가진 보통 사람에게도 성적 흥분을 일으키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상품을 파는 기업도 광고를 싣는 잡지들도 보여주는 쪽에서는 당연히 그런 반응을 기대할 것이다. 대중매체를 통해서 미성년자를 포함한 불특정 다수의 눈에 공공연하게 노출시키고 있지만, 그런 대중매체들이나 사진을 찍은 사람들이 외설죄로 붙잡혀 갔다는 얘기를 아직 듣지 못했다. 얼마 전에 아라키 노부요시(荒木經惟)와 앙드레 세라노의 사진이 번듯한 미술관에서 공개되었을 때만 해도 우리나라가 관대한 탓인지 무지한 탓인지는 몰라도 관헌의 단속을 받았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성범죄와 마찬가지로 외설죄는 창피스런 죄고, 그런 죄를 지은 사람은 법으로 처벌받는다. 성 매매를 한 사람들의 신상이 언론이나 여러 경로를 통해서 공중에게 공개되는 것도 그것이 사회적으로 금지되어있는 범죄 행위이고 그 사실을 대중들에게 환기시키기 위해서일 것이다. 외설이란 무엇인가? 사전에서 찾아보면 외설(obscenity), 음란(lewdness), 천박, 야비, 무례(indecency), 음탕, 방자(licentiousness), 색정(prurience) 등 외설적인 의미로 쓰이는 단어가 의외로 많이 나온다. “지나치게 무례한 것. 남녀간의 난잡하고 부정한 성행위, 또는 남의 색정을 자극하여 도발시키거나 또는 자기의 색정을 외부에 나타내려고 하는 추악한 행위”. 사전에서는 외설을 그렇게 규정하고 있다. 또 외설물이란 “사람의 성욕을 자극하거나 도발시키고, 보는 사람에게 수치심이나 불쾌감을 갖게 하는 문서나 그림, 또는 그러한 성질을 가진 상(像), 모형 및 외설행위에 사용할 기구 등”을말하는 것으로, “남의 성생활의 자유를 강제로 침해하거나 여러 사람 앞에서 공공연히 외설행위를 하는 일. 또는 외설적인 글이나 그림, 기타 물건을 제조·반포·판매·진열하여 성도덕을 문란케 하는 행위”, 또는 “남의 성욕을 도발하거나 자극하는 일”은 법(외설죄)에 따라 처벌받게 된다. 요컨데 외설적인 것을 남에게 드러내 표현하는 것은 법으로 처벌받는다. 그러나 그런 외설적인 행위나 대상을 즐기는(?) 행위 자체에 대한 처벌규정이 따로 없는 것을 보면 적어도 보고자 하는 욕구 자체를 부정하거나 규제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진은 태생적으로 외설(?)
탄생 160여 년이 지난 사진의 역사는 발명 당초부터 육체의 표현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진행되어 나왔다. 19C 말 무렵부터는 움직이는 대상을 비교적 어두운 조명에서도 짧은 시간에 찍을 수 있게 되고 사진가들은 인체, 주로 벗은 여성들을 촬영대상으로 하게 되었다. 그러나 사진에서 너무도 생생한 현실감을 지워버리려는 회화주의 사진가들의 노력에 의해서 아무리 상이 흐려진다고 할지라도 결국 사진에 찍혀있는 것은 실제로 이름과 주거지를 입증할 수 있는 어느 누구인가의 몸일 수밖에 없었다. 화가의 정신과 눈과 손에 의해서 해석되고 변형된 회화에서의 신체와는 달리, 있는 그대로의 대상이 세부에 이르기까지 정밀하게 기록되어 있는 사진은 태생적으로 인체의 생략이나 추상화보다는 오히려 가려진 부분을 들춰내는 일에 더욱 적합한 매체였다.
근대의 성에 대한 관념은 이상화되지 않은 육체를 외설로, 그리고 성을 무가치한 것으로 규정해왔다. 이전부터 육체를 아름답고 이상적으로 그려내는 “누드”라고 하는 표현의 장르가 회화와 조각에서는 존재했다. 자주 인용되는 것이지만 영국의 미술사가인 케네스 클라크는 육체의 표현을 이상적인 인체의 비례(proportion)를 그린 “누드(nude)”, 단순히 벌거벗었을 뿐인 나체를 지칭하는 “네이키드(naked)”를 구분했다. 다시 말하면 누드란 불완전한 육체를 이상적인 것으로 승화시킨 것으로, 신체(물체, matter)를 형상(form)으로 변용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날것인 상태의 물(인)체를 스트레이트하게 기록하는 사진은 천하고 외설적인 것이지만, 예술가의 정신과 손끝을 거쳐 같은 알몸을 이상적(현실에는 없는)으로 표현한 것은 고상한 예술로 승화된다는 것이다. 현실 대상을 눈에 보이는 대로 옮겨놓을 뿐인 사진은 아무래도 네이키드 쪽에 가까울 수밖에 없지만, 젊은 여성의 알몸을 찍는 예술사진가들은 생생한 알몸을 찍는 대신 회화의 방식을 흉내 낸 누드표현을 통해서 예술의 성역에 들어가려고 노력해왔다.
외설은 처음부터 존재하는 것인가
그것을 국가가 단속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와는 별도로, 결론부터 말하면 외설, 또는 외설적인 개념이나 감정 자체는 처음부터 존재한다고 본다. 눈앞에서 이성의 성기나 성행위를 보면서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어딘가 이상이 있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성적 충동은 일으키지 않을지 몰라도 수치스럽다거나 혐오스럽다거나 그런 감정의 반응은 누구에게나 자연스럽게 나타날 것이다. 긍정적인 것이건 부정적인 것이건 외설은 존재하고, 그 외설적인 것에 대해서 어떤 형태로든 반응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그 외설이라는 개념은 시대나 사회, 지식 정도, 성별, 나이 등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 1990년, 내가 운영하던 출판사에서 나온 <원 포인트 누드사진>이라고 하는 사진 입문서가 출판이 금지되고 출판사 등록마저 취소된 일이 있었다. 이른바 <출판물윤리심의위원회> 라는 데에서 등록취소 사유를 적은 공문을 우편으로 통보 받았는데, 그곳에 적혀있는 문장은 내가보기에는 사진 그 자체보다 훨씬 외설적인 내용이었다. 가령 '수영복 사이로 음모가 몇 가닥 삐어져 나와있고, 엉덩이를 들어올린 수영복 차림의 젊은 여성의 뒷모습을 가까이에서 찍은…' 등, 이른바 윤리심의위원들은 풍부한 상상력과 그것을 표현하는 뛰어난 문장력을 갖추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책을 편집할 때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세심한 부분들을 사진에서 찾아내는 뛰어난 시력을 갖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예전부터 이른바 도덕적인 통념이나 국가권력에 대항할 의사는 추호도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적어도 외설에 대한 기준은 이처럼 풍부한 상상력과 문장력이나 지식 정도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실감한 사건이었다.
성기나 음모는 더러운 것인가?
어느 초등학교에서 여름방학이 끝나고 숙제로 낸 아이들의 일기 가운데서 "나는 개울에서 놀다가 모기에 물린 ×지가 가려웠다." 라는 대목을 발견한 선생님께서 “X지라는 말은더러운 말이니까 일기를 다시 써오세요.” 라고 어린이에게 말했다. 다음날 다시 써온 일기장에는 “나는 모기에 물린 ×지를 깨끗한 물로 여러 번 씻었다.” 라고 그 부분이 고쳐져 있었다고 한다. 물론 누가 지어낸 얘기라고 생각되지만, 이런 얘기를 들으면 더러움이라는 것이 적어도 누구에게나 똑같이 느껴지는 개념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한 일처럼 느껴진다.
음모는 보통 ‘헤어(hair)’ 라고 불리는데, 이것은 중학교 영어시간에 머리털을 의미하는 것으로 배웠다. 하지만 이 헤어라는 말이 여성 성기의 주변에 있는 음모를 의미하는 단어로 쓰인다는 것은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일반적인 성인 남녀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이 신체기관은 코나 입 같은 다른 기관과는 달리 대부분의 나라에서 그것이 노출된 사진을 찍는 것도 발표하는 것도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외설성이란 어떤 의도로 찍혔는가, 그 신체기관이 노출된 사진을 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가, 판단하는 사람의 상상력이나 지적 수준, 성향 등에 따라 그 심급이 달라지는 것이어서, 신체의 일부가 찍혀있다는 사실만으로 그것이 외설인지 아닌지를 단순히 판단해버리는 것은 넌센스라고 할 수 있다. 라이프 같은 그래프잡지에서도 전쟁을 보도하는 기사와 함께 죽은 병사의 사체를 게재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주검을 예술적 표현의 범주 안에 넣고있는 사진가들이 한두 사람이 아니다. 얼마 전의 국내에 소개된 앙드레 세라노의 작품들에서 본 것처럼 그 까다로운 신성에 관한 문제도 이미 금기의 영역을 벗어나 아티스트들의 정당한 표현의 사정거리 안에 들어온 지 오래다. 이전 같으면 어림도 없는 얘기다.
가령 지난 1989년에 죽은 로버트 메이플소프는 1970년대부터 80년대에 걸쳐서 육체와 성 등에 대한 과격한 표현을 통해서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들을 파 내려간 사진가다. 그는 성을 일반적인 상식과 통념의 범주로서가 아니라 그 문제들을 자신의 신체와 사진이라고 하는 미디어를 통해서 자유롭게 실천했다. 싸구려 폴리에스텔로 만든 검은 색 슈츠를 입은 흑인 남성의 거대한 성기가 열려있는 바지 앞섶에서 노출되어 있다. 이 사진은 보는 사람에게 일순 강력한 충격을 주지만, 동시에 우리가 익숙해져 있는 상식의 허를 찌르는 날카로운 유머감각을 느끼게 한다. 성기라고 하는 신체의 일부가 하나의 형태와 존재감을 가진 오브제로서 그곳에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메이플소프가 에이즈로 생을 마감한 후 휘트니미술관에서 열린 회고전에서조차 성기가 노출되거나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작품들은 커튼이 쳐진 별실에 전시되었고, 외설성에 대한 거센 논란이 일었던 것을 보면 성기 사진의 외설성 문제는 그리 단순한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그가 추구하고 있는 세계에서 성기나 동성애, SM 같은 소재는 그가 찍는 꽃이나 정물들과 마찬가지의 성격과 질을 가진 필연적인 소재인 것이 분명하다.
제약과 권력
한국인들은 오래 동안 성에 대해서 금욕적인 태도를 강요 받아 왔기 때문에 오히려 성에 대한 비정상적일 정도의 강한 호기심이 형성되어 나왔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신체의 어떤 일부분이나 성행위 등 금기의 대상에 대한 관음적인 성향이 특히 강해졌을 것으로 보인다. 말하자면 성에 대해서 일종의 의식과잉 상태가 되어있는 것이다. 억눌리고 과잉된 심리, - 그것을 억눌린 상태로 오래 지속시키면 육체나 정신건강에도 좋을 턱이 없다. 가령 메이플소프 같은 어떤 사진가들에게는 목숨을 버려가면서까지 진지하게 추구하고 있는 삶 그 자체로서의 성과 사회적 터부에 대한 도전이라는 문제를 상식적인 외설의 잣대로 재단하려는 것은 예술가의 삶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부당한 일일 뿐만 아니라 새로운 예술 표현을 향유하고자 하는 감상자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일이기도 하다.
성기사진 - 그것이 외설인지 아닌지 하는 불모한 논쟁을 그치고, 인간의 존재와 삶의 행위를 표현하는 사진의 능력과 가능성에 관해서 얘기해야 한다. 지금까지 많은 독재국가들의 예에서 볼 수 있었던 것처럼, 더 많은 제약은 더욱 큰 권력을 낳는다. 사진가들에게는 자신이 추구하는 주제를 자신의 원하는 방법으로 표현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져야 한다. 외설이나 그 밖의 금기에 대해서 사진가 자신이 자기 규제에 걸리고 표현에 대한 욕구가 위축되어버린다면 그것은 예술의 지평을 넓혀나가는데 있어서 큰 손실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아름답고 이상적인 것이나 새로운 것, 재미있는 것 들과 마찬가지로 전쟁이나 죽음, 폭력, 공포 같은 주제를 사진표현에서 진지하게 다루려는 사진가들도 적지 않다. 성에 관한 표현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외설인지 어떤지는 개인이 판단할 문제이지 국가권력이 관여할 문제가 아니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연말이 가까워지면 "크리스마스를 호텔에서!" 라는 캠페인 아래 모임을 갖는 일이 있을 정도다. 이런 모임은 보나마나 섹스를 전제로 한 것일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그런 젊은이들의 풍속을 퇴폐적이거나 외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외설논쟁에 대한 기대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에서는 예술작품에 성기가 노출되어 있는가는 거의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현실을 차단하고 있는 권력적이고 제도적인 기준들에 대한 아티스트들의 부단한 도전을 통해서 표현의 수준이 향상시켜 나온 그들의 예술적 표현과 외설에 대한 판단기준은 성기에 대한 단순한 반응과는 구별된다. 그간의 전시공간에 걸린 작품들을 보면 지난 세기말이래 한국에서도 오래 동안 어둠 속에 잠재되어 있던 성과 육체에 대한 표현욕구가 사진의 전면에서 스며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행인지 불행인지 크리스토 상을 소변과 피 속에 넣고 찍은 세라노(국제화랑)일 때도 그랬고 온몸이 밧줄로 묶인 젊은 여성의 사진을 찍은 아라키(일민미술관)나 거의 포르노 수준에 가까운 사진을 찍은 뉴튼(조선일보미술관)의 사진들이 당당하게 전시되었을 때도 우리 문화와 사회의 장면에서는 전혀 아무런 문제도 일어나지 않았다. 전체 국민의 1/3 이상이 기독교인이고 엄격한 유교사상에 절어있는 한국에서 벌집을 쑤셔놓은 듯한 거친 반응과 논쟁이 야기될 것으로 걱정(?)했던 나로서는 솔직히 말해서 조금 맥이 빠지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한국은 종교를 모독하고 성기를 노출시켜도 좋은 나라인가, 아니면 표현에서 성이나 신성 모독과 같은 금기의 주제들이 아무런 검열이나 제약 없이 자유롭게 다루어지는 것이 허용될 정도의 문화 선진국이 되었다는 얘기인가. 이렇게 아무 반응도 없으면 이쪽에서 오히려 불안해질 정도다.
이유가 어디에 있건 이런 현상은 말하자면 어떤 예방절차도 갖추지 않은 무방비한 상태에서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바이러스가 그냥 몸 속으로 들어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오히려 문화적 충격과 면역을 길러주기 위해서라도 관헌들이 여기에 스톱을 걸고 관청이나 법학자, 사회학자, 예술가 등 모든 종류의 사람들이 벌떼처럼 달라붙어서 한 차례 소란을 피웠어야 하지 않았을까? 아니 이런 현상은 혹시 우리나라의 예술표현을 접하는 문화나 의식구조가 아무런 면역성도 자율성도 갖고 있지 않은 취약한 바탕 위에 놓여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은 아닐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모든 제도적인 틀 안에서 어떤 것이 금기로 규정되어 있는가, 어떤 이유로 우리에게 그것이 금기인가에 관해서 논의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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