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 Document
강원도 문화유적 - 박근재
강원도 문화유적
- 사진가 박근재
1
2
3
1. 영월군 선돌 - 07. 1. 11
영월읍 방절리 서강내 절벽을 이룬 곳에 위치해 있는데 큰 칼로 절벽을 쪼개내리다 그친듯한 형상을 이룬 우뚝 선
기암은 신비스러울 뿐만 아니라 서강의 푸른 물과 층암절벽이 어우러져 마치 한국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하여
일명 신선암 이라고도 한다.
2. 양양군 진전사지 삼층석탑(국보 제122호) - 06. 5. 5
통일신라 시대의 탑으로 아래층 기단에는 날아갈 듯한 옷을 입은 천인상(天人像)과, 위층 기단에는 구름위에 앉아
있는 웅건한 모습의 8부신중(八部神衆)상이 완숙하고 아름답게 조각되어 진전사의 화려했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3. 원주시 거돈사지 삼층석탑(보물 제750호) - 06. 10.21
거돈사 옛 절터의 금당터 앞에 세워져 있는 탑으로, 2단의 기단(基壇)위로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위층
기단은 남•북쪽에서 보았을 때 동•서면에 세운 석재의 두께가 자연스럽게 기둥 모양으로 보이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4
5
6
4. 양양군 선림원지 석등(보물 제445호) - 06. 4.11
일반적으로 석등은 불을 켜두는 곳인 화사석(火舍石)이 중심이 되어 아래에는 이를 받치기 위한 3단의 받침돌을
쌓고, 위로는 지붕 돌과 머리장식을 얹었다. 아래받침돌의 귀꽃 조각은 앙증맞게 돌출되어 아름답고, 그 위로 가운데
받침돌을 기둥처럼 세웠는데 그 장식이 화려하다.
5. 원주시 법천사지 지광국사 현묘탑비(국보 제59호) - 06. 8. 8
탑 비문에는, 지광국사(984∼1070)가 불교에 입문해서 목숨을 다할 때까지의 행장과 공적을 추모하는 글이 새겨져
있다. 거북 얼굴은 용의 얼굴에 가까운 형상으로,턱 밑에는 길다란 수염이 달려 있고 부릅뜬 눈은 험상궂다.
6. 영월군 장릉(사적 196호) - 07. 1.11
조선 제6대 왕인 단종의 능으로, 작은아버지 수양대군에게 왕의 자리를 빼앗기고 유배후 죽음을 당해 강물에 띄워져
있던 시신을, 호장 엄흥도가 이곳에 암장하였다. 그후 숙종1698년에 이르러 왕으로 복권되고 왕릉으로 정비 하였다.
7
8
9
7. 양양군 의상대(시도유형문화재 제48호) - 06.11.17
신라 문무왕 16년(676)에 낙산사를 지은 의상대사를 기념하기 위해 1925년에 만든 정자이다.
원래 이곳은 의상이 낙산사를 지을 당시 머무르면서 참선하였던 곳으로 옛부터 의상대라 불렸다고 한다.
8. 인제군 한계사지(시도기념물 제50호 (인제군) - 06. 11.17
이곳은 그 유래가 전해지지는 않으나, 통일신라시대의 유물인 석탑, 석등, 석불 등의 재료와 고려•조선시대의 명문
기와가 많이 발견되고 있어, 한계사가 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여러 차례 중건을 거듭하며 이어져온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9. 양양군 선림원지 삼층석탑(보물 제 444호) - 06.11.17
2층기단 위에 세운 방형의 3층 석탑으로 전형적인 신라석탑의 일반형이다. 기단부의 짜임새나 각 부분의 조각수법
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 때로 추정되며,1965년 복원공사 전에 기단부에서 소탑(小塔) 64기와 동탁(銅鐸) 1개가 발견
되었다.
10
11
12
10. 강릉시 명주군 굴산사지 당간지주 (보물 제86호) - 06. 9. 8
당간이란 절에 행사가 있을 때 절 입구에 당(幢)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당간(幢竿)이라
하며, 이 당간을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사찰 앞에 세워 신성한 영역을 표시하는 역할
을 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당간지주이다.
11. 삼척시 공양왕릉(시도기념물 제71호) - 06. 4.12
고려 왕조의 마지막 임금인 공양왕(재위 1389∼1392)의 묘로 전하는 곳이다. 공양왕은 1392년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면서 폐위되었고, 태조 3년(1394)에 왕자 석(奭), 우(瑀)와 함께 삼척으로 간 뒤 교살되었다. 봉분이 모두
4기인데 가장 남쪽에 있는 것이 공양왕릉, 2기는 두 왕자, 나머지 하나는 시녀 또는 말의 무덤이라 전한다.
12. 삼척시 죽서루 (보물 제213호)
누(樓)란 사방을 트고 마루를 한층 높여 지은 다락형식의 집으로, 이 건물은 고려 충렬왕때 대학자 이승휴 선생이
세웠다. 주변 두타산의 푸른 숲, 삼척시의 서쪽을 흐르는 오십천이 내려다 보이는 절벽 위에 있어 예로부터 관동팔경
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누의 동쪽으로 죽장사라는 절과 이름난 기생 죽죽선녀의 집이 있어 ‘죽서루’라 하였다고
한다.
13
14
15
13. 동해시 삼화사 삼층석탑(보물 제1277호) - 06.11.18
석탑의 기단은 각 층 모두 네 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다
여러 군데에 금이 가 있고 부분적으로 훼손되었으나, 대체로 잘 남아있고 균형이 잘 잡힌 단아한 모습이다.
14. 강릉시 명주군 굴산사지 부도(보물 제85호 ) - 06.11.16
이 부도는 굴산사를 세운 범일국사(梵日國師)의 사리를 모신 탑으로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중간받침돌에는 8개의 기둥을 세워 모서리를 정하고 각 면에 천상(天上)의 사람이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을
새기고 있다.
15. 강릉시 신복사지 삼층석탑(보물 제87호) - 06. 9. 6
신복사는 통일신라 때 범일국사(梵日國師)가 창건한 절이다.
창건 설화에 한 처녀가 우물에 비친 햇빛을 보고 그 물을 마셨는데 곧 아이를 배어 낳게 되었다. 집안 사람들이
아이를 내다버렸으나, 아이의 주위로 빛이 맴돌아 괴이하게 여겨 다시 데려와 길렀는데, 그 이름을 범(梵)이라
하였다. 아이가 출가하여 승려가 된 후 고향에 돌아와 신복사와 굴산사(掘山寺)를 창건하였다고 한다.
16
17
18
16. 강릉시 신복사지 석불좌상(보물 제84호 ) - 06.10.18
신복사지 삼층석탑을 향하여 공양하고 있는 보살상의 모습으로 원통형의 관(冠)을 쓰고 있는 얼굴은 풍만한데다가
만면에 웃음을 띠고 있어 복스럽게 보인다. 양 어깨에서부터 걸쳐 내려진 옷자락은 몸의 굴곡을 따라 자연스럽게
표현되어 사실성을 더해준다
17. 강릉시 명주군 왕릉(시도기념물 제12호) - 06. 4. 12
신라하대의 진골 귀족으로 강릉 김씨의 시조인 김주원의 묘소이다. 왕가의 혈족인 그가 왕으로 추대되어 경주로
가는 중 폭우로 강을 건너지 못하게 되어 결국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김경신(원성왕)이 왕으로 추대되었다. 주원은
동해 일대에서 중앙과 대립하는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여 명주군왕으로 봉해졌기에 왕릉이라고 부른다.
18. 강릉시 오죽헌.( 보물 제165호) – 06. 4. 13
신사임당(1504∼1551)과 율곡 이이(1536∼1584)가 태어난 유서 깊은 집이다.
사임당 신씨는 뛰어난 여류 예술가였고 현모양처의 본보기가 되는 인물이며, 아들 율곡 이이는 조선시대 퇴계 이황과
쌍벽을 이루는 훌륭한 학자였 다. 우리나라의 주택 고 건축물 중 하나로 손꼽히며, 유서 깊은 역사를 가진 건물이다.
19
20
21
19. 강릉시 선교장 활래정(중요민속자료 제5호) - 06. 9. 6
조선시대 사대부의 살림집이다. ‘선교장(船橋莊)’이라는 이름도 집터가 뱃머리를 연상케 한다고 하여 붙였다고 한다.
안채•사랑채•행랑채•별당•정자 등 민가로서는 거의 모자람이 없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
발걸음이 정겹다.
20. 강릉시 선교장 열화당(중요민속자료 제5-1호) - 06. 8. 1
강릉 선교장의 사랑채로 조선 순조 15년(1815)에 오은 처사 이후(李厚)가 지었다. 높은 댓돌 위에 자리하고 있어
층층다리를 올라서야 들어설 수 있다. 건물 앞쪽에는 동판을 너와처럼 이은 차양시설을 두어 햇빛을 막을 수 있도록
하였다.
21. 강릉시 경포대(시도유형문화재 제6호) - 06. 4. 13
관동팔경의 하나로 고려시대 방해정 뒷산 인월사 터에 처음 지었던 것을 조선 중종 3년(1508)에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겨 다시 지었다고 한다. 조선의 임금인 태조와 세조는 친히 이 경포대에 올라 사방의 경치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으며 내부에는 숙종이 직접 지은 시와 율곡 이이가 10살 때 지었다는 ‘경포대부’를 비롯한 유명인들의 글이
걸려있다.
22
23
24
22. 양양군 진전사지 부도(보물 제439호) - 06. 3. 30.
멀리 동해바다가 내다보이는 진전사터 안의 작은 언덕 위에 서 있는 탑으로, 진전사를 창건한 도의선사의 묘탑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 석조부도의 첫 출발점으로 9세기 중반쯤에 조성된 것으로 보며 전체적으로 단단하고 치밀하게
돌을 다듬어 단정함이 느껴지며, 장식을 자제하면서 간결하게 새긴 조각들은 명쾌하다.
23. 양양군 선림원지 홍각선사 부도비(보물 제446호 ) - 06. 9. 7
홍각선사의 공로를 기리기 위한 탑비이며,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추정된다.
거북 등에 붙어 있는 네모난 돌은 비 몸을 세우는 자리로 연꽃무늬와 구름무늬가 새겨 있으며 비 머리에는 구름과
용이 사실적으로 조각되어있다.
24. 양양군 선림원지 부도(보물 제447호) - 06. 3. 30
이 부도는 일제시대에 완전히 파손되었던 것을 수습하여 현재의 자리에 복원한 것으로 기단부(基壇部)만이 남아있다.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높게 돋을새김 해 놓은 용과 구름무늬의 조각수법이 매우 웅장한 느낌을 준다
25
26
27
25. 고성군 청간정 (시도유형문화재 제32호)- 06. 4. 11
청간천 하구 언덕에 위치한 조선시대의 정자로, 특히 해와 달이 솟을 때의 정경은 관동팔경의 하나로서 희귀한
경치라고 할 만하다. 추녀 밑에 걸린 ‘청간정(淸澗亭)’ 현판은 1953년 이승만 대통령이 쓴 것이다.
26. 고성군 건봉사 일주문 (문화재자료 제35호) - 06. 4. 25
한국전쟁 때 폐허가 된 건봉사 절터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건물로1920년에 세운 것이다. 불이문 또는 해탈문
이라고도 하는데 불교에서는 번뇌의 세계에서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를 뜻하는 문이다. 처마 밑
‘불이문(不二門)현판은 조선 마지막 왕세자인 영친왕의 스승이었던 해강 김규진이 쓴 것이다.
27. 고성군 건봉사 부도 (강원도 기념물 51호) - 06. 4. 25.
건봉사에는 50여기에 달하는 부도와 탑비가 있다. 원래 건봉사에는 2백개가 넘는 부도와 탑비가 흩어져 있었으나
한국전쟁 이후 많이 분실되었고 남은 부도와 비를 모아 지금의 자리에 부도전을 조성하였다.
28
29
30
28. 평창군 월정사 팔각구청석탑 (국보 제48호) - 06. 9. 7
*자장율사가 창건한 월정사 안에 있는 탑으로, 그 앞에는 공양하는 모습의 보살상이 마주보며 앉아 있다.
전체적인 비례와 조각수법이 착실하여 당시 불교문화 특유의 화려하고 귀족적인 면모와 금속공예의 수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고려초기(高麗初期)의 대표적인 석탑이다.
29. 평창군 월정사 부도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42호) - 06. 4. 12
부도는 승려의 무덤을 상징하여 그 유골이나 사리를 모셔두는 곳이다.
이 부도밭은 월정사에서 상원사로 가는 길의 전나무 숲속에 자리하고 있는데, 모두 22기에 이르는 부도들이 흩어져
있다. 조선 중기 이후의 것으로 추측되며, 새색시가 눈을 감고 가장 큰 부도를 찾아 잡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전설이
있다.
30. 평창군 상원사 석탑 - 06. 4. 12
이 석탑은 본래 지금의 자리에 있던 것이 아니라 계곡에 있던 폐탑을 옮겨 놓은 것이라고도 하고 영산전 옆에서
출토됐다고도 전한다. 단층 기단 위에 세운 5층석탑으로 추정되나 화강암석재가 많이 없어져 자세히 알 수 없다.
탑신부는 삼존불을 비롯한 불보살을 가득 새겨 매우 호화로우며 옥개석은 1층만 남아 있는데 거의 파손되었고
층급은 나타내지 않았다.
31
32
33
31. 평창군 상원사 관대걸이 06. 4. 12
이 곳은 세조가 문수보살의 가피로 불치병인 종기를 치료하였다는 전설이 얽힌 곳으로 세조가 오대천의 계곡에서
목욕을 할 때 관대를 걸어두었던 이 곳을 관대걸이라 한다.
32. 평창군 고양이 석상 - 06. 4. 12
상원사에서 병을 고친 세조는 이듬해 다시 상원사에 참배하러 법당에 들려고 할 때, 법당 내에 칼을 품고 숨어있던
자객으로부터 세조의 목숨을 건진 고양이를 기리기 위해 석상을 만들고, 고양이를 위해 매년 제사를 지내주도록
명했다.
33. 평창군 상원사 석탑(시도유형문화재 제25호) - 06. 4. 12
대웅전 앞에 동, 서 1기씩 3층 쌍탑으로 탑의 형식은 거의 비슷하며 옥개석 받침돌은 모두 1단씩으로 많이 생략되어
비둔한 느낌을 준다. 동탑 앞에 있는 석조 광배는 파손되어 전체의 3분의1 정도 남아있다. 통일신라 말에 조성된
것으로 탑의 높이는 2.9m이다.
34
35
36
34. 정선군 정암사 수마노탑 (보물 제410호.)- 06. 4. 27
정암사 적멸보궁 뒤의 산비탈에 세워진 7층의 모전석탑으로 높이는 9m 이다.
모전석탑이란 벽돌을 쌓아 만든 전탑을 모방한 탑으로, 돌을 벽돌 모양으로 깎아 쌓아 올린 탑을 말한다.
1층 몸돌의 남쪽 면에는 감실(龕室:불상을 모시는 방)을 마련하였다.
35. 영월군 법흥사 징효대사 부도비 (보물 612호) - 06. 4. 15
높이 3.96m로 귀부 위에 비석을 세우고 그 위에 이수를 얹은 전형적인 부도비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턱을 앞으로 쑥 내밀고 있는 거북이 머리가 진취적인 느낌이며 우뚝한 콧대와 부릅뜬 눈이 험상궂어 보이나 다섯
발가락은 부드럽게 표현되어 있다.
36. 영월군 법흥사 징효대사 부도 (도지정 유형문화재 제 72호) - 06. 8. 9
통일신라의 승려인 징효국사의 사리를 모신 탑이다. 징효국사는 19세에 탁월한 총명으로 수행을 시작하여 왕의
총애를 받기도 하였다. 두꺼운 지붕돌표현, 지붕돌의 높은 꽃장식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보인다.
37
38
39
37. 원주시 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비( 국보 제59호) - 06. 10. 11
고려시대 석비로서의 특징적인 양식을 보이는 걸작품으로 조각 또한 정교하다. 높이는 5.54m.
아래는 구름무늬가 장식되었으며, 용두화된 거북머리의 목은 길게 곧추서서 정면을 향하고 목에는 물고기 비늘을
표현하였다. 등에는 네모 구획안에 따로 구갑문을 새겼으며 다시 그 안에 '왕'자를 양각했다.
38. 원주시 법천사 당간지주 (문화재자료 제20호 )- 06. 4. 10
당간지주는 사찰 입구에 설치하는 것으로, 절에 행사나 의식이 있을 때면 이곳에 깃발을 달게 되는데, 깃발을 거는
길다란 장대를 당간이라 하고, 당간을 양 쪽에서 지탱시켜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총 높이는 3.7m이다.
39. 원주시 거돈사지 원공국사 승묘탑비 (보물 제78호 ) - 06. 9. 10
고려시대의 유명한 스님인 원공국사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다. 거북의 머리는 험 한 인상을 한 용의 머리 모양이다.
머릿돌에는 구름 속을 요동치는 용이 불꽃에 쌓인 여의주를 다투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는데, 매우 사실적이고
화려하다.
40
40. 원주시 거돈사지 삼층석탑 (보물 제750호 ) - 06. 9. 10
거돈사 옛 절터의 금당터 앞에 세워져 있는 탑으로, 2단의 기단(基壇)위로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탑신은 각 층의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하나의 돌로 구성하였으며 처마는 직선을 이루는데 끝부분에서의 들림이
경쾌하여 통일신라 양식임을 알 수 있다.
강원 다큐멘터리 사진 사업 1회 ~ 6회 보러가기
등록된 의견이 없습니다.
관련기사의 데이터가 없습니다.
등록된 관련갤러리가 없습니다.
국내 최대의 사진전문 포털사이트인 아이포스 웹진에서는 각 미디어와 화랑의 전시담당자, 프로사진가, 전국의 각 대학 사진학과 교수 및 전공자, 미술계와 광고 디자인계, 출판 편집인,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 인사, 국내 유수 기업의 최고경영자와 임원, 사진동호인 등
27만6,830명
에게 사진문화에 관한 유익한 정보들을 제공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