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진의 자생은 요원한가?
준비 기간이 말도 안 되게 짧아서 걱정했는데, 용케 날짜를 맞춰서 문을 열었다. ‘하면 된다’, ‘안 되는 것은 되게 만든다’고 하는 한국인 특유의 무서운 밀고 나가기 기질이 발휘된 결과다. 진땀을 흘렸을 진행자들의 얼굴이 보인다. 비엔날레는 2년에 한 차례씩 열린다. 완벽한 행사를 준비할 수 있는 충분한 기간이다. 충분한 것은 시간만이 아니다. 예산도 자그마치 10억이나 된다. 이런 대구사진비엔날레가 본격적으로 준비에 들어간 것이 개막일을 6개월 남짓 남겨둔 금년 5월 중순. 어디엔가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동안 쌓인 노하우를 생각한다면 미리미리 준비해서 스마트하게 치렀을 법도 한데, 세 번째로 열린 이번 비엔날레도 급조된 형국이 되고 말았다. 말끝마다 붙는 ‘아시아 최대’라는 수식어가 부끄러울 정도다. 이 정도의 행사 규모라면 다른 나라 같았으면 준비하는 기간만도 2년 이상 걸리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급하게 시동이 걸린 행사치고는 전체적으로 볼만한 전시로 꾸며졌다. 애를 쓴 흔적들이 역력했고, 내용이나 결과도 보인다. 그 가운데서도 전쟁사진을 다룬 ‘평화를 말하다’와 ‘대구근대사진의 모색’ 전은 금년이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이 되는 해였고, 사진의 메카로 불리는 대구사진의 뿌리를 보여는 전시라는 점에서 특히 의미 있는 기획이었다. (중요한 전시임에도 협소한 장소 때문에 몇 차례로 나눠서 전부를 볼 수는 없었던 것이 아쉽다.) 아시아라고 하면 동북아시아 국가들을 떠올리게 되지만, 인도네시아, 말레시아, 베트남 같은 국제적인 사진마당에서 마이너로 치부되는 동남아지역의 아티스트들을 참가시킨 ‘아시아 스팩트럼’도 색다르다.
스칸디나비아 국가에서 온 작품들은 주로 서유럽과 미국 쪽에만 관심을 기울였던 우리 눈에 신선하게 비쳤다. 아알토예술디자인대학과 갤러리 타이크를 베이스로 삼아 유럽 전역에서 활발한 큐레이터 활동을 벌이고 있는 티모시 퍼슨스는 ‘헬싱키 스쿨’의 실질적인 주도자다. 같은 명칭의 전시에 참가한 24명의 아티스트의 작품들은 이른바 ‘헬싱키 스쿨’이 ‘베허 슐레’와 같은 명확한 개념과 스타일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위르키 파란타이넨을 제외하면, 엘리나 브로테루스이나 야리 실로마키, 벨리 그라노, 미콜로스 가알 같은 헬싱키 스쿨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는 작가들의 이름이 눈에 띄지 않는 것은 의외로웠다. 이 전시를 실질적으로 구성한 것은 퍼슨스로 보이지만, 도록에는 발터 베르그모저가 ‘기획자’로 나와 있다. 그는 지난 7월에 열린 동강사진축제에서 우베 슈에르츠가 기획한 ‘동시대 독일사진’ 전 도록에도 ‘코디네이터’로 이름이 올라와 있다.
그러고 보면 금년 우리나라에서 치러진 큰 국제전은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는 얘기가 된다. 외국인이나 사진 이외의 분야의 사람들에게 전시기획을 맡겼다고 해서 비난 받을 이유는 없다. 하지만 그것은 고도의 경험과 전문성을 갖춘 사람일 때의 얘기다. 동강이 다섯 번째, 대구는 이번으로 세 번째다. 한국 사진도 그만하면 자생력을 갖출 때가 되었고, 사진 쪽에 사람이 없다고는 하지만, 미리만 준비한다면 그만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주위에 없지도 않다. 언제까지나 부족한 시간이나 외국 사진계와의 빈약한 네트워크를 타령한다면 그것은 한국 사진의 취약성과 의지의 빈곤을 스스로 밖으로 드러내는 일이 될 뿐이다.
개막식 날짜가 갑자기 변경되어서, 행사에 맞춰 입국하려던 일부 국가에서는 대거 일정을 취소하고 비행기 티켓을 물리는 소동이 빚어졌다고 한다. 이유가 어떻든 이것은 ‘아시아 최대의 사진 이벤트’라는 문구가 붙는 국제행사로서는 큰 실수다. 대구문화예술회관에 중요한 전시들이 집중되어 있는 것은 좋지만, 전체를 둘러보기 위해서는 역시 하루로는 부족하다. 지금까지는 아무래도 관 주도의 행사라는 인상이 강했는데, 대구사진비엔날레를 위한 법인과 상설 조직이 만들어졌다. 이번 행사가 끝나면서 2년 후를 대비해서 새 집행부를 구성하고 바로 준비에 들어간다고 한다. ‘삼세판’은 이미 끝났지만, 대구사진비엔날레의 안정적인 정착과 발전을 바라는 모든 사진인들과 함께 네 번째 ‘판’을 기대해본다.
이번 2010대구사진비엔날레에는 22개국에서 참가한 245명의 작가들이 1,500여 점의 작품을 출품했다. 전시는 9월 30일부터 10월 24일까지, 주 전시장인 대구문화예술회관을 중심으로 봉산문화회관과 대구 시내의 여러 전시장에서 열리고 있다.
글/김승곤 (사진평론가, 국립 순천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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