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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원의 ˝사진,미술을 초대하다˝ - 포토몽타주의 등장과 영향
포토몽타주의 등장과 영향
김석원( ksw5053@hanmail.net)
초상화(portrait)의 의미
초상화는 사람의 용모나 자태를 그린 그림을 말한다. 오늘날 사진에 의한 초상이 일반화되기 전에 초상화는 사진의 역할을 대신 선행했던 것이다.
인간의 얼굴을 그림이나 조각을 통해서 기록하려고 했던 노력은 고대의 초상조각에서 시작하며, 초상화가 성행하게 된 것은 르네상스 이후의 일이다. 18세기 후반에 새로운 신분계층인 중산층의 초상화에 대한 요구와 오늘날의 사진에 이르기 까지 오랜 시간 동안 매우 다양한 형태로 발전해왔다. 이러한 초상화와 초상사진은 그 사람의 외면적인 모습과 아울러 그 시대의 시대적인 정신을 기록한 것이며, 우리는 이것을 통해서 인간 욕망의 다양한 이면을 살펴 볼 수 있는 것이다.
포토몽타주와 다다
귀스타브 르 그레(Gustave Le Gray)의 <세트의 바다풍경>(1856)은 사진의 역사에서 조합인화(Combination Printing)의 출발점이 된다. 이 사진은 여러 장의 음화를 중첩시켜서 인화 한 것으로 노출을 하늘과 바다에 각각 맞춘 단독적인 음화를 사용하여 종합적인 하나의 사진으로 완성한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합성작업을 한 흔적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 완벽한 한 장의 사진이 완성되었는데 두 장의 음화를 조합하는 과정에서 빛과 어둠의 조화와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 음화의 농도를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조절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의도는 자신의 작품의 예술성을 인정받기 위해서 합성 기법을 사용한 것으로 이해 할 수 있지만 문제는 감광유제의 근본적인 단점을 어떤 방식으로 극복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한 것으로 판단된다. 초창기 감광유제인 콜로디온의 경우 순간적인 노출이 가능했기 때문에 사진가들은 일상의 모습을 손쉽게 포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단파장광인 푸른색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단점 때문에 푸른색의 하늘을 포함시켜서 사진을 촬영했을 때 노출이 과다하게 표현되었다. 이러한 단점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론으로는 노출이 과다한 부분에 구름을 그리거나 하늘 부분을 따로 촬영해서 인화를 할 때 합성하는 방법을 사용하였던 것이다.
여러 장의 음화를 중첩시켜 인화하는 방법은 오스카 레일랜더(Oscar G Rejlander)에 의해서 본격화되었다. 르 그레의 합성사진이 나온 같은 시기에 제작한 <인생의 두 갈래길(The Two Ways of Life)>조합인화는 회화적 기법으로 수정한 작품이다.
(사진1,),오스카 레일랜더(Oscar G Rejlander),<인생의 두 갈래길>,1857.
이 사진은 우의적 사진을 통해 하나의 우화를 커다란 무대장면으로 펼쳐 보일 생각을 갖고 구상한 작품으로 단 한 장의 사진으로 표현하기에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유랑극단 단원의 협력을 얻어 관객 쪽에서 각각 그들을 촬영하고 무대장치를 담아 한 장의 인화지에 옮겨지기까지는 30장의 음화와 6주간의 시간이 걸린 것이다. 사진의 내용을 살펴보면, 중간에 현인이 서있고 양 옆으로 두 청년을 중심으로 각각 다른 방향을 보고 있다. 오른쪽의 청년은 고요, 자비, 종교, 근면, 미덕이 표현되어 있는 길 쪽으로 향하고 있고, 왼쪽의 청년은 현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방탕, 죽음, 자살, 도박, 술 등의 쾌락 쪽으로 시선이 향해있는 조합인화 사진이다. 1857년 맨체스터 궁에서 전시회가 열렸는데 이 전시회는 19세기에 가장 야심적인 기획물 중 하나였으며 여기서 과거 대가들의 회화, 소묘, 판화 등 1천여 점의 작품과 중국, 인도, 페르시아에서 가져온 작품들이 전시되었으며 사진도 600여 점이나 전시되어 사진이 예술계에 새로운 매체로서 자리를 잡다. 이 부분에서 레일랜더의 <인생의 두 갈래길>을 빅토리아 여왕이 구입하면서 사진의 위치를 확보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그런데 빅토리아 여왕이 이 사진을 구입한 진정한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빅토리아 왕조에서 도덕을 신봉하는 빅토리아 여왕이 자신의 이상에 부합하는 <인생의 두 갈래길>이 도덕적인 균형을 표현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빅토리아 여왕과 알버트 공에게는 환영을 받았지만 미술가들에게는 멸시를 받았는데 그것은 이 작품이 사진처럼 보이지 않고 회화작품으로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그 후 1858년 헨리 피치 로빈슨(Henry Peach Robinson)은 <임종(Fading Away)>이라는 조합사진을 만들었는데 여기서 건강한 한 소녀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을 고통스럽게 표현함으로써 회화작품에서 고통스러움을 표현한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르게 사진의 매체적 특성 즉, 사진은 진실을 재현한다는 대중적인 믿음을 져버렸다는 사실 때문에 비판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긍정적인 측면에서 생각해 보면 그의 작업은 낭만적인 분위기와 문학적인 상징성을 표현함으로서 대상을 재현하는 단순한 행위를 뛰어넘어서 작가의 상상력과 함께 자신만의 주관적인 사진세계를 표현했다는데 의미를 들 수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포토몽타주(Photomontage) 기법의 원류에 해당하는 합성 기법들은 예술로서의 가능성을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대중적 오락 수단의 영역으로 편입되면서 20세기 초에 출현하는 다다의 탄생을 예고하게 된다.
포토몽타주와 콜라주
다다 이전에 사진을 이용해서 만든 포토몽타주는 앞에서 얘기를 했듯이 진면목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예를 들었던 로빈슨의 경우 작품의 결과물에서 파생되는 가능성에 대해서 올바르게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로빈슨의 합성사진을 회화적인 표현 방법으로 연결시켜서 이해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고 자신들의 목적에 부합되게 발전시킨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것은 다름 아닌 베를린 다다이스트를 포함하여 초현실주의자들에 의해서 시도되어졌다. 이러한 논지를 살펴보기 이전에 그들보다 조금 앞서 사진을 이용한 기법을 사용했던 입체파와 미래파에 있어서 콜라주와는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살펴봐야한다.
1912년대 큐비즘을 유행시켰던 피카소와 브라크는 콜라주와 파피에 콜레 기법을 사용하기 시작 하였다. 콜라주의 명칭은 우선 '풀로 붙이다'라는 의미의 프랑스어 동사 콜레(coller)에서 유래한다. 이 기법은 1913년 브라크가 아비뇽의 한 상점에서 본 나뭇결무늬의 벽지 조각을 정물화 속에 붙여서 최초로 사용한 것이다.
앞서 얘기했던 베를린 다다이스트에서는 사진을 인식하는 관점에 있어서 유사한 부분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사진이 가지고 있는 사실적인 재현 능력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베를린 다다이스트들은 화면 전체를 구성하는 기본 재료로 사진의 리얼리즘을 이용하여 전통적인 리얼리즘을 공격하는 파괴적인 성격이 강하게 작용했다는데 의미를 들 수 있다. 즉 그들의 작업은 기존의 사진이미지를 해체하고 새로운 결합을 시도하여 세상의 질서를 해체시키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베를린 다다와 포토몽타주
다다이즘 (Dadaism)은 1915~22년경 스위스, 독일, 프랑스 등의 유럽과 미국에서 일어났던 반 문명, 반 합리적인 예술운동을 말한다. 제1차 세계대전을 낳게 했던 전통적인 문명을 부정하고 기성의 모든 사회적·도덕적 속박에서 정신을 해방하고 개인의 진정한 근원적 욕구에 충실하고자 했던 것이 이 운동의 근본정신을 이룬다.
이 운동은 제1차 세계 대전 중 또는 전후에 세계로 급속히 확대되었다. 독일에서는 반전운동과 코뮤니즘에 결합된 베를린 다다가 1919년에 결성되었다. 미국에서는 1912년경 부터 프랑스의 화가 마르셀 뒤샹이 맨 레이와 함께 뉴욕의 화랑에서 전시회를 개최한 것을 계기로 뉴욕 다다라는 명칭이 붙게 되었다.
베를린 다다의 공식적인 출범은 1918년 2월 리하르트 휠젠벡(Richard Huelsenbeck)이 ‘노이만(Neumann)’ 갤러리에서 시작한다. 그해 4월에는 ‘클럽다다(Club Dada)’가 발족을 하게 된다. 그는 1918년 다다이스트 선언에서 표현주의를 공격하기 시작한다. 구성원으로는 발터메링, 프란츠 융, 게르하르트 프라이스, 빌란트 헤르츠펠데, 존 하트필드형제, 요하네스 바더, 한나 회흐, 라울하우스만등의 미술가 였다. 베를린 다다의 경우 위선과 부정에 대해서 조롱하고 개인의 권리를 옹호하는 아나키즘에 가까운 경향을 보였다. 이들의 행동은 당시의 사회적인 위기에 대항하려는 움직임이었으며, 도발적인 상상력과 언어를 동원하여 사람들의 눈에 띄고자 했고 실제로 이들의 행동은 대중들의 시각에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를 마련한다.
이와 같은 사고의 틀에서 포토몽타주가 탄생하게 되는데, 포토몽타주는 우선 크게 두 가지 양상으로 진행되는데, 첫 번째는 베를린 다다이스트들에 의해 주도된 정치적 포토몽타주가 있으며 두 번째는 우연한 만남과 무의식과 꿈의 세계 등을 표현하는 초현실주의적 포토몽타주가 있다. 그렇다면 베를린 다다에 있어서 다다이스트들이 사진을 이용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원인을 추적 해보면 첫 번째, 합성 포토몽타주를 개발하여 서로 다른 객체를 조합하여 관습적이지 않는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했다. 이런 방법은 다다이스들의 타이포 그래프 실험과 유사한 방법이었다. 또한 이것은 입체파의 콜라주 실험 그리고 취리히 다다이스트인 아르프의 콜라주와도 관계를 맺고 있다. 두 번째, 다다이스트들은 전통적인 사고방식의 총체를 사진으로 간주하고 그 사진을 이용하여 역설적으로 가치체계를 전복시키는 정치적인 수단으로 생각한 것으로 여겨지며, 사진이 가지고 있는 가치라는 것이 사실을 그대로 재현한다는 전통적인 재현 방법에 대한 새로운 시각적 실험을 통해서 그 가능성을 자신들의 작업에서 드러낸 것이다.
베를린 다다의 포토몽타주는 1920년대 당시 독일의 상황과 맞물려 강한 정치 비판적 상황을 드러낸다. 대표적인 작가를 언급한다면 존 하트필드(John Heartfield), 한나 회흐( Hannah Hoch) 게오르그 그로츠(George grosz)를 들 수 있다. 특히, 하트필드와 하우스만의 경우 신문에서 잘라낸 이미지와 기사 등을 이용하여 콜라주를 만들었는데 이런 행위는 그 재료가 가지고 있는 본래의 이미지를 파괴 시키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그중 하트필드의 정치적 포토몽타주는 사회의 혼란과 무질서를 표현하기 위해서 사진을 이용해서 현실을 폭로하는 비판적 기능과 함께 대중 예술적 가능성을 잘 드러낸 작가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가능한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방법으로 포토몽타주를 포스터로 제작하고, 사람들이 즐겨 보는 잡지 표지에 사용하였다. 그의 작업에서 또 하나의 특징을 들 수 있는 것은 사진과 언어를 결합시켰다는 점이다. 그에게 있어서 언어는 자신의 몽타주가 다른 사람들에게 다르게 인식되지 않고 명확하게 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기능한다. 그는 자신의 사상을 사진과 언어의 결합하고 대중적인 전달매체인 잡지와 포스터를 통해서 대중들이 이해하기 쉽게 이용했던 것이다. 예를 들면, <금화를 집어삼키는 슈퍼맨 아돌프 히틀러>라는 제목의 포토몽타주는, 히틀러와 자본가와의 관계를 아주 잘 폭로한 것 중의 하나이다. 1930년대 나치의 폭력성과 기만을 공격한 그의 이미지들은 20세기에 이르러 가장 잘 알려진 작품으로 기억된다.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서 그가 선택한 방법은 왜곡되고 과장된 방식 즉, 서로 다른 크기의 이미지를 연결시키고, 잘려진 부분들을 합성하고 조합하는 작업은 시각적으로 강하게 호소하고, 이미지의 창조적인 측면에서도 효과적이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은 다다이스트들이 포토몽타주를 자신들의 작품에 어떻게 활용시켰는지 구체적인 사레를 살펴보았다. 하지만 몇 년이 흐른 후에 다다이스트들은 포토몽타주를 누가 발명했는지에 대해서 논쟁을 벌이게 된다. 그로스와 하트필드는 정치적인 검열을 피할 의도로 발명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하우스만과 회흐는 자신들이 포토몽타주를 발명했다고 주장한다. 그로스와 하트필드, 하우스만과 회흐는 각자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제시 했지만, 이들의 답변과 연관되는 초기의 포토몽타주는 찾아 볼 수 없었다.
(사진,2),존 하트필드,<금화를 집어삼키는 슈퍼맨 아돌프 히틀러>,1932.
(사진.3),한나 회흐,<케이크 칼로 자르기>,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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