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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남우의 이론 / 평론가와의 대화 4편 - 박평종

배남우의 이론/ 평론가와의 대화 4편 – 박평종

- Intro

가끔은 국내에서 사진비평을 한다고 했을 때, 어떠한 과정을 밟아 나가야 이론가 혹은 비평가로서 활동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볼 때가 있다. 이론학과가 없으니 아카데미를 기반으로 한 미학자가 될 수도 없고, 제도를 통한 등단 기회도 없으니 비평가가 될 수도 없고(사진 비평상을 받았다고 비평가가 되지 않듯이), 결국은 외국에서 따로 이론 공부를 하고 돌아온 소수의 사람들을 가리켜, 이론가 혹은 비평가라고 부르는 것이 현실이다. 이처럼 자생적으로 이론가나 비평가를 양산할 수 있는 체계가 잡혀 있지 않기 때문에, 젊은 이론가나 비평가가 성장하는 과정을 볼 수 없고, 그러다보니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젊은 세대의 비평가들이 대중에게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사진 이론/비평가와의 대화는 앞으로 2회에 걸쳐, 30대 젊은 비평가를 소개하는 기회를 갖고자 한다. 박평종과 손영실이 그들인데, 이들은 유학을 마치고 돌아 온지 몇 년 되지 않았고, 이들이 발표한 논문과 매체에 기고한 글들이 많지는 않기에, 대중에게 조금은 낮선 느낌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따라서 박평종과 손영실과의 인터뷰를 통해, 기존에 많이 알려진 40대 비평가들의 생각과는 다른(물론 서로 공유되는 부분도 있겠지만), 이론과 비평의 새로운 측면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고, 또한 그들에 의해 앞으로 쓰여 질 글들이 이전 세대의 비평가들과는 어떠한 차이점을 보일지, 관심 있게 지켜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배 남 우

- Interview 4, 박 평 종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사진학과를 졸업했고, 파리 8대학에서 조형예술학과 석사를, 파리 10대학에서 철학과 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명지대학교 한국사진사연구소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序

배남우 :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역사적인 사료들이 보관되어 있는 연구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하려하니, 마음가짐이 좀 더 차분해 지는듯한 느낌이 듭니다.(웃음)

박평종 : 인터뷰 요청을 받고, 이론가/비평가가 하는 일이 원래는 글로써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인데, 굳이 인터뷰를 해서 그것을 다시 글로 옮기는 작업을 해야 하는지 의문스럽기도 했습니다. 더군다나 비평 활동도 많이 하지 않았고, 매체에 글을 소개한 적도 몇 번 되지 않는 제게, 인터뷰를 요청하신 이유도 궁금했고요. 준비해 오신 질문들이 어떤 것인지는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알게 되겠지만, 딱딱한 형식으로 진행되기 보다는 토론을 하는 것처럼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침 토요일이라 연구실에는 저희 둘 뿐이니, 시간과 장소에 얽매일 필요도 없을 것 같네요.

비평에 대한 관심의 증대가, 비평의 활성화를 담보해 주지는 못함

배남우 :처음 인터뷰를 한다고 했을 때, 주위에서는 굳이 사진에만 국한하지 말고, 문학이나 미술, 그리고 영화에서 생각하는 사진에 대한 이야기들도 함께 들어볼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이 어떻겠냐는 말씀들을 많이 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사진이론/비평을 하시는 분들을 우선적으로 만나 뵙고 싶었고, 인터뷰를 통해 겉으로 많이 알려지지 않은 분들도 소개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진이론이나 비평을 하는 분들이, 겉으로 드러난 소수의 몇 분에 불과하다는 오해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박평종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본격적의 논의에 앞서, 일반인들이 비평에 대해 갖고 있는 기대감에 대해서 먼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대중들 사이에서 비평에 대한 관심이 사라져 가는 것을 비평의 위기라고 한다면, 당연히 대중들의 관심이 확장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문제는 그러한 관심의 증대가 비평의 활성화를 담보해 주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제 생각은 정말로 비평에 관심을 갖고 있고, 비평을 주의 깊게 읽고자 하는 사람들이, 비록 수는 적더라도 일정 수준 유지될 수 있다고 한다면, 비평의 상황이 문제가 될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론가/비평가들조차도(저 스스로도 그렇지만), 다른 이론가들과 비평가들이 쓴 논문들이나 비평문을 꼼꼼히 읽어보는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현재 진행하고 계신 인터뷰의 대상에 포함된 분들이 쓰신 글들을, 저도 꼼꼼히 다 읽지는 못한다는 것이지요. 하물며 일반인들의 경우는 어떨까요? 한 사람의 비평가가 10개의 비평문을 써낸다고 했을 때, 그 중에서 관심 있는 것 서너 개는 주의 깊게 읽을지 몰라도, 나머지는 마지못해 읽는다거나 제목만 보고 넘어 갈수도 있는 것 아니겠어요? 일반인들의 비평에 대한 읽기가, 꼼꼼한 독서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신문기사의 헤드라인만 읽듯이 이루어지는 독서들이기 때문에, 비평에 대한 관심 자체가 확장된다는 의미를 찾을 수는 없다는 얘깁니다.

문학의 경우, 90년대 후반부터 ‘소설의 위기’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실제로 일반 대중들이 읽는 소설이라고 하는 것은 개개인의 취향에 따르는 것이라고 봅니다. 소설가가 문학의 역사 안에서 치열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써내는 소설들을 일반인들이 읽느냐? 그렇지 않다는 것이죠. 또한 출판물 이라고 하는 것이 따로 있기 때문에, 소설가들은 대중들 절대 다수의 입맛에 맞는 소설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비평의 경우도 똑같습니다. 만약 비평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확장되어 나간다면, 비평가는 그들의 취향에 맞는 비평을 써내야 하기 때문에(읽히지 않는 비평은 아무 소용이 없으니까요), 그 때의 비평이라는 것은 일반인들의 취향에 맞는 비평으로 전락하게 되겠죠. 그러므로 작가와 비평가가 호흡해서 만들어낼 수 있는, 어렵더라도 그런 비평들을 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또한 사실상 그런 비평들을 우리는 요구하는 것 아니겠어요? 그런 면에서 일반인들의 관심이 멀어질수록, 역설적이지만 비평은 더 생명을 얻을 수 있겠죠.

배남우 :현재 이론과 비평이 처해있는 상황이, 굳이 우리가 위기감을 가질 만한 상황이 아니라는 의미이신지 궁금합니다.

박평종 :인터뷰의 제목을 ‘비평의 위기’라고 하셨는데, 앞선 답변을 통해 말씀드렸던 것처럼, 저는 현재 이론과 비평이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이론과 비평은 지금까지 소수에 의해 이루어져 왔고, 이론과 비평에 관심을 갖는 대중들도 늘 소수였기 때문에, 이론가나 비평가가 묵묵히 자기 활동을 하기에는 현재의 상황이 더 낫다고 봅니다.

배남우 :우리가 ‘비평의 위기’라고 하는 것 속에는, 비평이 대중에게 폭넓게 읽혀야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 외에도, ‘예술’이라는 제도 속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외적인 문제들도 포함되어 있다고 봅니다. 2004년 여름, 가나아트센터의 사진,영상 페스티벌에서 있었던 일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당시 가나에서는, 전시에 초대되었던 히로시 스기모토(Hiroshi Sugimoto), 토마스 스트루스(Thomas Struth)의 작품들을 판매가 되었다는 이유로, 전시가 한창 진행 중인 과정임에도 불구하고 구매자에게 넘겼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후에 전시를 보기 위해 갤러리를 찾은 관객들은, 팔려나간 작품들이 걸려 있었던 벽면에서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습니다. 이와 같은 일이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문제를 지적하고 함께 고민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역시 비평의 역할 아닐 런지요?

박평종 :저는 그 전시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지적하신 문제는 비평가가 나서서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부분이라기보다는, 그보다 갤러리 자체의 실수이므로 그와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스스로 수정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저는 그것이 굳이 비평가가 나서야 할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제도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제도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해 비평가와 같은 글 쓰는 사람들이 나서서 지적을 하고 얘기를 한다는 것이 적절한 방법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냥 평범한 시민의 한 사람으로써 지적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비평가의 몫은 아니라는 것이죠. 예를 들어 그러한 문제는 신문 기사를 통해 “어떠한 일이 일어났는데 좋지 않다. 따라서 시정이 요구된다.” 라고 드러낼 수는 있어도, 사람들과 함께 고민해 봐야 하는, 즉 담화의 주제로는 적절치 못한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런 성격의 비평은 비평가가 아닌 신문과 같은 저널의 문화부 기자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더 바람직 할 수도 있겠죠. 제가 생각하는 비평의 역할은 조금 다른 측면이기 때문에, 말씀하신 문제에 대해서는 이 정도로 답변하는 것이 좋을 듯싶습니다.

작가의 작업을 꼼꼼히 이해한 상태에서, 비평가가 자신의 예술론을 펼쳐야

배남우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비평의 역할이란 어떤 것인지 밝혀 주셨으면 합니다. 어렵더라도 작가와 비평가가 함께 호흡해서 만들어 낼 수 있는 비평을 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앞서서 말씀하셨는데, 그와 관련이 있는지도 궁금하고요.

박평종:비평가는 작가와의 호흡을 통해 작가의 작업과, 작가가 고민해왔던 과정을 잘 풀어서 설명해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비평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일 뿐입니다. 거기에서 멈춘다면 신문 기자와 비평가 사이에 구분되는 점이 없겠죠. 따라서 비평가라면 더 나아가 줘야 하는데, 저는 그것이 비평가의 예술론이라고 봅니다. 작가의 작업을 매개체로 삼아 비평가가 자신의 예술론을 발언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럴 경우, 비평가가 자신의 예술론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작업과는 거리가 먼 황당한 글을 써서는 안 되겠지요. 따라서 작업이 가지고 있는 기본 틀 내에서 비평가가 자신의 예술론을 펼쳐야 한다는 것이지, 그렇지 못하다면 일반 시민의 한 사람으로써 전시를 보고 나서, (누구나 자신만의 예술론을 갖고 있으므로) 자신의 예술관을 표현한 글과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따라서 꼼꼼하게 그 작업의 의미를 이해한 상태에서 비평가가 자신의 예술론을 전개야 한다는 것이죠.

배남우 :비평의 정의에 대해 다시금 고민하게 되는데, 왜냐하면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비평의 정의는, 먼저 번 최봉림 선생님과 윤준성 선생님의 인터뷰를 통해 정리했었던 비평과는 정 반대의 성격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특히 작가의 의도를 중요시 한다는 측면에서 말이죠.

박평종 :비평에 대한 학자들의 견해가 모두 다르고, 비평의 범주 자체가 다양하기 때문에, 어떤 비평이 가장 옳고 정당한지 말하는 것은 어렵다고 봅니다. 대게 이런 경우가 있을 수 있겠죠. 미술 사가들이 작품을 해석하는 방식이 있을 테고, 철학자나 미학자들이 작품을 해석하는 방식이 있을 겁니다. 철학자나 미학자들이 작가를 다룰 때에는 자신의 전체 철학과 미학 체계를 움직여 나가는 사유 체계가 있고, 그 사유 체계에 맞는 작가들을 끌어다 얘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메를로-뽕띠는 세잔느를 얘기했고, 들뢰즈는 베이컨을 얘기했고, 푸코는 마네나 벨라스케즈를 얘기했고, 하이데거와 데리다는 고흐를 얘기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처럼 철학자들이 자신의 예술론을 개진할 때에는, 예술 작품을 자신의 철학 체계를 더욱더 단단히 다지기 위한 하나의 논증의 방식으로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반면 미술사가 들의 경우에는, 작가들이 작업을 할 때 가지고 있었던 작가의 사적인 의도에 비중을 두고 해석을 해나갑니다. 물론 미술사가 들의 해석에도 분명 생략과 왜곡의 과정이 존재하지만, 전체적인 비중을 그렇게 두고 있다는 것이죠.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철학자/미학자들과 미술사가 들 사이에 충돌이 빚어집니다. 철학자들은 담화를 활성화 시켜주고, 의미를 확장시켜 나가는데 있어서 미술사가 들의 방식은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미술사가 들의 입장에서는 철학자들을 향해, 그들의 해석은 자신들의 철학 이야기들이지 그것이 예술가들의 작업과 무슨 상관이 있냐고 말할 수 있겠죠. 거기에서 빚어지는 갈등은 사실 오래된 갈등이고, 어떻게 보면 우리가 “올바른 방식이 무엇이겠느냐?” 를 얘기할 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문제라고 봅니다. 물론 미술사가 들이 작품을 해석하는 방식이, 작가의 생각을 존중한다는 측면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저널식 비평과 분명 차이는 있습니다. 또한 철학자나 미학자들이 작품을 해석하는 방식은, 자신의 예술론을 피력하는 방식을 통해 담화와 의미를 확장시켜 나간다는 측면에서, 결국은 비평을 도구화 시키는 경우가 되겠지요. 저는 개인적으로 오늘날의 비평은 앞서 언급한 두 가지 방식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는 형태여야 한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서 국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작업들이, 서양철학 혹은 미학의 논의 속에서 중심이 되는 주제와 전혀 상관이 없다면, 우리가 들뢰즈나 데리다나 메를로-뽕띠를 이해해서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것입니다. 물론 순수하게 ‘기초학문연구’ 라는 측면에서는, 그들의 철학과 미학이 20년 그리고 30년 후에도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화두가 될 수 있겠지만, 지금 현재의 상황에서 만약 비평가가 국내의 작가들과 작품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아주 형이상학적인 주제들을 가지고 이야기 한다면 그러한 글은 비평과는 거리가 멀지 않을까요? 저는 그것은 비평이 아닌 순수기초학문 연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비평이 매우 애매한 위치에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비평을 순수학문이라고 생각하고, 그래서 비평이 새로운 담화를 생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비평이라는 글쓰기에 대한 관점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느 것이 옳다/그르다가 아니고, 그와 같은 차이점이 분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배남우 :그런데 비평가가 작가의 작업을 이해하려하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비평이라는 글쓰기를 한다고 했을 때, 비평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인 가치 평가의 과정이 생략될 수 있지는 않을 런지요? “~의 작업은 ~한 성격을 갖고 있고, 우리에게 ~한 모습을 보여준다.” 와 같은 작업에 대한 원론적인 이야기만 나올 수 있다는 것이지요.

박평종 :비평이라는 글쓰기의 성격이 긍정으로 나가느냐 부정으로 나가느냐, 어떤 것이 필요한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원칙적으로는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작가의 작업에 충실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비판이라고 하는 부분이 비평의 성격으로 등장하기 위해서는, 비평가 스스로에게 비판이라는 잣대가 분명히 필요한 것이고, 또 하나 그와 같은 잣대는 대안을 마련하기 위한 잣대이기 때문에, 무작정 비판만 한다고 해서 그것이 정당한 비판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일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어떤 작가의 작업을 비판의 눈길로 보고 비판적인 글쓰기를 하기 위해서는, 그 작업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도 함께 제시해 줄 수 있어야 하는데, 거기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을 것 같습니다. 첫 번째는 비평가 스스로가 작가에게 새로운 대안들을 만들어 준다는 것이, 굉장히 폭력적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작가는 비평가가 됐든 누가 됐든, 누군가의 말을 듣고 거기에 따라가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 식으로는 작업이 되지 않기도 하고요. 두 번째는 비평가 스스로가 대안을 제시해 줄 수 있는 능력이 안 되는 경우를 들 수 있습니다. 비평가가 새로운 작업의 방식을 제시해 준다는 것은 어떤 점에서 한 시대가 매우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할 부분이고, 사진에 대한 개념들 자체를 근원에서부터 뒤집어 놓을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그러기 위해서는 비평가들 스스로가 굉장히 깊은 안목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이처럼 큰 밑그림을 통해서나 나올 법한 일을 가능하게 할 만한 안목이, 저 스스로도 그렇고 과연 비평을 하는 사람들에게(물론 그런 안목을 갖고 계시는 분들도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있을지 의문이 드는 것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우리가 사진의 역사를 통해 보아왔듯이, 한 시대를 뒤집어놓는 새로운 담화의 씨앗들을 만들어줬던 경우는 몇 가지 안 되니까요. 따라서 그러한 대안을 과연 우리 시대의 비평가들이 제시해 줄 수 있을 만큼, 우리가 성숙해 있느냐에 대해서 반성해볼 필요가 있겠죠. 그러한 반성 없이 비평의 비판적인 기능에 대해서만 말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비평가 역시 개인의 주관적인 취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배남우 :비판의 대상이 구체적인 대상이 아니라, 모호한 대상을 가리키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즉,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막연하게 비판의 대상이 설정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지요. 특히 비평가가 선호하는 경향에서 벗어나 있는 대상들이 그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박평종 :비평가와 역사가의 경우를 예로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비평가들은 동시대에서 이루어지는 작업을 대상으로 하지만, 역사가들이 하는 일은 일정한 시간이 흐른 후, 자신의 사관에 의거하여 작업의 의미를 꿰어 맞추는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평 활동은, 후일 사가들이 구술을 꿰어 맞추기 위한 하나의 재료들이 되겠죠. 그런데 문제는 비평가들이 아무리 객관적인 잣대를 가지고 작품들을 보려 한다 할지라도, 첫 번째는 취향이 섞이고, 즉 아무리 배제하려 해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끼어들어가 있는 경우가 있고, 두 번째는 비평가들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예술관 자체가, 취향이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그 자체가 상당히 주관적이라는 점입니다. 그것은 사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사는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거대한 원칙이 세워져 있지만, 사가들의 사관 자체는 주관적이기 때문에, 비판의 대상과 비판의 잣대 역시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취향에 토대를 두고 있다는 것이죠. 저는 그런 점에서 비판이라는 행위에 대해서 윤리적인 부분이 일차적으로 걸리고, 또 하나는 과연 비판이 가능할 수 있겠냐는 생각도 듭니다. 잘 아시다시피 흔히들 “국내 작가들의 작업이 다른 서양 작가들의 작업을 흉내 내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이런 현상들을 비판해야 한다.” 라는 얘기들을 많이 합니다. 이처럼 비판의 일차적인 대상은 누군가의 작업을 따라서하는 모방의 작업들이 될 텐데, 그러한 문제는 작가들뿐만 아니라 비평가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는 문제라고 봅니다. 즉, 비평가들 역시 순수하게 자신만의 방법론을 가지고 있느냐는 것이죠. 다시 말해 비평가들이 각자 사용하는 비평의 방법론들도 누군가로부터 배운 것, 혹은 모방한 것이라면, 비평가 자신도 모방을 했으면서 어떻게 비평가가 비판의 잣대로 설정한 모방의 문제를, 작가들에게 거론할 수 있냐는 역공이 들어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비판할 수 있는 자격이 과연 나에게 있느냐? 하는 질문도 던져 봐야 할 테고, 결국 그렇다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허무적인 상황이 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평, 특히 비평의 비판적인 기능은 어려운 점들이 많습니다. 글쎄요, 결론이라고 얘기하기는 어렵지만 작가들의 작업도 그렇고, 비평가들에 의한 글쓰기도 그렇고,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치열한 고민의 과정이고 또 그것이 성실한 노동의 산물이라면, 무엇을 모방하고 있느냐의 문제는 나중에 머릿속에서 저절로 지워질 것이라고 봅니다. 모방의 첫 단계에서는 본인 스스로에게 부끄럽고, 그러므로 자신의 작업을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것도 부끄럽지만, 그런 단계들이 걸러진 이후에는 모방이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의미들이 힘을 발휘할 수 없는 시기가 자기 자신에게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단계에서는 비평의 비판적 글쓰기도 가능하겠죠.

배남우 :어차피 비평이 비평가의 주관, 그리고 취향과 거리를 두기 힘들다면(또한 비평의 성격은 이론과는 다르기 때문에) 비평가 스스로 자신의 주관과 취향을 적극적으로 드러낼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이 결코 나쁜 것이 아님을 최봉림 선생님과의 인터뷰를 통해 논의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국내의 경우, 비평가 스스로가 자신의 성향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자신을 비평가라고 얘기는 하는데, 비평 활동을 함에 있어서는 그 성격이 애매모호한 경우가 있다는 것이죠.

박평종 :비평가 스스로가 자신의 글쓰기 성격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철저하게 현장 비평가를 하겠다고 했을 때에는 당연히 당파적인 성향을 띄는 것이 바람직하겠지요. 그런데 만약 그러한 현장 비평가의 성격이 아니라, 아카데미 비평(미술 비평가 김보경 선경님께서는 이를 ‘강단 비평’ 이라고 표현하신적도 있습니다만) 혹은 비평이라기보다는 순수한 연구를 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글을 쓸 때 당파성을 갖는 것이 좋은 모습은 아니겠죠. 왜냐하면 이런 종류의 비평은 어떤 점에서 역사 기술과 유사하고 미학과도 유사하기 때문에, 작가들의 작업을 지금 이 순간 내 눈앞에 비치는 그대로 재단해 버리는 것은, 10년 혹은 20년 후에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심사숙고해야할 문제이고, 계속해서 지켜봐야 하며, 판단을 유보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문제는, 비평가들 스스로가 자신의 글쓰기에 대한 규정을 명확히 밝힌 상황이라면, 모든 걸림돌들이 쉽게 풀릴 수 있는 문제라고 봅니다. 그렇다고 현장 비평, 아카데미 비평 둘 중 어느 것이 더 낫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둘 모두 우리에게 필요한 비평이니까요. 국내의 경우 비평가들 자체가 소수이고, 사실은 작가들도 많다고는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구체적인 사실 하나하나가 너무 쉽게 구분되는 측면이 있는데, 만약 작가 층도 풍부하고 비평가 층도 풍부하다고 한다면, 비평가들 사이에서도 현장 비평이냐, 아카데미 비평이냐 하는 식의 획일적인 구분이 생기지 않겠죠. 또한 쉽게 구분할 수 없어야 바람직하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그렇게 되어야 비평이 풍성해 지는 것이기도 하고요.

배남우 :비평가 자신이 설정하는 글쓰기의 규정도 있겠지만, 제도에서 요구하는 글의 성격도 있기 때문에, 그럴 경우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제도의 요구에 맞추는 글을 써야 하는 경우도 있을 것 같습니다.

박평종 :분명한 것은 제도라는 형태가 어쩔 수 없이, 제도가 요구하는 대로 한 사람의 글쓰기를 끌어당기는 측면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비평가들 스스로가 자신을 어떤 식으로 identify 하고 있느냐와 무관하게 글쓰기 자체는 당파성을 띨 수도 있고, 학술적으로 흘러버릴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런 모습을 두고, 좋다/나쁘다 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의 행위는 자신의 의도대로 이루어지는 법이 없고, (자신의 행위가 의도를 뒷받침할만한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의도에서 비켜나간 부분이 더 확장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내가 어떤 주제를 가지고 글을 썼고, 그 글을 읽는 독자들이 100명이라고 했을 때, 모두 똑같은 의미를 읽어 내느냐?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는 너무 당연한 모습이고, 또 그래야만 글들이 새로운 의미를 낳을 수 있지 않겠어요?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텍스트 독해를 할 필요가 없겠죠. 글자 하나하나가 단일한 의미만을 가리키고 있다면, 텍스트 독해는 있을 필요가 없을 테니까요. 따라서 비평가들의 글쓰기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던 간에, 그것은 이미 떠난 순간 자신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흘러갈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봅니다.

‘학술연구논문’과 ‘학술비평’의 구분은 상당히 애매한 문제

배남우 : 아카데미 비평에 대한 얘기가 앞서 잠깐 언급되었는데, 저널 비평과 학술 비평에 대한 논의는 사실 앞선 인터뷰를 통해서도 계속 이어져 왔던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학술지에 실리는 글들은 모두 논문 형식의 글들인데, 과연 이를 ‘비평’ 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박평종 :원래 학술지에 실리는 글들은 논문이라고 해야 정확할 것 같습니다. 논문들 중 작가론을 예로 들 수 있을 것 같은데, 작가론을 넓은 의미에서 보자면 비평이라 볼 수도 있지만, 엄격하게 보자면 비평과는 다르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작가론은 말 그대로 한 작가에 대한 연구이고, 연구물과 비평은 엄연히 다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비평은 항상 그 대상이 구체적이어야 하고, 구체적인 대상이 없으면 비평적 글쓰기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인데, 이런 면에서 학술연구논문과 학술비평을 엄격하게 구분한다는 것이 저로서도 힘든 일인 것 같습니다.

배남우 : 논문의 경우는 잘 모르겠지만, 일반적으로 학술비평은 학계에서 통용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학술논문과 학술비평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박평종 :그런 표현이 틀린 표현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비평의 경우, 시간적인 기한을 1년, 2년 이렇게 명확하게 구분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contemporary’ 라고 얘기하는 단어 속에는, 동시대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현상들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하는 의도가 담겨져 있습니다. 그런데 동시대에 있어서의 비평 활동을 통해서는 예술작품의 객관적인 의미를 짚어낸다는 것이 매운 어려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한 독해이므로, 객관성을 도모할 수 있는 자료들이 역사적인 것에 비해 충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동시대적인 예술 작품에 부여하는 비평적 의미들이 정당 하냐 그렇지 않느냐에 대해 말할 때, 그것이 틀린 독해라 할지라도 잘못된 비평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비평과는 달리 학술연구라고 하는 것은, 그것을 만약 10년 후에 다시 읽어봤을 때 틀린 부분이 있다면 잘못된 연구를 한 것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연구논문들 같은 경우는 항상 결론이 객관적이어야 하고, 동시에 누구나 용납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하며, 시간이 흐른다 할지라도(물론 새로운 패러다임의 담화의 틀들이 등장해 논의가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는 있겠지만) “이 연구는 잘못됐다.” 라는 얘기가 나와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비평은 매우 자유로운 글쓰기가 될 수 있지만, 연구논문들은 자신의 주관성을 타인에게 설득시켜야 한다는 문제가 남겠죠. 학술지에 실린 논문을 학술비평이라고 해야 할지, 학술연구논문이라고 해야 할지에 대한 논의에 대해 저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배남우 :(제도가 아닌)매체에서 요구하는 글을 쓸 때와, 학술지에 자신의 연구 결과를 싣는다고 했을 때, 선생님께서는 어떤 글쓰기의 형태가 더 자유롭다고 느끼시는지요?

박평종 :학술지에 싣는 연구 논문들은, 자신이 쓰고자 하는 글이 예전에 이미 논의된 적이 있는지부터 시작해서, 어떠한 결론이 도출되었을 때 정당성을 가질 수 있는지 까지, 굉장히 많은 고민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글 쓰는 사람의 자유로운 상상력 이라고 하는 것이, 많은 부분에 있어 제약이 따르기 때문에, 학술지에 싣는 글은 오히려 구속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는 글쓰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매체를 대상으로 비평적 글쓰기를 하는 것이 더 자유롭다고 느끼는 편입니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매체의 경우에는 내가 생각하는 것에 대한 비평문을 썼을 때, 누군가 그 비평문을 읽고 마치 논문을 평가하듯이 “이것은 잘못된 비평이야.” 라고 말한다면,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더 잘못된 것일 테니까요. 이런 면에서 비평적 글쓰기는 재미있기도 하고, 제 상상력도 많이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논문은 그렇지 못하죠.

비평가라면 현대사진에 대해 중립적인 시각을 견지해야

배남우 : 사진에 내재되어 있는 두 가지 속성이 있다면, 하나는 명확한 재현으로 인한 기록적인 속성이고, 다른 하나는 그 이면에 잠재되어 있는 미적인 속성일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진의 미적인 속성을 설명함에 있어서는, 회화의 것을 가져와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프랑스의 사진작가 스테판 꾸틔리에(Stephane Couturier)의 경우, 일차적으로 그의 사진이 건축 과정을 기록한 사진이라면, 그의 사진이 왜 미적인 대상인지를 설명할 때에는, 회화에서 말하는 평면성과 추상성, 그리고 물감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독특한 컬러를 언급한다는 것이지요. 현대 사진가들의 작업을 사진 자체가 가지고 있는 판단의 틀에 의해서는 미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없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Tijuana, Calle Villmar, 2001 43 x 55" cibachrome print		Tijuana Playas #2 48 x 90" cibachrome print

박평종:그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사진이 예술이라는 제도 속에서 인정받기 시작한 것이, 사실은 현대예술이라는 패러다임이 등장한 이후의 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 자체에 대한 판단은 좀 더 유보할 필요성이 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현대예술의 패러다임이라는 것이, 불과 2~30년 정도 밖에 되지 않은 판단의 기준들이기 때문입니다. 1960년대 이전만 하더라도, 사진이 예술작품으로써 제도 속에서 용인될 수 있을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었던 일이고, 사진이 현대예술의 대표적인 표현매체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던 사람들도 없었으니까요. 이처럼 사진이 현대예술의 틀 속에서 성장하고 있고, 그 영역이 넓어지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저는 그럴수록 비평가가 사진에 대해 중립적인 시각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화랑에서 매우 고가에 팔리고 있고, 미술관들에 의해 콜렉션 되고 있지만, 아직은 모르는 일이라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500년 전 당시에는 이름을 날렸을지 모르는 수많은 대가들이, 현재의 미술사 속에 이름을 한 글자도 남기지 못한 경우가 얼마나 많을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동시대 작업들에 대한 비평적인 논의들이 이루어지는 것이 필요하고, 동시에 꾸준히 논의를 만들어 나가기 위한 틀들을 연구하는 작업들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과정 없이는 새로운 담화가 만들어 질 수 없겠죠. 500년 후에는 현재 각광 받는 작가들의 작업에 대해, 어떤 이야기들이 나올지 한 번 지켜봅시다.(웃음)

배남우 :서양에서는 일반적으로 비평 활동을 Art Critic 이라고 하는 반편, 국내의 경우에는(겉으로는 그런 구분이 의미가 없음을 이야기 하지만) 비평가들 스스로 ‘미술 비평’, ‘사진 비평’ 이라는 호칭을 사용함으로써, 미술과 사진을 구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진계 안에서도 이에 대한 논의가 분분한데,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박평종 :대답하기 무척 어려운 문제인 것 같습니다. 이 문제는 비단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서양에서도 여전히 그러한 갈등이 존재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서양에서는 이미 극복된 문제인데, 우리만 극복하지 못하고 여전히 갈등상태에 있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프로세스와 서양에서 사용하고 있는 프로세스의 본질은 같은데, 우리가 생각하는 사진의 본질과 서양에서 생각하는 사진의 본질이 다르다고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진을 받아들였던 역사적인 차이와, ‘Photography’가 아닌 ‘사진’으로 이해했었던 언어적인 차이가, 사진의 본질에 대한 논의를 서로 다르게 규정해 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 이런 이야기들은 어떻게 보면 큰 학술 세미나를 통해 고민해 봐야할 문제일 것 같은데, 어쨌든 사진은 출발 자체부터 운명적으로 외줄타기의 운명을 타고 났기 때문에, 앞으로도 이 문제는 끊임없이 지속될 수밖에 없는 문제라고 봅니다. 따라서 저 역시 아직까지는 그 문제에 대해서 무어라 명확하게 답변을 해드릴 수 없는 입장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의 질문을 던졌을 때 그 질문 자체가 갖고 있는 권위에 의해, 질문을 받는 순간 Yes 혹은 No 라고 말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칫 잘못하면 질문이 가지고 있는 강제성에 의해 전혀 유익하지 않은 논의 속으로 빨려 들어갈 수도 있다고 봅니다. 어떻게 보면 인류의 역사를 통해 던져졌었던 근원적인 질문들에 대해서는, 여전히 아무도 명확한 답변을 할 수 없는 것처럼, 미술과 사진의 구분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도 너무 조급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겠죠. 또한 명료하게 답하는 것이 위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답변이 사진의 가능성을 축소시켜 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대답이 Yes가 됐든 No가 됐든, 사진의 가능성을 축소시킬 것은 분명한 사실이니까요. 사진사의 경우가 좋은 예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더 넓게 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진의 자율적인 역사라는 부분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오히려 축소지향적인 길을 걸어온 사실을 우리는 떠올릴 필요가 있습니다. 결국 사진의 역사는 미술의 역사 속에서, 고작 160여년 정도의 상당히 좁은 범주가 되어 버렸지요.1)

분명한 사실은 현재 시점에서는 시각 예술의 장르를 구분한다는 것이, 의미 없는 일이 되어 버렸다는 점입니다. 현대 예술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정황들이 그렇고, 제도적으로도 서양과 국내 모두 마찬가지로 각 대학에서 매체를 가지고 학과를 구분하는 것의 의미가 없어진 것이 사실이니까요. 작가들 스스로도 모든 매체를 섞어서 작업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미술과 사진에 대한 질문 자체가 무의미한 질문은 아니지만,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는 것 역시 무의미한 일이라고 봅니다.

結

배남우 :선생님과의 인터뷰는 이전까지는 알지 못했었던 비평의 또 다른 측면을 바라볼 수 있었던 인터뷰였던 것 같습니다. 특히 인터뷰의 중심 테마로 설정했던 ‘비평의 위기’ 에 대해, 현재의 상황이 위기라기보다는 오히려 비평 활동에 집중할 수 있는 면에서 좋은 기회일 수 있다고 말씀하셨던 부분과, 비평이라는 행위는 비평가가 자신의 예술론을 중점적으로 주장하기 보다는, 그 이전에 작가의 작업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부분이 그렇습니다.

박평종 :저 역시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었던 문제들을 질문해 주셔서, 이번 인터뷰를 통해 생각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모쪼록 앞으로 다른 선생님들과의 인터뷰도 잘 진행하시길 바랍니다.

배남우 : 긴 시간 동안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¹⁾최근에 들어와서 이루어지고 있는 사진의 역사에 대한 논의 중의 하나가 Pre-History로 거슬러 올라가려는 움직임인데, 이에 따르면 사진의 역사는 1839년이 아닌 훨씬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단순히 르네상스 시대의 카메라 옵스큐라가 아닌) 라스코 동굴벽화까지 이르기도 합니다. 이럴 경우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사진의 자율적인 역사는 모두 허구가 될 수도 있겠죠. ; 박평종

인터뷰 기획 및 진행 : 배남우

본 인터뷰의 저작권은 배남우씨와 fotato.com에 있습니다. 따라서 인터뷰의 무단 배포와 전제를 금하며, 관련 사항은 배남우씨와 fotato.com으로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배남우씨는 현재 상명대학교 예술, 디자인 대학원 순수사진학과 휴학 중이며, 제 7회 사진비평상 평론부문 우수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인터뷰를 읽고	감상자	2007.06.10
평소 접하기 어려운 평론가들의 인터뷰를 읽고 나니 어렵게 생각되던 사진이론이 좀 쉬어진 느낌입니다. 앞으로 작가들과의 인터뷰도 계속 진행됐으면 좋겠네요.

	[ 행사&세미나 ] 2011상반기 코아스페이스 문화예술 아카데미-사진가를 위한 미학[박평종]	2011.02.18

	[ 출판 ] [신간] 한국사진의 선구자들	2007.07.30

	[ 출판 ] 박평종 `사진의 경쟁` 출간	2006.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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