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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남우의 이론 / 평론가와의 대화 5편 - 이영준

배남우의 이론/ 평론가와의 대화 6편 – 이영준

- Interview 6, 이 영 준

1961년 서울생. 서울대학교에서 미학과 석사를, 미국 뉴욕주립대(빙햄턴)에서 미술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계원조형예술 대학교 사진예술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이미지 비평가 및 기계 비평가로써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사진, 이상한 예술>(눈빛, 1998), <이미지 비평-깻잎머리에서 인공위성까지>(눈빛, 2004)가 있다.

序

사진을 비평하는 이유는, 그것이 기계에 의해 만들어지는 이미지이기 때문

배남우 :선생님께서는 어떤 글에서는 ‘이미지 비평가’, 어떤 글에서는 ‘기계 비평가’ 혹은 ‘전시기획 비평가’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계신데, 이처럼 여러 명칭을 사용하셔야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단순히 선생님께서 쓰시는 글의 성격에 따라 바뀌는 것인지도 궁금하고요.

이영준 :글의 성격에 따라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사진비평을 시작한 것은 1988년 혹은 89년 즈음부터였는데, 90년대 말까지는 ‘사진 비평가’라는 명칭을 사용해 왔고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는 ‘이미지 비평가’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004년 3월 이미지 비평과 관련된 책을 낸 이후부터는, 방향을 약간 틀어서 ‘테크놀로지 비평가’ 혹은 ‘기계 비평가’라는 명칭도 함께 사용하고 있습니다. ‘테크놀로지 비평’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대뜸 ‘첨단 테크놀로지’를 떠올리는 경우가 있는데, 제가 추구하는 테크놀로지 비평은 그와 같은 첨단의 것도 아니고 최근의 디지털 테크놀로지도 아닌, 우리 생활의 가장 근간이 되는 것이면서도 우리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테크놀로지를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철도, 항공, 선박이 바로 그것이죠. 이러한 종류의 테크놀로지에 있어서 핵심은, 테크놀로지가 갖고 있는 Product, 메커니즘, 역사, 신화 그리고 그 속에 속해있는 인간들인데, 결국은 모두 ‘기계’와 연관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으로 ‘기계’라고 하면 사람들이 첨단의 것을 떠올리기 보다는 딱딱하거나 정적인 것을 떠올리고, 첨단의 기술이라고 하면 소프트하고 영역과 영역 사이의 이동이 가능한 ‘하이퍼 테크놀로지(hyper technology)’를 생각하는데, 저는 그러한 첨단의 것 보다는 특정한 시간과 공간을 차지하는 기본적인 기계에 관심이 있습니다. 제가 사진을 비평하는 근본적인 이유도, 그것이 기본적으로 기계에 의해 만들어지는 이미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무슨 생각이 들었냐 하면 작가에게 있어서 정체성이 중요하듯이, 비평가의 경우에 있어서도 똑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최근에는 비평의 방향성을 자연스럽게 기계 쪽으로 집중하게 된 것 같습니다. ‘기계 비평가’라는 명칭을 사용하면서, 제가 하고자 하는 비평의 성격을 규명하고 싶기도 했고요. 저는 항상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제가 하는 일은 적어도 30년 이상 다뤄왔었던 일이라고 얘기합니다. 실제로 저는 철도, 항공, 선박을 초등학교 시절부터 좋아해서 지금까지 계속 좋아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면서 한번 기계들에 대해 해석을 해보자는 생각에, ‘기계 비평가’라는 명칭을 사용하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사진비평을 포기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제가 주로 다루고자 하는 것이 기계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관심을 갖는 사진의 폭은 굉장히 좁은 것이 사실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대부분의 국내 작가들의 사진에 관심이 없습니다. 사진비평을 하다보면 수많은 원고 청탁이 들어오지만, 저는 대부분의 원고 청탁을 거절하는 편입니다. 왜냐하면 제 성격과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배남우 :대부분의 국내 작가들 사진에 관심이 없다는 말씀은, 사진계에서 어떤 작업들이 생산되는지, 비평가들에 의해 어떤 비평이 이루어지는지도 관심이 없다는 말씀이신지요?

배남우 :사실 저는 사진 쪽에서는 특별하게 활동하는 것이 없습니다. 인간적인 관계에 있어서도 사람들의 면면만 알 뿐이어서 만나면 간단하게 인사만 나눌 정도지, 그렇다고 그들과 어떤 특정한 일을 함께 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일 수 있지만 저는 사진학과를 졸업하지도 않았고 사진을 제대로 배워본 적도 없기 때문에, 사진계에는 제가 스승 혹은 선배라고 불러야 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연륜과 나이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모든 사람들을 같은 계통에서 일하는 동업자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따라서 지금 제게 질문하신 내용처럼 국내사진계의 작가들이 무엇을 생산했고, 거기에 주목하여 비평을 한다는 개념 자체가 저에게는 없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제가 비평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NASA의 위성에서 촬영된 이미지들처럼 순수하게 작가 없이 존재하는 이미지들이나, 미국방부 소속의 사진병들이 촬영한 사진들이지, 사진계라고 하는 곳에서 생산되는 이미지들, 사진계의 아무개 선생님이 프린트를 잘해서 아무개 미술관에서 하는 전시들은 아예 비평의 대상으로 삼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혹시 모르죠. 어떤 작가가 인공위성 사진으로 작업을 했다면 관심을 가질지 모르지만, 그런 작업을 하는 작가는 앞으로도 나타나지 않으리라 봅니다. 그리고 ‘사진계’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제 자신의 정체성을 뚜렷이 하기위해 어떠한 계로 들어가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것은, 굳이 계(界)로 따지자면 과학&기술 철학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쪽에서도 특별한 계로 들어가고 싶지는 않습니다. 특정한 계로 편입되어 규정되기를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배남우 :‘기계 비평가’의 경우에는 선생님의 답변을 통해 충분히 이해가 된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전시기획 비평가’의 경우에는 어떤 계기로 그러한 명칭을 사용하게 되셨는지요?

이영준 :저는 개인적으로 ‘전시기획 비평가’라는 명칭을 사용한 적이 없습니다. 제 자신의 정체성은 항상 비평가가 먼저이지 큐레이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글을 실었던 곳에서 ‘전시기획 및 비평가’라고 표기했어야 했는데, 잘 못 표현했기 때문에 그러한 오해가 생긴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러므로 비평을 하시는 다른 분들처럼, 비평을 위주로 하면서 가끔 기회가 있을 때 전시기획도 함께 하는 정도로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가끔 전시기획을 할 때에도, 사전에 구체적으로 미리 계획을 짜서 기획을 한다기보다는, 대게의 경우 우발적으로 외부에서 요청이 들어오는 편이고, 또 그것이 제 성격과도 잘 맞을 때에만 하는 편입니다. 만약 전문적인 큐레이터라면 구체적인 일정이 체계적으로 잡혀있어야 하는데, 제가 그런 식으로 전시기획을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죠. 또한 실제로 전시를 기획할 때에도, 직업적으로 전시를 기획하시는 분들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진행하는 편입니다.

배남우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다르게 진행되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신지요.

이영준 :기본적으로 저는 전시기획을 작가들과 함께 놀아보는 판으로 생각한다는 점이 다른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전시기획을 할 때에는 저도 재미있어야 하겠지만, 함께하는 작가들도 재미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전시기획을 하고나면 작가들과도 더욱 친해지고, 작가들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전시를 통해 고양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 전시기획이라는 것이 외국의 유명한 큐레이터들도 그렇지만, 자신이 잘 알고 친하게 지내는 작가들을 중심으로 전시를 기획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부에서는 이를 두고 자기편끼리만 나눠 먹는 다는 식으로 안 좋게 보는 경향이 있는데, 저는 전시기획이라는 것도 일종의 영화를 만드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에, 신뢰할 수 있고 검증된 사람들과 함께해야 한다고 봅니다. 실력도 모르고, 검증도 되지 않은 사람과 함께 일할 수는 없다는 것이죠. 파트너 쉽이 잘 되어야 전시기획도 잘 되는 것이지, 제가 절대적인 큐레이터의 입장에서 작가들을 내려다보며, 마치 장기 말을 움직이듯이 작가들을 움직이는 것은 전시기획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Texas Dust Storms, Image Credit : NASA/GSFC/MODIS Land Rapid Response Team/Jeff Schmaltz

또 다른 점은 제가 기획하는 전시에는, 항상 작가가 없는 사진을 넣는다는 점입니다. 인공위성 사진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는데, 제가 예전부터 관심을 갖고 있었던 범주의 사진이, 작가가 존재하지 않는 사진이었기 때문입니다. 유명한 작가가 촬영한 사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여기저기 옮겨 다니면서 유명해지고 또 큰 역할을 했던 사진들처럼 말이죠. 예를 들어 얼마 전 황우석 박사가 초췌한 모습으로 병상에 누워있는 사진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시민들의 분노가 폭발했던 적이 있었는데 한 마디로 말도 안 되는 경우였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최진실이 장미빛 인생에서 시청자들의 눈물을 짜내는 것과 똑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러한 종류의 이미지들에 대한 해석에 관심이 많습니다.

배남우 :사진과 비평에 대한 선생님의 관점은 대중으로 하여금, 선생님께서 주로 사회 문화적인 맥락과 현실적인 상황을 드러내 보일 수 있는 사진을 선호한다는 편견을 갖게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선생님께서 쓰셨던 글이나, 기획하셨던 전시를 보고나서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고요.

이영준 :저는 순수하게 이미지가 가지고 있는 매력과 흡입력 때문에 비평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이를 오해하고 있는 경향이 많은 것 같습니다. 예전에 어떤 분께서는 제가 하는 이미지 비평에 대해, 운동권의 입장에서 책 몇 권 안 읽고 쓴 비평이라고 하셨던 적도 있었으니까요. 아마도 그 분께는 제가 이미지 자체에는 관심이 없고, 운동권의 입장에서 이미지를 이용하려는 목적으로 글을 쓰는 것처럼 보였던 것 같습니다만, 이 역시 제가 하는 비평에 대한 오해로부터 비롯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진을 사회 현실적인 요소의 반영이라고 보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제가 하고 싶은 비평이, 그 사진을 통해서 어떠한 사회 현실이 반영되어 있는가를 보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왜 이 사진이 나의 눈길을 끌까?”와 같은 질문처럼, 사진 그 자체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이 지금까지 저를 걸어오게 했던 것이죠. 하지만 확실한 것은 저는 누드사진과 한국에서 생산되는 예술 사진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보도 사진에는 약간 관심이 있는데, 보도 사진이 특정한 사회 현실을 반영하기 때문에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독특한 이미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저의 궁극적인 관심사는 볼거리 즉 이미지인데, 볼거리와 이미지에는 사회 현실이 모두 포함되니까요. 이미지는 일종의 비빔밥과 같습니다. 사람들이 비빔밥을 먹는 이유는, 비빔밥 속의 재료 각각의 것들이 맛이 있어서도 그렇겠지만, 각각의 재료들을 통째로 비벼놓았을 때의 맛이 독특하기 때문에 즐겨 먹는 것 아닐까요? 저는 비평가라면 가장 근본적인 물음을 던질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의 작품을 ‘좋다’ 혹은 ‘나쁘다’라고 말하는 것은 비평가가 해야 할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누군가의 작품을 ‘좋다’, ‘나쁘다’라고 말하는 사람을 가리켜 비평가라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해설가이지 비평가가 아닙니다. 제가 생각할 때에는 사람들이 어떤 작가의 작품에 대해 좋다고 말을 하면, 그 근거를 따지는 것이 비평가의 역할이라고 봅니다. “왜 이 작품을 좋다고 말하나?”, “이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왜 이 작품을 싫어하지 않는가?”, “여러 반응들이 있을 법 하지만, 왜 이 작품에 대해서는 좋다고 하는 특정한 반응에 치우쳐 있는가?”와 같은 가장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이 비평가라는 것이죠. 이런 점에서 비평가는 가장 기본적인 층위까지 내려가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정한 상황에서 그림을 그려도 되고, 소리를 녹음해도 되는데, 왜 사람은 그것을 사진으로 촬영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제가 하는 모든 비평의 근저에 깔려 있습니다. 그 원인을 밝히는 과정에는 여러 다양한 요인들이 포함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모든 것을 사회 현실적인 요인으로 환원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저에 대한 잘못된 오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오해는 어쩌면 제 잘못 때문에 비롯된 것인지도 모릅니다. 글을 쓰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그렇게 읽히도록 한 것은 저의 잘못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비평가도 작가만큼이나 창조적이어야

배남우 :최근 선생님께서 쓰신 글을 보면, 과격하고 직설적인 표현이 과감 없이 드러날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러한 표현을 접하고 난 이후, “통쾌하다.” 혹은 “솔직해서 좋다.”라는 반응이 있을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이 과연 “비평가가 글을 통해 표현해도 되는 것인가?”하는 반감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최근(2005년 12월) Area Park(박진영)씨의 전시 서문 끝 부분에, “‘이웃을 사랑하자’는 식의 헛된 자선이나 희망을 품은 병신 같은 메시지를 버린 곳에 박진영의 구원이 있다.”라고 표현하신 걸 보고 조금 놀랐던 생각이 납니다.

이영준 :제 글이 거칠고, 투박하고 또 직설적이거나 독설 적인 이유는 세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비평가에 의한 담론의 새로운 생산이라는 측면 때문에 그렇습니다. 비평가는 이미지를 다루기도 하지만, 사실은 글을 다루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지에 대한 담론이 있다고 했을 때, 그러한 담론을 모아서 정리하고 또 새로운 담론을 생산하는 것도 비평가의 역할이라는 것이죠. 그런데 제 개인적으로는 다른 비평가들이 나누는 담론, 하는 얘기들, 그리고 쓰는 글의 어투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특히 그 중에서도 사이다에 미원을 탄 것과 같은, 달짝지근한 칭찬의 말들을 제일 싫어하는 편입니다. 제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작가가 먼저 작품을 만들어 놓으면, 거기에 비평가가 붙어서 작품에 대해 무어라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이와 같은 모델을 부정합니다. 비평가와 작가는 함께 가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이고, 비평가가 글을 쓰는 행위는 지금 눈앞에 있는 작가의 작품에 대해서 쓰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올 작품에 대한 사전영향을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이런 작업이 나왔으면 좋겠다.”와 같은 소망의 뜻 일수도 있다는 것이죠.

두 번째 이유는 비평가도 작가만큼이나 창조적이어야 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창조적이어야 한다는 말 속에는 기본적인 의미의 창조성뿐만 아니라, 예술가로서의 광기도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예술에 관계된 사람들, 즉 작가, 비평가, 전시기획자, 예술행정가들에게는 광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서 예술행정가가 광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만약 서울역 광장에서 어떤 전시를 한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그 전시에 대해 여러 이유를 나열하면서 불가능함을 얘기하지만, 그것을 가능하게끔 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설치미술가인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 부부(Christo and Jeanne-Claude)의 사례가 좋은 예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들 부부의 작업을 본적이 있으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그 크기나 규모면에 있어서 상상을 초월하는 작업들이 대부분입니다.


Valley Curtain, Rifle, Colorado, 1970-72 Christo and Jeanne-Claude, Photo by Harry Shunk ©1972 Christo		Wrapped Reichstag, Berlin 1971-95 Christo and Jeanne-Claude Photo by Wolfgang Volz ©1995 Christo

동상이나 다리, 건물, 해안선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것들을 천으로 뒤집어씌우거나, 계곡에 커튼을 친다거나, 바다 위의 섬 주위에 천을 두른다거나 하는 식의 작업들을 보면, 보는 이로 하여금 황당한 생각이 들게끔 할 정도니까요. 그런데 이들 부부가 이런 식의 작업들을 해올 수 있었던 것은, 행정적의 역할을 담당하는 부인 잔 클로드의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 했을지도 모릅니다. 크리스토의 부인이자 동료인 잔 클로드는 공사 작업을 계획하고 주관하는 등의 행정가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지만, 사실은 부인도 남편인 크리스토와 똑같은 예술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행정의 차원에서 예술을 한다는 것이죠. 언젠가 이들 부부가 독일 국회의사당을 포장하는 작업을 준비하면서 사용되었던 행정과 관련된 서류들을 모아 책으로 낸 것을 본적이 있는데, 그 책의 분량이 어마어마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제가 쓰는 과격한 어휘들이 앞에서 말씀드린 광기로 인한 것이라는 확신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광기가 있는 사람들은 창조적이기 때문입니다. 가둘 수 없는 광기처럼 말이죠. 영어로 표현하면 'uncanny'라고 할 수 있는데, 흰 도화지에 점 하나를 찍어도, 그것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심리적인 불안함을 줄 수 있는 광기가 비평가에게도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세 번째 이유는 비평가가 글을 쓸 때에는, 최대한 자신이 하고 싶고 표현하고자 하는 말들을 자연스럽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직설적인 표현이 담긴 글을 자주 쓰는 편입니다.(하지만 그렇다고 억지로 그러한 표현을 해서는 안 되겠죠) 따라서 비평의 어휘도 창조적으로 할 필요성이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단순히 말투만 가지고는 창조적이 될 수는 없기 때문에, 비평가는 자신의 비평적인 어휘를 적용시킬만한 대상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남들이 다 쓰는 피카소를 가지고 글을 쓴다고 했을 때에는, 창조적인 글이 될 수 있는 여지가 적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물론 100% 자기만의 것이라 말할 수는 없겠지만), 남들과 차별화 할 수 있는 자신만의 수사법과 그러한 수사법이 적용될 수 있는 대상을 발굴해야 합니다. 여기서 수사법은 단순히 말을 꾸미는 것이 아니라, 말을 명료화 시키는 전략이면서 글을 쓰는 사람의 창조성이 발휘될 수 있는 통로와도 같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 이후에는 ‘창조성’이라는 말이 더 이상 통용되지 않기 때문에, re-articulation, re-organization, re-think 라는 표현을 자주하지만, 저는 그것이 결국은 창조성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요즘 용어로 말하자면 ‘새로운 회로를 짜는 것’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완전히 새로운 회로를 짜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회로가 가지고 있는 기능을 모두 가지고 있지만, 가지고 있는 resource를 조합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 예전에는 사람들이 벽돌을 가지고 집밖에 지을 줄 몰랐다면, 새로운 비평가는 벽돌을 조합해 여러 다른 형태의 새로운 것을 만들 줄 알아야 한다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말씀드리면, 제 자신의 말투가 원래 그렇기 때문에 글을 쓸 때에도 그러한 말투가(직설적인) 표현되는 것 같습니다. 어떤 특별한 영향을 끼치기 위해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 글을 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표현되었다는 것이죠. 저는 비평가는 항상 자신의 이야기를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 어딘가에서 주워들은 것을 잔뜩 퍼다 나르는 비평가는 비평가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제 개인적으로는 그러한 비평가를 좋아하지도 않습니다. 비평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써야하는 이유는, 비평가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은 신과 같은 보편자가 아닌 특수자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신이 아니기 때문에 모든 입장에서 동시에 발언할 수 없습니다. 특수자는 말하는 위치, 즉 ‘발화의 위치’가 있습니다. 따라서 한 번에 하나씩 발언할 수밖에 없는데, 비평가는 늘 ‘here and now(지금 여기)’를 드러낼 수 있는 발언을 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비평가가 발언을 할 때, 비평가의 말투와 수사가 ‘here and now’를 규정하는 발화의 위치를 결정짓는 요소라고 봅니다. 그런데 저는 지금까지 사람들이 제게 말을 안 해주기 때문에 그랬었는지, 제 글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별로 듣지 못했는데, 혹시 제 글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들으신 것이 있으시면 어떤 견해들이었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신지요?(웃음)

배남우 :어차피 똑같은 글을 읽는다 해도, 읽는 사람들마다 그 글에 대해 받아들이는 느낌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무어라 명확하게 말씀드리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어떤 분들은 선생님의 직설적인 표현을 “~하는 체”하는 글보다 훨씬 솔직하고 통쾌한 글이라 말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어떤 분들은 비평가가 모든 사람들이 읽는 글에, 비평가 개인의 직설적이고 직접적인 표현을 한다는 것은 적절치 못한 것 아니냐고 말하시는 분들도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영준 :그렇군요. 그런데 제 글은 모든 사람들을 위한 글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글을 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몇 번의 사례를 통해 대중의 감성이란 것이 굉장히 한심하다는 생각을 했고, 그 이후로 저는 대중을 대상으로 글을 쓴다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결론을 내렸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점은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이리저리 잔머리를 굴리지 않고 내지르듯이 시원하게 글을 쓰면, 글을 읽는 분들도 글의 페이스를 함께 느끼신다는 것이죠. 저는 글을 쓸 때, 주로 앉은 자리에서 한 번에 글을 쓰는 편입니다. 그러다보니 글을 읽는 분들도 그 숨 가픈 페이스를 함께 느끼며 속도를 따라가게 되는데, 독자의 입장에서 이렇게 글을 읽고 나면 후련하다는 말씀들을 하시더군요. 하지만 제가 억지로 쓴 글, 한번 쓰다 계속 쓰지 못한 채 어딘가에 방치해 두었던 글을 다시 꺼내 이어서 쓴 글처럼 맥락이 끊기는 글은, 읽는 분들도 한 번에 그것이 쓰고 싶지 않은 글이라는 것을 아시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글을 쓰면 누군가가 싫어할 것이다.”라고 생각하면 어떤 글도 쓰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모든 사람들을 충족시킬 수 있는 글이란 없으니까요. 언젠가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예쁜 글들을 모아 놓은 홈페이지를 본 적이 있는데, 모든 사람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비평가가 그와 같은 예쁜 글을 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인문학과 철학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나 학습이 부족한 것이 현실

배남우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서 느낄 수 있는 특징이 있다면, 어떠한 사실 혹은 개념에 대해 선생님께서 선언 혹은 단정을 내리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는 점입니다. “대한민국에서 푼크툼이나 아우라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라고 표현하신 부분을 예로 들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러한 표현은 마치 다른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하는 어떠한 사실에 대해, 나는 제대로 된 답을 알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심어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푼크툼을 얘기했던 바르트나, 아우라를 얘기했던 벤야민이 아닌 이상 그들이 처음 사용했던 표현의 정확한 의미를 어떻게 알 수 있냐는 것이죠.

이영준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도 푼크툼(punctum)이나 아우라(aura)의 의미를 잘 알고 있지는 못합니다. 만약 ‘푼크툼’이라는 단어 안에 담겨 있는 의미가 100 정도라면, 저는 50의 의미도 잘 알지 못하는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푼크툼’을 사용하는 다른 사람들을 봤을 때, 그들은 그 단어가 가지고 있는 의미의 십분의 일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카메라 루시다를 꼼꼼히 읽어보지도 않은 채 책을 들척이다가,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는 사진의 미세한 부분을 푼크툼이라고 하니까, 그걸 보고 “멋있다.”라고 말하는데 이는 매우 잘못된 이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텍스트는 다른 텍스트 사이에서 차용 관계로 의미의 미끄러짐이 일어나는데, 카메라 루시다의 경우도 똑같습니다. 따라서 어떤 텍스트가 카메라 루시다와 연관되는지, 또한 카메라 루시다는 어떠한 지식의 체계와 연관되는지 총체적으로 파악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도판에 나와 있는 표면적인 단어 그대로의 의미에만 열광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죠. 사람들이 무엇인가 애매하고 비밀스럽고 사적인 것을 좋아하다보니, 푼크툼이 갖고 있는 본래의 뜻에서 하향평준화 시켜 표현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 수가 뻔히 보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푼크툼에 대해 잘 못 알고 있다는 선언조의 글을 썼던 것이지, 제가 푼크툼의 정확한 의미를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글을 썼던 것은 아닙니다. 잘 모르는 제가 보기에도 한심하다는 것이지요.

아우라의 경우도 푼크툼의 경우와 똑같습니다. 벤야민이 얘기했었던 아우라의 개념은, 벤야민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유대교의 신비주의와 맑스주의가 결합되어 나온 개념입니다. 여기서 벤야민의 맑스주의는 아도르노 와도 다르고, 동시대의 이론가나 비평가들인 루카치나 친한 친구였던 베르히트와도 다른데, 아우라는 벤야민의 독특한 맑시즘이 유대교의 신비주의와 결합해서 나온 특수한 매핑(mapping)을 가진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사진이 뿌옇거나 어슴푸레하면 대게 “사진에 아우라가 있다.”라고 말하는데, 이는 매우 한심하고 천박한 발상입니다. 제 자신도 그러한 텍스트를 읽으면서 스스로의 부족함으로 인해 벽을 느낄 때가 많은데, 한국사진계에서 이를 논의하는 레벨을 보면 답답할 때가 많습니다.

배남우 :철학적이고 인문학적인 용어가, 문학적인 유행어처럼 사용되고 있는 경향에 대한 비판과 문제제기를 하신 것 같습니다. 국내사진계처럼 바르트와 벤야민이 신화화된 곳도 없다는 지적이 있는데, 이는 자칫 잘못하면 그들의 이론이 절대화될 수 있는 위험성에도 늘 노출되어 있음을 의미한다고 봅니다. 바르트와 벤야민 뿐만 아니라 후기 구조주의 이후로 숱하게 언급되는 이론들을 살펴보면, 늘 남는 것은 그때마다 화자 되는 용어들 뿐 임을 알 수 있으니까요. 이론에 대한 오해와 잘못된 선입견을 갖게 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영준 :아우라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보들레르의 몇 가지 모티브에 관하여’라는 보를레르의 에세이와, 국내에도 번역되어 나와 있는 발터 벤야민의 문예 이론에 실려 있는 ‘기술복제시대의 예술 작품’, 마르셀 프루스투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서로 결합되어 읽혀야 합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에 있어서 ‘기술복제시대의 예술 작품’에 나오는 몇 줄만 읽고 난 후, 아우라를 애매한 서정시에 나오는 “꿈결 같은 분위기다”와 같은 감상적인 부분에만 치우쳐 설명하고 파악하려는 경향이 많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 아우라는 벤야민의 역사 철학적인 개념이고, 푼크툼은 바르트의 중요한 인식론적 개념이라고 해야 타당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나 학습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고, 책임 없는 이론가나 비평가가 사용하고 설명하는 것을 대중들이 무비판적으로 사용하는 것 역시 현실입니다. 이와 비슷한 사례들은 많습니다. 최근에는 아우라나 푼크툼 외에도 보드리야르가(Jean Baudrillard) 얘기했었던 시뮬라크르(simulacres)역시 유행어처럼 사용되고 있으니까요. 이러한 모습들은 어떤 개념에 들어있는 복잡한 가지들은 모두 잘라 버리고, 열매만 똑 따서 접시위에 올려놓는 것과 똑같다고 봅니다.

배남우 :푼크툼이나 아우라와 같은 개념적인 단어 외에도, 선생님께서는 “흔들리면 내면성, 뽀샤시 하거나 뿌여면 주관성”으로 대변되는 사진들을 우리가 예술 사진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서도 반대 하고 계신데, 여러 장르의 사진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특정 장르의 사진만을 편파적으로 부정하시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지 여쭙고 싶습니다.


Cindy Sherman, Untitled #66,1980		Cindy Sherman, Untitled Film Still #21, 1978

이영준 :왜냐하면 예술 사진에 대한 그러한 개념은, 100% 틀린 것이기 때문입니다. 미술에서는 안 그러는데(그렇다고 늘 미술과 비교하는 것은 그렇습니다만), 왜 사진에서만 그렇게 예술에 대한 규정을 협소하게 하는지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또한 그런 종류의 사진은 예술 이라기보다는 키치에 가깝습니다. 예술이 키치가 되는 것은 순간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예술의 개념은 성찰에 대한 능력, 즉 reflection입니다. 우리가 작품을 봤을 때,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끔 해주는 능력이라는 것이죠. ‘다시’라는 것은 기존에 우리가 갖고 있었던 감각과 개념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 대해서 뒤집어엎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건축 사진을 찍는 사람이, 우리가 항상 보는 건물을 묘하게 찍었다고 해보죠. 그리고 그 사진을 본 사람들로 하여금, “이 건물을 이렇게도 볼 수 있구나.”하는 생각을 하게하고, 건물과 건축 그리고 도시 환경, 카메라의 시점과 인간의 시점에 대해 비교 분석을 하게끔 해준다면, 그 사진은 성찰을 가능하게 해주는 사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뿌옇거나 뽀샤시한 사진에서는 그러한 성찰을 느낄 수 없습니다. 보는 사람을 맹하게 만들 뿐이죠. 키치적인 사진들의 특징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사진에 몰입하게 한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잠시 환상 속에 빠져있다 현실로 돌아오면 그걸로 끝입니다. 만약 그러한 사진에 성찰의 기능이 있다면, 사진을 보고 나서 “나는 이렇게 안 봤는데, 이 사람은 왜 이렇게 봤을까?”라는 생각이 들게끔 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죠. 신디 셔먼의 사진도 똑같습니다. 그녀의 사진 속에 담겨 있는 것은 성찰밖에 없습니다. “왜 자기 모습을 찍었을까?”, “왜 B급 영화의 스틸 장면을 연출해서 찍었을까?”, “이미지로 표현할 수 있는 자신의 정체성이란 무엇일까?”와 같은 성찰적 지점을 빼면, 신디 셔먼의 사진은 감각적으로 아름답지도 않고, 프린트가 미묘한 것도 아니니까요.

배남우 :용어와 개념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용어나 개념에 대한 정의는, 명확한 단답형의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용어나 개념과 관련된 구조 혹은 범주를 드러내 보임으로써 표현 가능하다는 말씀을 하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이영준 :언어 철학적으로 봤을 때, 언어 그 자체는 뜻을 포함하고 있지 않습니다. 소쉬르 식으로 말하면 언어는 차이의 작용으로 인해 느끼는 것, 그래서 어떻게 보면 상대적으로 보이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고, 데리다 식으로 말하면 의미는 현존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미끄러져 내리는 것, 다시 말해 환유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즉, 어떤 단어는 사물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기호학 기호들로 이루어진 차이의 그물망 속에서 사물들의 세계와 맞닿아 있다는 것이죠. 용어와 개념에 대한 정의도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사람들에게 ‘왼손’에 대한 정의를 내려 보라고 하면,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아랍사람들의 경우에는 ‘밥을 먹지 않는 손’이라고 하면 왼쪽이 정의될 수 있겠지만, 한국 사람들에게는 ‘오른손이 아닌 손’처럼 상대적으로밖에 정의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용어나 개념에 대한 기본적인 정의도 이처럼 상대적이라고 보는데, 유일하게 그것을 정의할 수 있는 방법은 매핑(mapping)을 통해 용어와 개념에 대한 정의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오늘날의 사진의 개념과, 사진이 발명되었던 당시의 사진에 대한 개념과, 앞으로 먼 미래에 사용될 사진에 대한 개념은 모두 다를 것입니다. 왜냐하면 각각의 시대에 대한 매핑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사진이 발명되었던 시대에는 사진이 귀중품이었다면, 오늘날의 사진은 소비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미래에는 사진이 물건의 형태를 띠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물건을 의미하는 ‘품(品)’이 생략될 수도 있겠지요. 미래의 일이라고 할 것도 없이 인터넷과 디지털 카메라의 보편화로 인해,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사진의 형태는 이미 물질의 형태에서 벗어나고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도 물건이 쌓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사진을 보내달라고 얘기할 때에는 이메일로로 부탁하는 편입니다.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된 사진을 굳이 프린트해서 물질화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미래의 사진은 순수한 형태의 이미지가 될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그러한 이미지를 다루는 방식이나, 거기에 부여하는 가치도 달라질 것입니다. 시대마다 다른 매핑의 차이로 인해, 사진에 대한 정의도 동시대의 문화 속에서 사진이 어떠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지요. 어쩌면 아주 먼 미래에는 사진이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서 서예가 사라졌듯이 말이죠. 물론 여전히 ‘서예’라는 범주도 있고 서예학원과 서예미술가도 존재하지만, 사람들은 더 이상 서예를 통해 커뮤니케이션을 하지는 않습니다. ‘추사체’ 같은 서체가 더 이상 나올 수 없는 것도, 현재의 작가들은 과거처럼 서예를 통해 사실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 카메라나 캠코더로 사실을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매핑의 기준이 시대마다 변화하는 것처럼, 비평적인 개념이나 용어에 대한 정의와 그것을 정의할 수 있는 범주도, 고정되지 않고 그때그때마다 다르게 규정될 것으로 봅니다.

배남우 : 앞서 “미래의 사진은 순수한 형태의 이미지가 될 수도 있다.”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실질적으로는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아날로그의 물성을 더욱 강화시켜주는 경향도 있는 것 같습니다. 사진의 경우에는 기존의 아날로그 프린트가 가지고 있는 한계성을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어, 궁극적으로는 가치 있는 물성을 지닌 예술 작품으로 인정받기를 원하는 경향도 있다는 것이죠.

이영준 :물론 물질로서의 사진이 사라질지의 여부에 대해서는, 아직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없겠지만 비중은 많이 달라질 것이라 봅니다. 예를 들어 요즘 작가들 중에서 비디오 작업을 하는 작가들이 빔 프로젝터를 선호하는 이유는, 텔레비전이라는 물성에 의해 비주얼(visual)이 방해를 받기 때문입니다. 물론 요즘의 텔레비전이 형태가 많이 미니멀(minimal)해 지기는 했지만, 빔 프로젝터를 사용할 경우에는 허공에 순수하게 이미지만 존재하기 때문에 최대한 물성을 배제할 수 있으므로 작가들이 선호한다는 것이지요. 뒷배경을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고요. 저는 사진도 언젠가는 그러한 형태를 띠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이미지이지 액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때가 되면 액자가게 에서는 다른 물건을 만들지도 모르죠.

비평의 채널이 축소된 것은 비평가들이 스스로 초래한 문제

배남우 :선생님께서는 꾸준히 저작도 발표하시고, 이미지 혹은 사진에 대한 글도 계속해서 쓰셨던 것 같은데, 실질적으로 매체를 통해 선생님의 글을 접한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영준 :사진이나 미술과 관련된 인쇄 매체에서는 제 글을 실을 매체가 없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저는 테크놀로지와 기계를 다루기 때문이죠. 그러므로 아예 몇몇 사람들이 모여서 무크지 형태의 책을 만들지 않는 이상, 제 글을 실을 곳은 별로 없습니다. 예전에는 ‘과학사상’이라는 곳에 인공위성 사진에 대한 글을 썼던 적도 있었는데, 현재에 있어서는 기존의 매체를 통해서 제 글을 읽기는 힘들다고 봅니다. 만약 사진이나 미술잡지에서 제 글을 실어준다면 글을 쓸 용의는 있지만, 그러한 매체에 뜬금없이 ‘탱크의 구조’에 대한 글을 쓴다거나 ‘인공위성의 종류’에 대한 글을 쓴다면 생뚱맞겠죠.(웃음) 하지만 제 글을 실을 매체가 없다고 해서 느끼는 불편한 점은 없습니다. 제가 정말 쓰고 싶었던 글, 표현하고 싶었던 글들은 따로 모아서 책으로 발표하면 되니까요. 전시와 관련해서 쓰는 글 같은 경우에는, 전시를 위해 글을 쓴 다기 보다는 책을 위해 쓴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배남우 :개인적으로 인터뷰를 진행해 오면서 최근 2년 동안(2004년, 2005년) 미술잡지와 사진잡지에 실렸던 사진 비평가들의 글을 찾아봤던 적이 있습니다. 2년 동안 비평가들에 의해 쓰여 진 대부분의 글들이 리뷰적인 글들이었고, 비평문으로서의 형식을 갖춘 글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매체를 통해 비평적인 쟁점을 드러낸다는 것이 정확하게 어떤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올해만 해도(2005년) 브레송과 살가도 및 랄프 깁슨의 전시가 큰 규모로 치러줬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작업에서 비평적인 관점을 끌어내기 보다는 주로 biography나 해석적인 면에 치중된 것을 보면서, 비평이 공개되고 소통될 수 있는 채널이 축소된 것을 넘어 사장된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습니다만, 선생님께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이영준 :저는 ‘채널이 축소되었다’라기 보다는, 저를 포함한 비평가들 스스로가 게으르기 때문에 비롯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비평가들이 스스로 초래한 문제라는 것이죠. 예전에 어떤 전시를 기획하셨던 분께서 제게, “이 전시는 선생님의 영향을 받아 기획하게 되었습니다.”라는 얘기를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순간 알 수 없는 영감에 휩싸여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200자 원고지로 45매 분량의 원고를 작성해, 다음날 바로 아트 인 컬쳐(Art in Culture)에 전화를 해서 제가 작성한 원고를 실어줄 수 있는지 물었고, 잡지사 측으로부터 원고를 실어줄 있다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이처럼 잡지사 측의 입장에서는 생생한 원고만 있다면, 항상 원고를 실어줄 준비가 되어있다고 봅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만약 사람들이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을 좋아한다면, 비평가의 입장에서 “대중들은 왜 브레송을 좋아하는가?”라는 글을 쓸 수 있을 것입니다. 살가도의 전시 같은 경우 제 개인적으로는 살가도의 사진에 문제가 많다고 보는데, 만약 살가도 사진의 어떤 점이 문제가 되는지 개념적으로 정리한 비평문을 쓴다면 잡지사 측에서도 얼마든지 원고를 실어줄 것이라 봅니다. 왜냐하면 매체가 원하는 것은 센세이션(sensation)이기 때문입니다. 센세이션은 곧 판매 부수의 증가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에, 잡지사 측에서는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을 것입니다. 특히나 요즘처럼 사진이 현대 예술의 중심 매체로써 다루어지는 시대에는 말이죠. 하지만 정작 비평가들은 그런 식의 원고를 쓰지 않습니다. 고리타분한 글을 쓰거나, 기존에 다 알려져 있는 작가들을 띄워주는 글이나 쓰니까 비평을 할 것이 없는데, 저 자신을 포함해서 비평가들이 게으르기 때문에 비롯된 문제인 것 같습니다. 여기서 비평가들이 게으르다는 것은 그들의 태도가 게으르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상상력이 게으르다는 것을 말합니다. 상상력이라는 것은 열심히 하고 안하고와는 상관없는 문제입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상상력이 없이는 글을 쓸 수 없지만, 그러한 상상력이 노력을 통해 얻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배남우 :잡지 같은 경우는 편집자의 의도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글을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소극적인 역할에 머물러야 하는 경향도 있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잡지보다는 어느 정도 발언권의 자유가 허용되는 학술지를 통해 밀도 있는 글을 써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데, 한편으로는 사진학회에서 출간되는 학술지에 대한 회의적인 의견도 있습니다. 선생님을 비롯한 몇몇 분들께서는 이론가와 비평가로 활동하시지만, 사진학회에서 활동을 하시지는 않는데 어떤 이유때문에서인지 궁금합니다.

이영준 :제가 국내의 사진학회에서 출간하는 학술지에 관심이 없는 이유는, 학술지에 실리는 논문들을 제대로 된 논문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는 학술지에 실린 논문들의 전거만 봐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언젠가 모 학회지에서 디지털 카메라 특성에 관한 논문을 읽은 적이 있는데, 논문이라고 하기보다는 리뷰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하나 차근히 살펴보죠. 먼저 논문에는 주장이 있어야 하고, 주장에는 전거(典據), 즉 레퍼런스가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국내의 사진학회에 실린 논문들을 보면 전거가 무척 빈곤합니다. 그나마 몇 개 되지 않는 전거의 경우에도 1차적인 것이 아닌 2차적인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가령 어떤 사람이 심리분석에 대한 논문을 쓴다고 가정해보죠. 이 때 어떠한 전거가 가장 먼저 나와야 할까요? 당연히 심리분석에 대한 1차적인 고전들이 우선적으로 나와야 할 것입니다. 프로이트, 융, 라캉에 대한 1차 서적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1차 서적은 생략되어 있고 누군가가 프로이트나 융, 그리고 라캉에 대해 쓴 2차 서적만을 전거로 한다는 것은 넌 센스라고 봅니다. 2차 서적의 경우에도(현재의 국내학계는 외국에서 나온 전거를 많이 가져다 쓰는 것이 현실이므로) 전 세계에서 어느 나라의 어떤 이가 심리분석에 대한 전문가인지를 파악하고, 그들이 쓴 논문이나 저작을 읽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글로벌한 시대에 레퍼런스를 국내에서만 찾는 것은, 선택의 폭도 좁을 뿐만 아니라 비효율적인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국내 사진학회에 실리는 논문들에서는 그러한 노력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전거가 빈약하기 그지없기 때문입니다. 전거가 없다는 이야기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재료가 없다는 뜻입니다.(어쩌면 애초에 주장이 없기 때문에, 전거도 없을 수 있겠죠.) 그러므로 전거를 엮어내는 방식도 없습니다. 그나마 빈곤한 전거를 엮어내는 방식도 허술하기 그지없고요. 따라서 이와 같은 글은 논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인터넷의 사진 동호회에 올라오는 디지털 카메라의 리뷰 정도밖에 안 되는 수준이니까요. 그리고 인터뷰를 정리할 때 이 얘기는 꼭 실어주셨으면 합니다. 저는 사진계에서 제발 영어를 쓰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영어를 못하는 사람은 꼭 스펠링이 틀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실수가 아닌 필연입니다. 그리고 실수도 사람의 실력과 레벨을 반영합니다. 실수에도 레벨이 있지만 국내사진계에서 영어를 틀리는 실수는, 실수가 아니라 그 사람의 부족한 영어 실력의 반영이라고 봅니다.

배남우 :학술지에 실리는 논문들뿐만 아니라, 대학원의 석사학위논문에도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국회도서관에서 사진학과의 최근 석사학위논문을 검색해서 읽어보면, 분량도 분량이지만 시중의 사진관련 서적 몇 권을 토씨하나 바꾸지 않고 짜깁기해 놓은 논문들이 많은 걸 알 수 있으니까요.

이영준 :학생들을 지도하는 교수는 다음 두 개의 조건 중에서 하나만 충족시킬 수 있으면 됩니다. 하나는 실력이 없어도 학생들을 따듯하게 보살펴 줄 수 있는 사람이거나, 다른 하나는 인간성이 좋지는 않아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내용만큼은 똑 부러지는 사람이면 된다는 것이죠. 하지만 그 어느 것에도 해당되지 않는 사진학과 교수들이 많습니다. 아마도 국내의 사진학과 교수들에게 학생들의 논문을 제대로 지도할 능력이 없다는 것은, 본인들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고치고 싶어도 쉽게 고칠 수 있는 문제가 아닐 것입니다. 마치 우리가 암에 걸렸다고 했을 때, 암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몇 년 동안 암과 함께 투쟁해야 하는 것과 똑같기 때문이지요. 어쩌면 굳이 고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지도 모르죠. 그들이 생각할 때에는 늘 해왔던 정도의 수준만 유지해도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또 실제로 아무런 문제도 발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미술사학과의 논문지도도 함께 겸하고 있는데, 사진학과의 논문들 같은 경우에는 양적인 면에서나 질적인 면에서나, 미술사학과의 논문에 비해 현격하게 떨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같은 석사학위 논문이라고 말할 정도의 수준도 안 되니까요.

비평가 자신이 무엇인가를 절실하게 말하고 싶다면, 싸워서라도 재량권을 획득해야

배남우 :지금까지 인터뷰를 진행해 오면서, 우리가 사진이라는 매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현대 예술의 한 축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인 역사가 기껏해야 10여년 남짓밖에 되지 않으므로, 비평을 위기라고 표현하기 보다는 언제 우리에게 제대로 된 비평의 역사가 있었는지부터 짚고 넘어갈 필요성이 있다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이영준 :이론과 비평의 사정이 좋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원고료의 경우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200자 원고지 1매당 만원이상 줘야하지만, 오천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니까요. 그것도 원고료를 주면 다행이지만, 많은 경우 원고료를 제때 주지 않거나 아니면 아예 주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현실이 그렇다하더라도 비평가들은 어쨌든 스스로를 비평가로써 규정한 사람들입니다. 비평 외에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은 아니라는 것이죠. 따라서 꾸준히 책을 쓴다던지, 아니면 기금을 얻어 개인이 비평적인 쟁점을 가진 심포지엄을 열수도 있다고 봅니다. 안 해서 그렇지 실제로 비평가가 할 수 있는 일들은 무척 많습니다. 만약 책을 쓴다고 했을 때, 자신이 쓴 책을 대중이 좋아할 것 같지 않다는 이유로 출판사에서 받아주지 않는다면, 출판사에서 책을 내줄만한 이슈를 비평가가 직접 찾을 필요성도 있습니다. 가령 “남자들은 왜 여성의 옷을 벗겨서 바위 위에 올려놓고 사진을 찍는가?”와 같은 주제를 가지고, 면밀히 그 이면을 분석해서 비평적인 쟁점을 끌어낼 수 있는 책을 쓸 수도 있다는 것이죠. 또한 최근에는 문예진흥원, 경기문화재단, 서울문화재단, 파라다이스재단, 그리고 그 외에도 다양한 재단이 있습니다. 따라서 기획안을 착실하고 확실하게 준비해서 여러 재단을 통해 기금을 받으면, 비평가가 다양한 일들을 기획할 수 있습니다. 저는 비평가 개개인들도 각자 자기만의 컨텐츠를 가지고 있다고 보는데, 기금을 받으면 각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컨텐츠를 개발하고 또 현실화 시킬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개발할 이슈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대게 사진평론을 하는 사람들은 소극적인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확실한 것은, 가만히 앉아서 “나는 왜 안 될까?”와 같은 고민만 해서는, 아무 것도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비평을 잔뜩 생산해놓았는데 대중들에게 읽히지도 않고, 반응도 없고, 이해도 안 된다면 비평이 위기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니면 반응이 있기는 한데, 모두 부정적인 반응들뿐이라면 우리가 위기라고 할 수 있겠죠. 하지만 비평가들 자신이 비평적인 활동도 하지 않으면서, 비평을 위기라고 하는 것은 넌 센스 아닐까요? 따라서 저는 비평이 위기에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사진비평은 아직 시작 되지도 않은 상태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국내의 사진 비평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은, 비평의 쟁점이 전시 뒤풀이 자리나 술자리에서만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물론 저 스스로도 반성을 많이 해야 할 부분입니다만) 그와 같은 쟁점을 비평가들이 다루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뒤 자리에서는 “아무개 선생님의 이번 전시는 꽝이다.”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겉으로는 아무도 그에 대한 비평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앞서서 비평가들이 스스로 개발할 수 있고, 또 실천할 수 있는 비평적인 컨텐츠와 이슈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렸는데, 비평의 쟁점도 똑같습니다. 비평가들의 입장에서 얼마든지 쟁점을 다양화 할 수 있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 제가 다루고 싶은 비평적인 쟁점은, 한국사진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중견 원로 작가들에 대한 재평가 작업입니다. 예전에 어떤 전시의 서문에서 50년대 혹은 60년대 즈음에 아무개선생님께서 하셨던 이야기라며 인용한 글을 읽었던 적이 있었는데, “예술사진에 있어서는 보도성이 중요하다.”라는 글이었습니다. 순간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떳떳하게 말할 수 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물론 그 얘기를 했었던 시대적인 상황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1950년대와 60년대에는 국내에 제대로 된 미술사나 사진사 그리고 사진미학을 공부하고난 후, 말하는 사람이 없었을 테니 말입니다. 어쩌면 당시에 미국의 위지(Weegee)같은 작가가 살인사건의 현장을 촬영한 사진을 MOMA(Museum of Modern Art)에서 전시를 하니까, 그걸 보고 예술사진에서는 보도성이 중요하다는 걸 느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잘못된 오해는 현재의 비평가들에 의해서 바로 잡을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예를 생각해보면, 현재 한국 사진에서 유행하는 트렌드에 대해서 비평적인 쟁점을 찾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 가령 최근에 공간을 다루는 작가들이 많아졌는데, 왜 작가들이 공간에 관심을 갖고 공간을 관찰하는지에 대해 비평가들이 진단을 내려 볼 수도 있겠죠. 그럴 경우 공간에 대한 작가들의 작업과 그에 대한 비평가의 해석으로 인해, 이 시대의 공간에 대한 성찰도 이루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배남우 :비평이 처해있는 상황이 여러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약자의 입장이기 때문에,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결정적으로 경제적인 실리의 주도권도, 자유로운 발언권의 주도권도 제3자가 가지고 있다는 것이죠.

이영준 :인터뷰 내내 국내의 사진비평가들의 소극적인 태도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이 문제는 비평가들의 게으름, 상상적인 게으름이 일차적인 원인이라고 봅니다. 만약 비평가 자신이 무엇인가를 절실하게 말하고 싶다면, 싸워서라도 재량권을 획득해야 할 것입니다. 만약 제 아이가 무슨 일을 잘못해서 경찰서에 갔다고 해보죠. 그럼 제가 부모의 입장에서 가만히 있을까요?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어떻게 해서든 나서서 아이를 집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부모에게는 아이를 집으로 돌려보낼 재량권이 없지만, 아이는 찾아야 하니까요. 따라서 비평가들이 재량권을 탓할 것이 아니라, 그 이슈가 정말 중요하고 말을 해야 하는 것이라면,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비평가 스스로 찾아나서야 한다고 봅니다. 스스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내가 어떤 여자를 좋아한다면, 처음에는 그 여자와 데이트를 하는 걸 상상한다거나 여자의 손을 잡아보는 상상을 하겠지만, 너무 좋아해서 상사병에 걸릴 정도가 되면 어떻게 해서든지 여자와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비평도 똑같다고 봅니다.

배남우 :비평의 척박한 현실에 대해 비평가들은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정작 전시 기획에 있어서는 오히려 비평의 부재가 문제 제기를 위한 소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포스코 미술관에서 열렸었던 <비평의 쟁점>(2005)과, 토탈 미술관에서 열렸었던 <17x17>(2005)전시가 그 예라고 할 수 있는데, 이처럼 이론과 비평의 위기가 전시의 소재로써 사용되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이영준 :저는 비평이 전시의 소재가 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물론 비평이라는 전시 소재가 좋은지 나쁜지, 유용한지 유용하지 않은지에 대한 논란은 있을 수 있겠지요. 일반적으로 우리가 ‘메타 담론’이라는 이야기들을 많이 하는데, 비평가가 다른 비평에 대해 글을 쓸 수도 있고, 비평을 전시의 소재로 활용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때 중요한 점은 소재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해봐야 한다는 점입니다. 가령 소재를 떠받드는 전시는 소재를 활용하는 최악의 방법일 것입니다. 특히 국내의 경우에는 여러 면에서 무엇인가를 떠받드는 경향이 많은데(카메라를 떠받들거나 작가를 떠받드는), 이러한 전시는 전시의 소재를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지 못한 채 한가지의 경향만을 보기 때문에, 바람직한 형태의 전시가 아니라는 것이죠. 따라서 비평을 딱딱한 텍스트로써 어려워만 하기 보다는, 비평을 재활용하거나, 재배치하고, 재-접합하는 방법을 사용한다면 전시 소재로써 사용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소재로 활용되지 않는 것이 더 문제일수도 있습니다. 비평을 적극적으로 소재로 활용하여 기획된 전시를 보고 사람들이 비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거나, 어떤 작가가 비평에 대한 고민을 작업으로 풀어낸다면, 비평가의 입장에서 그 보다 더 좋은 일은 없겠죠.

배남우 :하지만 <17x17>전시의 경우에는, “사진 이론과 평론의 부활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전제”로 출발했던 전시였지만, 정작 17명의 비평가들 중에서 사진 비평가는 3명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미술과 사진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진지 오래임을 얘기하지만, 오히려 미술 쪽에서 그 벽을 견고히 하는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이영준 :저는 사진비평을 누가 하든지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외국에서 나온 사진과 관계 된 책들을 보면, 어떤 경우는 저자가 영문학과 교수, 어떤 경우는 정치학과 교수, 사회학과 교수 등 다양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제가 가지고 있는 책들 중에서도 사진학과 교수가 쓴 책은 거의 없거나, 있다 해도 그다지 특별한 중요성은 없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는 미술과 사진 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진과 인문, 사회과학 전체와의 관계가 문제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 같습니다. 요즘의 사진을 해석하려면 복잡한 주제들이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일 것입니다. 만약 인물사진을 해석하려면 관상학과 골상학에 대한 지식이 필요할 것이고, 풍경사진을 해석하려면 생태학에 대한 지식이 필요한 건 당연하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앞으로는 작가나 평론가도, 어떤 특정한 사물이나 사태에 대한 전문가이면서 작가를 하던지 평론가를 하던지 해야 한다고 봅니다. 사진과 미술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이죠.

結

배남우 :비평의 상황이 갈수록 어려워지거나 개선되지 않는 데에는, 외부적인 요인과 내부적인 요인이 있다고 봅니다. 일반적으로 내부적인 요인에 대해서는 발언하기를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는데, 선생님과의 인터뷰는 과감 없이 그 속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끝으로 앞으로 계획하고 계신 일들이 있으시다면, 짤막하게 소개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영준 :개인적으로 공장이나, 선박과 같은 기계에 대한 체험을 정리해서 책으로 출판할 예정입니다.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가제를 <지식의 엔진-기계의 숨결>로 정하기는 했는데, 엔진을 하나의 메타포로 삼아서 테크놀로지 비평집을 쓸 생각입니다.(여기서 엔진은 실제의 물질적인 엔진을 뜻합니다) 그리고 언제쯤 실현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기회가 닿는다면 'projectile'이라는 주제로 전시를 기획해 보고 싶습니다. 쏘거나 던지면 날아가는 것들, 예를 들어 돌에서부터 시작해서 화살, 총알, 대포알, 미사일등처럼 지향성을 갖는 것들을 모두 모아, 실제 사물을 있는 그대로 미술관에서 전시한다는 것이죠. 국내에서는 군대에서 사용하는 모든 탄환과 대포알을 풍산금속에서 생산하는데, 전시를 준비하기위해 공장에 문의를 했더니, 국방부 장관의 허락이 없으면 불가능하다기에 좌절하고 말았는데 언젠가는 전시로 실현시킬 날이 오리라 믿습니다.(웃음)

배남우 :긴 시간동안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인터뷰 기획 및 진행 : 배남우

본 인터뷰의 저작권은 배남우씨와 fotato.com에 있습니다. 따라서 인터뷰의 무단 배포와 전제를 금하며, 관련 사항은 배남우씨와 fotato.com으로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배남우씨는 현재 상명대학교 예술, 디자인 대학원 순수사진학과 휴학 중이며, 제 7회 사진비평상 평론부문 우수상을 수상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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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준 Lee, Young June

이영준/사물데이타베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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