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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을 훔치다 - 김수남이 만난 한국의 예인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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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으로 찍는 사진가’ 김수남의 산문집 《아름다움을 훔치다》가 출간되었다.
‘신들의 고향’이라 불리는 제주도에서 태어나 우리 땅에서 행해지는 민속과 전통문화에 대한 사진을 찍는 데 젊은 시절을 아낌없이 쏟아부은 김수남. 그는 이미 <한국의 굿> 시리즈의 책 20권을 비롯 40여 권의 저서를 출간했으며, 이제는 아시아 전체로 눈을 돌려 문명화라는 명분하에 사라져가는 그들의 고유한 민속문화를 연구하고 그것을 생생한 사진으로 증언함으로써 국제적인 사진가로 인정받고 있다. 《아름다움을 훔치다》는 그가 샤머니즘과 순수한 전통문화 연구에만 30년 넘게 천착해오면서 마음을 나눴던 한국의 예인 열한 명을 사진과 글로써 추억한 책이다.
전통과 민속의 순수 본령을 찾아서
김수남의 사진기에 마음을 열어준 예인들은 더 이상 이 땅에 존재하지 않거나 인생의 황혼기를 넘긴 지 이미 오래되었다. 운명적으로 혹은 본인의 열망에 의해서 무당, 소리꾼, 춤꾼, 광대로서의 삶을 택한 그들을 이제는 예인이라는 명칭으로 대접해주지만, 구한말과 일제시대, 한국전쟁 같은 격변의 시기를 지내오면서 그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은 범인의 삶에 비할 수가 없다. 가난이야 두려울 게 없었지만, 근대화 과정 속에서 알게 모르게 자행되어온 사회적인 천대와 무관심이야말로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그러나 군사 정권의 독재와 새마을운동, 미신타파의 분위기 속에서도 그들은 자신의 예술적인 끼와 재능을 억누를 수 없어 전통예술의 실낱 같은 명맥을 이어가고 있었다.
세상이 그들의 가치를 몰라주고 외면하던 시절, 촌각을 다투는 신문사의 기자일을 하면서도 김수남은 사라져가는 민속문화의 원형을 담아내겠다는 신념 하나로 시간을 쪼개고 다리품을 팔며 그들을 찾아 전국의 골골샅샅을 헤매고 다녔다. 모날 모시 모처에서 굿을 한다거나, 놀이를 논다는 소문 하나를 단서로 굿판과 놀이판을 찾아나섰다. 택시가 한 대밖에 없는 섬에서는 경운기를 타고 진흙길을 달렸으며, 촌부들과 탁주 한잔 걸쭉하게 나눠 마시기 전에는 카메라를 들이대는 법이 없었다. 민초들의 삶과 정서 속으로 그가 먼저 빠져들었고, 그 자신이 정에 겨워 눈물을 흘리곤 했다. 어린아이 같은 그의 순수한 눈물에 큰무당은 경계심을 풀며 술잔을 먼저 권했고, 예인들은 춤과 노래로 오히려 그를 달래주었다.
김수남의 눈물에 영혼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다
사람들과의 끈끈한 관계맺음을 바탕으로 한 그의 사진 속엔 찍는 자와 찍히는 자의 거리감이 한 뼘의 길이도 안 돼 보일 정도로 냉정한 관찰자의 시선이 머무를 틈이 없다. 한바탕 굿거리를 치르고서야 무당이 신과 영혼을 교통하는 것처럼 김수남을 만난 사람들은 그와 순식간에 정분을 쌓고 자신도 모르게 감추어둔 아름다움의 한 장면을 스스럼없이 드러내게 된다. 오랫동안 그와 굿판을 함께 돌아다녔던 김인회 교수는 이것을 바로 ‘김수남의 마력’이라고 표현한다.
“김수남은 사람들 속에 숨어 있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는 눈을 지닌 큰무당이다. 단지 방울과 부채 대신에 사진기를 들고, 공수를 내리는 대신에 셔터를 눌러 자기가 본 것을 형상화하는 것이 보통 무당과 다를 뿐이다.”
김수남의 마력은 그러나 인간적인 흡인력에만 기댄 것이 아니다. 두루뭉술한 그의 외모와 언변 속에는 예술적인 감성과 재능, 무속과 민속예술 분야에 대한 전문가 이상의 식견과 이해, 기자 출신다운 판단력과 기회포착 능력 같은 프로의 장점들로 탄탄하게 무장되어 있다. 너털웃음과 여린 눈물로 대상과의 거리를 좁히고는 아름다움의 순간을 동물적인 감각으로 포착하는 데 천부적인 능력을 타고난 김수남. 그가 이 책에 모아놓은 사진과 글은 한 시대의 끝을 살아온 예인들의 예술성이 무르익었을 때의 기록이며, 또한 전통적인 예능의 끝자락에 대한 시대적 증언이기에 그 가치가 더욱 빛난다. 이제 거의 원형을 찾아볼 수 없는 이 문화기록은 가까운 미래에 ‘김수남의 사진’으로밖에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를 일이다.
세상의 무관심 속에서 차가운 세월을 견뎌온 예인들이 김수남에게만 허락한 만남의 순간들은 각별한 애정과 신뢰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 가운데 그들 스스로도 깨닫지 못한 영혼의 아름다움을 꺼내어 형상화한 김수남의 사진들을 통해 이제는 우리가 그들의 영혼을 엿보는 행운을 갖게 된 셈이다. 민족의 고유한 예술을 올바로 계승하고 유연하게 세계화하는 자세가 문화강국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라 할 때, 한 사진가의 열정과 노력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움을 훔치다》는 전통문화와 예술가의 저력이 무엇인지를 밝혀내고, 새로운 시대정신의 전범을 제시하는 뜻 깊은 결실이라 할 수 있다.
김수남이 만난 한국의 예인들, 그들의 마지막 불꽃
그 몸을 통과하는 제주의 신들 - 안사인은 심방이 천시되고 굿이 미신타파의 대상이 되던 환경에서 스스로 심방임을 자부하며, 굿을 지키고 알린 제주의 대표적 신방이었다.
인간의 통증을 벗겨버리는 통증 - 한국의 전통적인 소리에 춤과 재담, 몸짓을 가미한 창무극의 창시자 공옥진의 춤은 민중예술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집시의 피 - 춘하추동 백구두를 신고 철따라 모자를 썼던 멋쟁이 이동안은 남사당패와 재인청에 내려오는 수많은 전통무용과 기예를 두루 익힌 한말의 마지막 광대였다.
가슴속의 화로 - 서해안 배연신굿 및 대동굿으로 중요무형문화재의 예능보유자인 김금화는 국제적으로도 명성이 높으며 국내외의 나라굿을 주도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큰 만신이다.
조용한 통곡 - 문과 예를 겸비하고 시인이 되고 싶어했던 김소희는 서편제와 동편제를 넘나들며 새로운 판소리의 경지를 일군 최고의 여창이었다.
토굴 속의 빛 - 토굴 속에서도 춤에의 열망을 키웠던 김숙자는 ‘신기 서린 도살풀이의 명무’로 칭송받으면서도 언제나 청빈한 삶으로 순수한 예술가의 정신을 곧추세웠다.
극락을 향하는 소리 - 구한말의 개화파 박영효의 손자였던 박송암 스님은 깊은 계곡에서 들려오는 범종소리 같은, 청아하면서도 심오한 범패소리를 하던 최고의 범패승이었다.
허공을 사르는 곡선 - 조지훈의 시 <승무>의 모티브가 되었던 춤꾼이라 회자되는 한영숙은 승무와 살풀이, 학춤 등 우리나라 전통무용의 맥을 잇는 데 혼신의 힘을 다한 춤꾼이었다.
진주처럼 모아놓은 눈물 - 망부가〈눈물이 진주라면〉으로 더 유명한 가야금 산조의 명인 성금연은 왕성한 실험정신과 창작욕을 불태우며 독창적인 음악세계를 창조한 민속악의 대가였다.
사내 몸에 든 멋 - 밀양 양반춤의 대가였던 하보경은 집안일을 부인에게 맡긴 채 씨름판, 윷판, 소싸움판, 장기판, 투전판 등의 놀이판을 찾아 유랑생활을 하며 아름다운 백발을 휘날렸다.
| 작가소개 |
김 수 남
1949년 제주도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지질학과를 졸업하고 동아일보사 기자, 일본 류큐대학 객원연구원을 지냈으며 현재는 자유사진가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의 굿을 30년 넘게 찍었고, 일본 재단의 연구비를 받아 오키나와 민속을 기록하면서부터 아시아의 오지로 눈을 돌린 지도 20년 가까이 된다.
일본 히가시가와(東川)사진상 해외 작가상을 받은 그는《한국의 굿》20권과 《한국의 탈》《민속놀이》《전통 제례》《제주 바다와 잠수의 사계》《아시아의 하늘과 땅》등 40권에 가까운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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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남 Kim, Soo Na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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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아의 하늘과 땅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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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남 Kim, Soo Na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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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아의 하늘과 땅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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