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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김수남 선생 별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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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김수남 선생 별세
태국 치앙라이 신년축제 취재 중 뇌출혈로
발인: 2006년 2월 8일 오전9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6일(월) 오전11시 인천공항에 운구 도착 예정 오후 1시부터 문상
한국의 대표적인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김수남 씨가 4일 오후 태국 치앙라이에서 리수족의 신년맞이 축제 취재 중 뇌출혈로 급서했다. 향년 57세.
1949년 제주에서 출생한 김수남 씨는 연세대 지질학과를 졸업하고, 월간 세대, 동아일보사 사진부에서 근무했으며, 1970년대 중반부터 한국의 굿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 사진집 ‘한국의 굿’ 전20권의 기념비적인 업적을 남겼다. 그의 이 작업은 일본에서도 출판되어 호평을 받았으며, 지난 해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100권의 저서 가운데 하나로 선정되었으며, 현재 경기도 양평의 갤러리 ‘와’에서 이를 총정리하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그러나 이 전시회가 곧 유작전이 되고 말았다.
김수남 씨는 1980년대 중반부터 중국과 일본 그리고 동남아시아에서 인도까지, 아시아의 소수민족을 찾아 그 문화원형을 담는 작업을 해 왔다. 이번 취재도 아시아 문화 취재의 일환이었다. 태국의 치앙라이 지역의 리수족이 벌이는 신년축제를 담기 위해 지난 1월 21일에 출국, 한 달 예정으로 작업을 하던 중이었다.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는 현장에서 사진을 찍다가 최후를 맞는 것이 가장 행복할 것이다.” 김수남 씨가 늘 입버릇처럼 해왔던 말이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었으며, 발인은 2월 8일 오전 9시에 같은 장소에서 거행된다. 부인 이희영 여사와의 사이에 상훈(동아일보 기자), 재훈(교통물류연구원 연구원) 두 아들을 두고 있었다. (연락처02-2072-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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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남 (Kim, Soo-Nam)
김수남(金秀男)은 연세대를 졸업하고 동아일보사 출판사진부 기자를 역임했다. 1970년대부터 잊혀져 가는 우리 기층 문화의 기록에 몰두해온 그는, 특히 한국 전역의 굿판을 기록하여 한국 무속사진 분야에서 독보적인 업적을 쌓은 한국의 대표적인 다큐멘터리 사진가이다. 그는 일본 호카이도 히가시카와 마치에서 제정한 일본 최고의 국제 사진 상인 히가시카와(東川)상을 수상하였으며 독일 베를린 시 주최 Shamanism now 페스티벌에 초청받아 개인전을 가진바 있다. 또한 2005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특별 전시될 「한국의 책 100권」에 「한국의 굿」이 선정되어 촐판되었다. 1988년부터는 1년에 6개월씩 아시아를 돌아다니며 아시아인들의 삶과 문화를 찍고 있었다.
1949년1월19일 제주도 생
1973 연세대학교 졸업
1972-1975 월간 세대 기자.
1976-1985 동아일보사 기자.
1986-1987 동아일보사 객원 편집위원.
1988 일본 류큐대학 사회학과 외국인 객원 연구원. 일본 게이오 대학교 지역 연구소 방문 연구원.
1990-97 연세대학교 강사
1999-2000 상명대학교 예술, 디자인 대학원 사진과 강사
2002.8-2005.8월 경상대학교 인문학 연구소 연구교수
1981 신영 연구 기금을 받아 한국의 굿을 촬영.
1988 일본 국제교류기금을 받아 일본의 산과 바다의 마츠리 촬영
2002-2005 2002-현재 경상대 인문학 연구소, 경상대 민속 무용학과와 공동으로 「한국, 중국, 일본, 인도의 굿에 나타난 춤 사위 비교 연구」프로젝트 수행
1995-1997 3년간 연세대학교 박물관과 일본 게이오대학 지역연구소의 공동으로 조사하는 「한ㆍ일 문화 비교 연구」 프로젝트 수행.
1988-현재 아시아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촬영 중.
전시
2005 「한국의 굿-만신들1979-1997」김수남 사진초대전(갤러리 와)
2005 「Schamaninnen in Korea」(독일 베를린 Werksttat der kultern )
2005 「빛과 소리의 아시아」(인사아트센타)
2004 「신들의 얼굴」(한옥마을)
1999 「살아있는 신화 아시아-김수남사진전」(연세대학교 박물관)
1998 「한국 샤머니즘 전 」(독일 함부르크 민족 박물관)
1997 『삶의 경계』전 (광주 비엔날레)
1995 「아시아의 하늘과 땅」(개인전, 그레이스 백화점)
「한국의 무속」( 일본 히가시가와 사진상 해외 작가상 수상 기념전, 히가시가와 문화갤러리)
1983 「한국의 굿 출판 기념 김수남 사진전」(한마당 화랑)
1993 「한국 현대 사진 흐름전」(그룹전, 예술의 전당) 등 그룹전 다수.
수상
1995 일본 히가시가와(東川) 사진상 해외작가상 수상
소장
예술의 전당, 연세대학교 박물관, 일본 히가시가와 문화 갤러리 등
사진집
2005 「굿, 영혼을 부르는 소리」(열화당)
「Gut, Kdrean Shamsnic Ritual」(열화당)
2004 「아름다움을 훔치다」(열림원)
1997 「김수남 아시아 문화탐험- 변하지 않는 것은 보석이 된다」석필
1995 「아시아의 하늘과 땅」(타임 스페이스)
1983-93「한국의 굿」(열화당, 전20권)
1993 「사진집 제주도」(일본 국서 간행회, 전3권)
1989-92「팔도 굿」,「민속놀이」,「조상 상례」,「전통 제례
「 안동」 하회 마을」(공저, 대원사)
1988 「한국 마음의 아름다움-민의 문화」(일본 오리진 쇼보),
「한국의 탈, 탈춤」(행림출판, 전2권),
「제주 바다와 잠수의 4계」(공저, 한길사)
1986 「풍물 굿」,「호미씻이」,「장승제」(평민사),
「홀로 가는 사람」(공저, 행림출판)
1985 「흐르는 섬」(공저, 행림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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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굿 : 만신들 1978-1997
기간: 2005. 12. 3 ~ 2006. 2. 12
장소: 사진갤러리 瓦WA(031-771-5454)
김수남 형을 떠나보내며
김 형, 지금 우리는 김 형에게 작별을 고하기 위해서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지난 구정 며칠 전, 타이 리수 족의 신년축제를 한 달 간 취재하고 오겠다는 전화를 받았는데, 그것이 김 형의 마지막 목소리가 될 줄을 누가 짐작이나 했겠습니까.
김 형께서는 1980년대 초부터 아무도 손을 대지 못했던 굿 사진에 뛰어들어, 당시, 경제논리와 서구 합리주의의 이름으로 핍박 받고 근대화의 어두운 그늘 속으로 잦아들던 한국의 굿을, 우리가 지키고 이어나가야 할 민속신앙과 전통문화로서 밝은 곳으로 다시 이끌어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1985년에 스무 권짜리 책으로 만들어진 「한국의 굿」은 우리의 고유한 문화적 사료적 가치에서뿐만 아니라, 사진적인 완성도에 있어서도 어느 누구도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기념비적인 역작입니다.
김 형의 작업은 사진이라고 하는 영역에만 머무르지 않고 해박하고 심오한 학문적 지식을 바탕으로 종교와 문학, 사회학과 인류문화학 등 폭넓은 학제적인 교류와 소통 속에서 이루어졌고, 또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전체로 활동영역을 넓혀나감으로써 이 분야의 제1인자로서의 국제적인 자리를 굳혔습니다.
일본의 사학 명문인 게이오(慶應)대학과 아시아 민속학 연구 분야의 본산인 오키나와 류우큐(琉球)대학의 초빙을 받아 그곳 석학들과 함께 연구활동을 벌였으며, 그 결과는 국내․외에서 발행된 40여권의 저서와 사진집으로 집성되어 나타났습니다. 김 형은 일본에서 가장 큰 사진상인 히가시가와(東川)국제사진상의 해외작가상을 수상했고, 또 바로 얼마 전 독일에서 개최된 책 박람회에서는 김 형의 사진집 「굿」이 한국의 가장 아름다운 100권의 책 가운데 하나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기도 했습니다. 평생 동안 단 한 권의 저서를 내는 것도 힘든 일임을 생각할 때, 자신이 선택한 삶에 대해서 김 형이 얼마나 왕성하고 집중적으로 힘을 쏟아 부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평가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김 형은 옆 눈질 한 번 안 하고 그렇게 열심히 오직 문화사진가로서의 외길을 달려왔습니다. 김 형이 이루어놓은 일들이 너무 크고, 너무 소중해서 여기 남아있는 우리는 더욱 안타깝고, 분하고, 부끄럽습니다. 우리나라 평균수명이 일흔여섯이라고 합니다. 쉰일곱이면 그렇게 가실 나이가 아닙니다. 아직 20년은 더 일을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숫자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사람의 일생은 얼마나 오래 살았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충실하고 가치 있는 삶을 살았는가에 따라서 평가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남보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김 형은 먼 이국의 촬영현장에서 쓰러지는 그 순간까지 자신의 삶을 완전하게 연소시켰습니다. 행복하게 떠나신 겁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가슴이 아픈 겁니까?
유난히도 술을 좋아하시던 김 형, 김 형에게 있어서 술은 자신과 사람들과의 관계를 이어주는 끈이었고 영적인 세계와 교감하는 매개체였습니다. 김 형은 자신의 일을 사랑한 것과 마찬가지로 술을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김 형을 더없이 사랑했습니다. 이렇게 가실 줄 알았더라면 먼 길 떠나기 전에 밤을 새워가면서라도 왜 함께 마셔두지 않았는가, 회한으로 가슴이 미어집니다. 김 형, 지금 이 순간에도 그 동그란 얼굴에 어린애 같은 천진난만한 웃음을 띠우며 김 형께서 막 들어 설 것 같습니다. 아무 것도 숨기지 않는 유난히 크고 정겨운 김 형 목소리도 듣고 싶습니다. 하지만 김 형은 영원히 가셨습니다. 이제는 오직 우리 가슴 속에만 남아있습니다. 우리들의 가슴 속, 김 형 빈 자리가 너무 큽니다.
상훈이, 재훈이, 상훈이 엄마, 하늘에서 지켜보고, 보호해 주십시오. 그리고 김 형이 실천하신 사진 정신이 무성한 숲으로 자라도록 우리 사진계도 보살펴 주십시오.
이제 합장을 하고 보내 드립니다. 김 형, 부디 편안하게 떠나십시오.
2006년 2월 8일
김승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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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안미영 |
2006.02.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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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 사진속에 선생님의 숨결이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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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강태호 |
2006.02.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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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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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남 선생님 별세소식 |
이유진 |
2006.02.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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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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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남 Kim, Soo Na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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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아의 하늘과 땅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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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남 Kim, Soo Na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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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아의 하늘과 땅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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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남 Kim, Soo Na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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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무당 Die Schamaninnen in Kore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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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남 Kim, Soo Na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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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굿 : 만신들 1978-19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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