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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창 - 삶과 죽음에 대한 사유
구본창 - 삶과 죽음에 대한 사유
김승곤
서울 올림픽을 몇 해 앞둔 1980년대 중반의 한국은 경제적 성취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자유와 변화에 대한 기대와 새로운 문화에 대한 호기심으로 부풀어 있었다. 국제적인 문화와 예술의 일각에서는 매체의 순수성이 부정되고 장르간의 경계가 와해되어 가고 있었지만, 한국의 사진은 여전히 아마추어리즘과 소박한 리얼리즘의 긴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독일에서 귀국한 구본창(具本昌)이 유럽에 체재하는 동안 찍은 컬러 사진, 그리고 석 장의 폴라로이드 사진으로 구성된 ‘열두 번의 한숨’ 연작으로 첫 개인전을 연 것도 그런 시기였다. 작가의 내면적인 의식 세계를 섬세한 터치로 표현한 그의 작품은 현실의 기록을 중시하는 전통적인 사진에 익숙해 있던 한국 사진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섬유회사를 경영하는 집안에서 태어나 꼼꼼하고 내성적인 기질로 성장한 그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미술과 디자인 쪽에 끌렸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의지를 밀고 나갈 수 있는 강한 성격의 소유자가 아니었다.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해야 했던 그는, 졸업 후 입사한 직장을 통해 유럽에서 근무할 기회를 얻으면서 자신의 나머지 인생을 사진가로서 살아가게 될 전기를 맞게 된다. 대기업의 조직생활이 생리적으로 맞지 않았던 그는 망설이지 않고 직장을 뛰쳐나와 근무지였던 독일에서 본격적인 사진수업에 들어가게 된다. 그렇게 시작한 오 년여의 유럽 생활은 그에게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이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가를 확인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주었다. 그가 독일에서의 유학생활을 통해서 ‘뉴 저먼포토그래피’로 불리던 당시의 신 주관주의 사진 경향의 세례를 받았을 것이라는 점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그의 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던 꿈과 환상, 고독과 공허감, 초현실적인 일상의 경험에서 얻은 감정과 에너지가 다발이 되어 하나씩 구체적인 모습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1980년대 초부터 5년 간에 걸쳐 파리, 런던, 베를린, 함부르크, 뮌헨, 로마, 밀라노, 베네치아, 피사, 산 지미냐노 등 유럽의 도시를 돌아다니며 찍은 초기의 작품들은 대부분 대상의 선과 면, 형태 등의 조형적 요소로 구성된 간결하면서도 역동적인 프레임 형식을 보여주고 있는데, 생략을 통해서 보는 사람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그의 독특한 스타일이 이 무렵의 작품에 나타나고 있다. 사람이 없는 한적한 새벽 시간, 간밤에 내린 비 때문인지 아직 물기에 젖어 있는 나무바닥, 운명적인 무엇인가를 연상시키는 회전그네를 매단 줄, 박물관의 코너에 진열된 주검처럼 뒤틀리고 손발이 잘려 나간 인체의 조각상 등, 습기를 머금은 유럽의 대기감과 멜랑콜릭한 이방인의 감정이 무거운 기조를 이루고 있는 작품을 통해서 그는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심상(心想)을 마치 손톱으로 긁어낸 흔적처럼 아프게 그려내고 있다. 인종과 국적에 관대한 유럽은 그를 편안하게 만들고, 그곳의 공기에 쉽게 동화되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먼 이국에서 맞은 어머니의 죽음이 여린 심성의 그에게 필연적으로 고독감과 이질감이라는 복합적인 감정을 동시에 심어 주었으리라는 것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뜨거운 태양이 쏟아지는 베를린의 한낮, 밀폐된 공중전화 박스 유리 너머로 보이는,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목덜미와 등에 달라붙은 여자의 뒷모습. 주름진 의상과 가늘고 헝클어진 그녀의 머리카락은, 그녀가 끌고 있는 고단한 삶과 함께 보는 사람에게 야릇한 성적인 연상을 불러일으킨다.(p.41) 구본창이 의식하고 있거나 그렇지 않거나, 그가 한국에서 발표한 초기의 작품 가운데에도 이처럼 죽음과 성을 암시하는 장면이 자주 나타나고 있다. 죽음과 에로스는 때로는 동전의 앞뒤 면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한편 같은 시기에 제작된 컬러 사진들에는, 눈부신 햇살을 받은 유리창이나 겨자빛 건물 벽, 붉은 신호등 위의 삼각형 도로 표지판, 줄무늬 천막 위에 드리워진 비둘기의 그림자, 초록색 철망과 흰색 목책(木柵), 낮게 내려앉은 회색 빛 하늘 등, 대상이 갖고 있는 순수한 형태와 색채의 균형, 공간적인 구조가 만들어내는 긴장과 리듬을 담은 구성주의 적인 화면이 나타나는데, 그가 색채와 형태 등 조형적인 요소들에 관심이 쏠려 있었다는 것을 읽을 수 있다.
초기의 사진에서는 그가 갖고 있는 독특한 내면세계와 천부적인 사진적 재능을 엿볼 수 있다. 섬세하고 시적인 서정성은 그 특유의 예술적 성향으로서, 초기 작품들 속에 이미 배태되어 있었다. 파스텔조의 색면과 그림자, 간결한 구도의 화면은 지극히 환상적이고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띠고 있다. 명료한 윤곽선과 구체적인 사물의 형태에도 불구하고, 그가 보여주는 세계는 마치 공기원근법에서처럼 시각적인 체험과는 다른 수준의 심리적인 거리와 깊이를 갖고 있다. 그의 등장은 1980년대의 시대적인 분위기와 맞물려, 한국 사진 계에 새로운 국면이 출현될 것이라 예감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귀국 후 수년간 발표된 작품들은 부모의 죽음, 그리고 몇 년 사이에 너무나도 많이 변해 버린 서울이라는 도시와, 주위 환경에 대한 부적응, 심리적인 방황에 관한 개인적인 다큐멘터리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그의 자서전적인 사진에서, 그가 그때 어떤 장소에서 무엇을 보았는지를 알 수 있다. 독일에서 듣게 된 어머니의 부음과 귀국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에 맞아야 했던 아버지의 죽음은 그의 예민한 감성에 깊은 트라우마를 남기게 된다.
1985년에 발표한 연작 ‘일 분간의 독백’(pp.63-83)에는 가족들에 대한 기억과 죽음과 허무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그것은 가장 가까운 육친과의 별리라고 하는 가슴 아픈 체험을 승화시켜서 제단에 바치는 리퀴엠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나 그 노래는 격앙된 감정이 아니라 한 편의 서정시 같은 애절한 울림을 갖고 있다. 죽음에 대한 체험은 그의 작품의 기저를 이루는 독특한 정서로, 이후 작품에 반복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부모의 죽음은 내성적인 그를 한층 더 깊은 자아의 늪으로 침잠하게 만들고, 삶과 죽음에 대한 깊고 근원적인 장소로 그를 밀어 내리는 가장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중세 유럽의 화가들이 그림 한쪽 구석에 죽음을 연상시키는 기호를 그려 넣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넉 장의 사진을 하나로 묶은 컬러 작품 ‘일 분간의 독백’은, 마치 암울한 기억의 심연에서 떠오른 듯한 패시미스틱한 장면과 물체들이 오래 전에 본 미스터리 영화의 한 장면처럼, 보는 사람의 뇌리 속에 어둡게 찍혀 들어간다.
‘일 분간의 독백’이 자신의 모습을 빌려 내면의 세계를 파고 내려가려 한 것이라면, 뒤이어 제작된 연작 ‘긴 오후의 미행’(pp.85-109)은 타자에게 자신의 내면을 투영시키려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백일몽의 세계와도 같은 이때의 작품들을 통해서 그는 인간에게 주어진 불확실한 삶과 피할 수 없는 죽음이라는 명제를 다루고 있다. 빛이 그림자에 의해서 성립되는 것처럼 죽음과 성(性)은 동전의 양면처럼 동시에 존재한다. 그는 그림자의 효용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일 분간의 독백’과 동일한 형식으로 제작된 흑백사진 연작 ‘긴 오후의 미행’에서는 타나토스의 불길한 그림자와 함께 에로스의 뉘앙스가 짙게 드리워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헝클어진 채 등뒤에 엉겨 붙은 긴 머리칼, 신체의 일부분이 가려진 채 은밀하게 노출된 목과 손과 다리 같은 맨살, 유령처럼 대형 수조를 부유(浮遊)하는 미끈거리는 촉감의 물고기…. 그가 의식하고 있거나 그렇지 않거나, 죽음과 성은 분명 그의 의식 깊은 곳에서 서로 이어져 있고, 죽음이 갖고 있는 속성상 그들 소재의 선택과 보여주는 방법은 필연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카메라를 둘러메고 미지의 거리를 기웃거리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 사진은, 물리적인 세계의 외관을 기록하거나 아름다움을 실현시키려는 욕망의 도구만으로 그 기능을 제한시킬 수 없는 큰 자유와 가능성을 갖고 태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현실세계는 나를 포함한 어떤 사람에게는 진부하고 공허하며 싫증나는 세계일 수 있다. 나에게 진정 가치 있는 것은 내 자신의 안쪽을 찾아 떠나는 모험이다. 나에게 있어서 사진이란 나 자신의 고유성을 찾아 떠나는 내면의 탐구 여행인 것이다.”
그가 보여주는 것은 결코 파노라마 같거나 스펙터클한 장면이 아니라 오히려 단편적이고 미시적인 세계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 눈앞의 완성된 순간이 아니라 조금 전에 일어났거나 아니면 앞으로 곧 일어날 것 같은 미결정의 순간들이다. 모든 요소는 대부분 화면의 중앙 부분에 집중되어 있는데, 그런 기하학적인 조화는 오히려 보는 사람의 생리적인 안정감을 마비시키는 느슨한 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주의 깊게 살펴보면, 그의 사진은 대상들이 자리잡고 있는 위치를 약간만 왼쪽으로 옮기거나 또는 아래쪽으로 내려도 전체의 균형이 깨져 버릴 듯한 미묘한 긴장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그의 사진에는 천이나 천으로 둘러싸인 물체, 새나 짐승들의 박제, 바다, 사람의 뒷모습 같은 것들이 자주 등장한다. 특히 독특한 질감으로 물체를 감싸고 있는 천은 그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그가 보여주려 하는 것은 그런 사물들의 이름이 아니라, 그런 소재들이 한 장소에 모여서 만들어지는 이차적인 이미지다. 그것은 현실의 시간 안쪽에 흐르는 또 하나의 시간, 눈에 드러나지 않는 느린 속도로 아주 조금씩 퇴화가 진행되는 시간의 바닥에 침전된 기억의 앙금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에게 직접 물어 본 적은 없으나, 나는 그의 기억 속의 바다가 창백한 햇빛 아래 칙칙하게 가라앉은 회색 빛을 띠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사진 행위는 마치 엄청난 충격을 받아 기억을 상실한 사람이 새로운 단서를 하나씩 찾아냄으로써 잃어버린 자신의 과거를 재 구축하려는 시도처럼 보인다. 형광 색 숫자의 명멸(明滅)로 표시된 시간, 반복적으로 쓰이는 오래 된 가족사진, 흰 천으로 덮인 자동차, 가는 밧줄로 겹겹이 묶인 나무들, 빠르게 시야를 스쳐 지나가는 차창 밖의 풍경, 시야로부터 멀어져 음산한 하늘 저쪽으로 사라져 가는 비행기, 부릅뜬 눈으로 카메라를 직시하는 셀프 포트레이트…. ‘일 분간의 독백’에서 그는 그렇게 절박한 몸짓으로 어두운 망각의 늪으로 사라진 아득한 기억의 파편들을 끌어올려서 사진의 프레임 가운데 붙잡아 두려 하고 있다.
독일에서 유학하는 동안 그가 가장 깊이 사랑했던 어머니의 갑작스런 부음을 들었을 때 그의 머리에 떠오른 것은 ‘4’라는 숫자였다고 한다. 이는 물론 동양의 한자어 권 지역에서 죽음을 의미하는 숫자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까지 제작된 넉 장이 한 조로 된 작품 형식, 즉 ‘일 분간의 독백’이나 ‘긴 오후의 미행’ 같은 연작들에서 숫자에 대한 그의 집착을 읽을 수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는 작품에 담긴 내용의 영원성과 숫자가 갖는 상징성의 인위적인 대비를 통해서 삶의 불확실성과 유한성에 관해 언급하려 했던 것이다. 이것은 ‘단 한 장의 사진’이나 ‘결정적 순간’에 대한 오래 된 사진의 신화를 부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질적인 시공간과 대상들을 조합하고 그들의 상호관계에서 촉발되는 충돌과 조화를 통해 시각적 심리적 효과를 노리는 복수의 사진에 의한 구성이, 물론 그에 의해 처음으로 시도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만일 그가 한국의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했다면 이런 이단적인 방법을 시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개개의 장면들 자체는 지극히 일상적인 것이다. 넉 장으로 묶인 이미지들은 처음부터 서로 연결되는 스토리나 순서가 없기 때문에 어떤 장면으로도 재구성이 가능하다. 이러한 자유로운 형식은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회상과 연상 작용을 유발하여, 원래의 장면에서 읽을 수 있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의미를 생성시키는 가능성을 열어 준다. 그것은 그때까지의 많은 사진가들이 사진의 본성으로 믿어 왔던 객관적이고 유일무이한 대상에 대한 지시성과는 분명 구분되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가 사진을 현실의 외관을 기록하는 것으로서가 아니라 자신의 내면적인 리얼리티를 재현해내는 도구로서 매우 효과적으로 이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평범한 일상의 외관을, 아무런 변형을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다중 적인 의미 체로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작품 가운데에 집요할 정도로 끈질기게 셀프 포트레이트를 인용하고 있다. 현재를 과거로 전위시키고 시간을 화석화하는 것은 잔혹한 일이다. 그것은 사진에 의한 일종의 자살행위라고 할 수 있다. 구본창의 작품을 읽기 위한 키워드는 현실에서 결핍된, 또는 현실 가운데에는 존재하지 않는 다른 차원의 리얼리티를 어둠에 묻힌 기억의 심연으로부터 끌어내려고 하는 그의 의지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초침이 움직이는 속도에 따라서 진행되는 현재의 삶을 어떤 방법으로도 되돌려 놓거나 앞으로 나아가게 할 수 없다. 구본창은 기억의 단편을 모아서 다시 편집하거나 현실의 시간과 공간을 찢고 이어 붙이고 핀으로 꽂아서 영원히 화석화하려고 한다.
1995년에 발표한 연작 ‘숨(Breath)’(pp.111-125)에는 초침이 떨어져 나간 회중시계와, 못과 가죽끈에 매달려서 한 자리에 걸려 있던 어떤 물체가 오랫동안 흔들려서 벽면에 만들어낸 검은 흔적, 원통형 유리병의 포르말린 액에 거꾸로 담겨 있는 커다란 물고기 표본, 삼각형으로 접은 유산지에 갇힌 나비,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의 병든 신경세포처럼 불길한 가지를 뻗치고 있는 거대한 나무, 흙더미가 만들어낸 비닐 속에 갇힌 듯한 사람의 그림자 모양들이 찍혀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시간의 유한성을 은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연작에는 임종 직전의 아버지의 얼굴을 바로 옆에서 찍은 초상사진과, 운명적인 것을 암시하는 듯한 가늘고 긴 손가락을 가지런히 모은 손의 사진이 들어 있다. 임종을 앞둔 아버지의 마지막 숨소리와 그것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그의 심경이 전해지는 것 같아 차마 직시하기 어려운 작품이다. 그러나 어머니에 이어 아버지의 죽음이라고 하는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의 경험들은, 그가 사진가로서 보다 먼 길을 걸어 나가기 위해서 거치지 않으면 안 되었던 통과의례와도 같은 것이었다.
‘숨’ 연작을 전시했던 전시장 벽에는 불로 태운 인화지가 함께 설치되어 있었다. 타다 남은 재가 아직 그대로 붙어 있는 인화지는, 그곳에 기록된 이미지로서가 아니라 이승의 생명과 유현(幽玄)한 죽음의 세계를 잇는 상징으로서의 인화지의 물성(物性) 그 자체로 제시된 것이다. 그리고 그가 인화지를 태우는 행위는 사자(死者)를 영겁의 세계로 떠나 보내는 결심이고, 어쩌면 ‘숨’은 구본창에게 과거와의 결별을 의미하는 제의적(祭儀的)인 작업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 작품이 발표된 것이 1995년이라는 사실에도 주의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그가 거의 십 년 이상을 집요하게 천착해 온 죽음과 내면의 의식이라는 개인적인 명제로부터 한 발 뒤로 빠져 나와서, 보다 보편적인 예술의 문제에 눈을 돌리게 되는 시점과 일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후 발표된 연작 ‘시간의 손’은 오래 된 벽의 자국 위에 농부의 거칠어진 손바닥을 오버랩 시킨 이미지로, 시간의 경과와 삶의 흔적이 만들어낸 이미지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숨’과 같은 맥락의 작품으로 볼 수 있다. 한편 이 ‘시간의 손’은 오랜 시간 동안 벽에 내려앉은 먼지를 찍은 ‘시간의 그림’ 연작의 예고편이라고 할 수 있다.
‘긴 오후의 미행’이 끝나는 1990년 무렵부터 구본창은 인체를 소재로 한 작업을 시작한다. 어두운 암실에서 미싱으로 박아 이은 미감광 인화지 위에 형상화된 인체를 정착시킨 연작 ‘태초에(In the Beginning)’(pp.127-131)는 강력한 에너지와 역동성을 갖고 있다. 1985년부터 1990년까지의 그의 작업이 은유적이고 상징적인 표현이었던 반면, 이 작품부터는 대상이 매우 강하고 직접적인 모습으로 화면에 나타나고 있으며, 작가가 던지는 메시지도 그만큼 강렬한 색채를 띠고 있다. 그에게 태생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예술적인 재능과 기교를 작품의 제작과정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것도 이 무렵부터다. 불규칙하게 이어진 인화지와 표면에 난 재봉틀의 바늘자국, 얼기설기 늘어진 실밥은, 보는 사람에게 고통을 강렬하게 환기시키는 힘을 갖고 있다. 미 감광 인화지들을 미싱으로 꿰매고 그 위에 상을 투사해서 인화하는 방법으로 제작된 ‘태초에’의 기원은 초기의 자화상으로 거슬러올라간다. 그는 “자화상을 통해서 내 개인적인 이야기보다는 오히려 객관적이고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이미지를 추구하려고 했다”고 이 시리즈를 시작하게 된 동기를 말한다. 존재의 문제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물질과 이미지를 잇는 방법을 통해서 찾아보려 했던 것이다.
그에게 태초의 인간은 낙원에서의 행복한 존재가 아니라 선택의 기로에 서서 번민하고 고통 받는 인간이다. 인간의 삶이 선택의 연속이라고 한다면, 번민하는 모습이야말로 태초로부터 이어져 온 숙명적인 존재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나는 미지의 불확실한 미래에 관해서, 그리고 운명을 거역할 수 없는 삶에 관해서 항상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얼마나 많은 선택을 해야 하는가. 또한 우리가 스치는 많은 우연들이 미래의 필연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얼마나 신기한 일인가.” ‘태초에’에서는 이런 선택을 상징하는 소재로서 둥근 공이 자주 등장한다. 커다란 공은 자신에게 던져진 질문에 대한 선택과 갈등을 암시하는 중압적인 상징물로 쓰이고 있다. “겹겹이 쌓인 여러 장의 인화지로는 삶의 무게를, 그리고 신체 이미지 위에 상처를 남기는 재봉선의 바늘자국을 통해서는 삶의 상처를 은유(隱喩)하려 했다. 인화지를 연결할 때 실을 사용한 것은 그것이 끊어질 듯 이어지면서 끊임없는 인연을 나에게 연상시켜 주기 때문이다.” 그의 말에서 인화지를 꿰맨 실은 모든 것을 하나로 이어 줄 뿐 아니라 삶의 과정에서 받은 상처를 치유하는 매개체로 기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뒤이어 발표한 ‘굿바이 파라다이스(Good-bye Paradise)’ 연작(pp.132-137)은 유제를 바른 두꺼운 한지 위에 인화된 나비와 곤충의 이미지들을 마치 작은 나무상자 안의 표본처럼 가느다란 금속 핀으로 꽂아서 고정시켜 놓은 흑백 작품들과, 새나 사슴, 거북이 같은 작은 생명체들을 뢴트겐 사진처럼 만들어서 합성한 푸른 모노크롬 색조의 포토그램 이미지로 구성되어 있다. “오늘도 수많은 새와 나비와 개구리들이 이 땅에서 사라지고 있다. 수많은 꽃과 풀이 짓밟히고 수많은 나무가 잘려 나가며 크고 작은 생명들이 이 세상에서 영원히 소멸되고 있다. 이들의 덧없는 생명은 박제로 만들어져 사람들에게 눈요기로 제공되고 있다. 나는 오랫동안 나의 감성과 의식을 표현하는 일에 몰두해 왔고, 나의 고독하고 아프고 외로운 감성들은 사진 속에 그대로 담겨 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작은 새나 나비, 한 그루의 나무에서 나와 같은 그런 감정들을 읽었다.” 이 말에서 그의 상처받기 쉬운 여린 감성을 읽을 수 있다. 그리고 그 독특한 전시방법은, 짧고 덧없는 이들 생명을 더욱 비극적인 것으로 보이게 만들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뿐 아니라, 사진의 본성인 무한복제의 가능성을 차단하고 작품에 물질적인 오리지널리티를 부여함으로써 작품의 상품적 가치를 높이는 효과를 만들어내고 있는데, 이점을 그가 계산했으리라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의 사진을 구성하는 시각적 성질들은 사전적인 의미를 거부하고 그 배후에 있는 애매 모호한 상징적인 의미를 지시하고 있다. 마치 망각의 심연에서 떠오르는 듯한 빛 바랜 가족사진이나 기시감(旣視感)을 환기시키는 일상의 단편들, 태내(胎內)와도 같은 어두운 공간 속에 잉태된 인체, 상형문자처럼 극도로 단순해진 형상의 반복적인 배열….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이러한 감각 특성들은 바로 이 상징적인 차원의 의식내용을 표면에 떠올리기 위한 매개체로서 작품 가운데 인용되고 있다.
최근의 ‘화이트(White)’연작(pp.139-141)에서 그의 작품세계는 다시 한번 다른 국면으로 이행하게 된다. 그는 이런 변화의 이유를 “대상에 집착하지 않고도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이가 들면서 점차 관대해져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관조적이 되었다”라는 말로 설명한다. 또, “그 이전의 작업에서 구체적으로 보여주려고 애썼던 많은 형태들은 단순한 붓질을 반복하는 것처럼 형태를 점점 해체해 나가게 되었다. 이번 연작에서 나는 하얀 배경에 몇 개의 획만으로 그려진 동양화의 절제된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싶었다. 또한 모든 조형의 기본적 요소인 점과 선과 면만으로 화면을 단순화하고 싶었다”라고 말한다.
작품의 구성요소인 소재와 색채와 형태를 최소한으로 억제하고 개인의 주관적인 감정이나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 하는 미니멀리스트의 태도는 다음의 언급에서도 읽을 수 있다. “‘시간의 그림’ 이래 나는 ‘단순함’의 아름다움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하얀 담 벽에 붙어 있는 담쟁이덩굴 줄기들은 겨울이 되어 잎이 떨어지거나 혹은 뿌리가 잘려서 말라비틀어진 것으로, 생명의 흔적과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해준다. 처음 그 장면을 보았을 때 벽의 흰 점으로 보이던 담쟁이덩굴의 흔적들은,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있는 동안 식물의 단순한 일부분이 아니라 인체 속의 작은 실핏줄이나 신경조직의 마지막 세포, 혹은 무한한 우주 공간에 떠 있는 별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것을 알게 되는 순간 나는 전신에 오싹한 전율을 느꼈다. …나는 모든 생명체, 그리고 세월의 흔적을 최소의 단위들로 표현하고자 한다. 그러한 최소 단위들은 때로는 몇 개의 점이나 선으로 표시되지만, 그들이 숨을 쉬는 형태로 보여지기를 바란다.”
‘시간의 그림’은 콘크리트 벽과 시멘트 바닥에 미세한 먼지나 비둘기의 배설물이 오랜 시간을 두고 쌓여서 만들어낸 흔적들을 찍은 것이다. 이미지는 극단적으로 클로즈업되어 구체적 형태를 잃고 있다. 하단을 가로지르는 어두운 부분과 밝은 상단으로 분리된 화면은 마치 검은 바다와 하늘을 찍은 것처럼 보인다. 흰 벽에 말라붙은 담쟁이덩굴을 찍은 ‘화이트’나, 눈 위에 떨어진 솔잎을 찍은 ‘자연의 연필’은 어느 것이나 종이 위에 그려진 추상적이고 섬세한 드로잉처럼 보인다. ‘시간의 그림’ 이후, ‘화이트’, ‘자연의 연필’, ‘눈’ 등에서 대상은 스트레이트하게 찍혀 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 구체적인 단서를 보여주지는 않는데, 그것은 그가 개인적이고 요설적(饒舌的)인 세계를 떠나 순수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일에 관심을 집중시키게 되었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
이때의 작업은 얼핏 그의 과거의 작업과는 단절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는 삶과 죽음, 유한한 존재에 대한 관심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단지 그 관심을 표현하는 방법이 달라졌을 뿐이다. 그가 그리는 흔적들은, 작은 먼지들이 오랜 세월을 두고 쌓여서 산과 바다와 구름을 이루는 것처럼 인간과 우주의 생명을 구성하는 기본적인 요소들이다. ‘눈’에서 구본창은 “땅이나 풀 위에 내린 눈이 녹아 사라지는 덧없음을 사진으로 담고자 했다”고 말한다. 오랫동안 그의 안쪽에 자리잡고 있던 삶과 죽음에 대한 번민(煩悶)으로부터 벗어나, 보다 심오한 생명의 윤회를 생각하게 된 것이 아닐까. 그는 좀더 관조적인 태도를 갖게 되었으며, 그것은 이전보다 강한 생명력과 순화된 감정으로 작품에 나타나게 된다. ‘눈’과 ‘화이트’ 등의 작품에서는 구체적이고 복잡한 요소들이 배제된 회색이나 흰색으로 된 모노크롬을 배경으로 잎이 모두 떨어져 버린 담쟁이 덩굴이나 눈 위에 떨어진 솔잎 같은 식물들이 비 원근법적인 평면의 세계를 만들어내고 있다. 식물들은 간결한 화면으로 인해 그 순수성이 극도로 과장되고, 보는 사람의 상상력을 강하게 자극한다.
고독하지만 자유로웠던 유럽 체재에서 돌아온 후, 구본창은 1980년대 중반의 한국 사진계에 드리워진 폐쇄적인 공기를 스스로의 힘만으로 헤쳐 나가야 했다. 사진이 사회적인 현실에 관여하거나 탐미적이고 이상적인 가치를 위해서 봉사해야 하는 것으로 믿고 있던 당시의 보수적인 사진 진영의 눈에 그의 사진은 불순하거나 이단적인 것으로 비쳤다. 그러나 그때까지의 금욕적이고 편협한 사진에 넌덜머리를 내고 있던 젊은 사진가들에게는 달랐다. 귀국 후 몇 차례의 개인전을 통해서 그가 보여준 극히 개인적이고 내밀한 표현은, 새로운 탈출구를 찾고 있던 젊은 사진가들의 눈에는 매력적인 것으로 비쳤던 것이다. 당시 한국 사진은 늦건 빠르건 전 지구적인 규모로 진행된 예술적 변용의 흐름을 수용하지 않으면 안 될 시점에 닿아 있었고, 구본창이 주도한 「사진-새 시좌」전은 침체한 한국 사진계에 내놓은 젊은 세대 최초의 강력하고 활기찬 어필이었다. 이 전시는 그때까지의 기능주의적 교조적 사진을 추종하지 않고 어디까지나 자신이 선택한 취향에 따라 표현하는 새로운 규범을 만드는 계기를 촉발시켰고, 젊은 층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실제로 그 움직임은 1990년대 이후의 다양하고 실험적인 표현을 통해서, 사진의 독자적인 메커니즘의 족쇄를 풀고 자유로운 예술매체로서 자립해 나가려는 움직임으로 확산되었다. 비록 그들이 현실에 어떻게 감응하고 있는가, 어떤 의견을 말할 것인가에 대한 독자적이고 명확한 개념을 세우지는 않았지만, 새롭고 활기찬 분위기가 이들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인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구본창이 있었다. 1991년부터 세 차례에 걸쳐 치러진 「한국 사진의 수평」전에서도 그는 몇 사람의 동세대 사진가들과 함께 중심적인 역할을 맡았다. 이들 그룹전에 참가한 젊은 사진가들은 색깔도 목소리도 모두 달랐으나, 한결같이 왕성한 실험정신과 어떤 것으로도 자신의 표현충동을 제한시키려 하지 않는 자유로운 태도를 갖고 있었고, 이들은 이후 한국 사진의 새로운 기류를 만들어 나간다.
구본창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일관된 주제를 찾는 것은 가능한 일인가. 그가 사진을 해 온 것은 이십 년이 채 안 된다. 이제 중간쯤 접어든 그의 작품세계를 짧은 말로 정의할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의 그의 사진의 특질 가운데 하나로 ‘삶과 죽음에 대한 사유’를 들 수 있을 것이다. 타국에서의 생활과 부모의 죽음, 귀국 후의 환경 적응 과정에서 그는 상당 기간 동안 적지 않은 정신적인 공황을 겪었다. 그는, 누에가 시간을 들여 조금씩 고치를 짜 나가듯 아무도 피할 수 없는 죽음과 삶에 대한 실존적인 물음들에 형태를 부여해서 작품을 만들어 왔다. 그런 동안에, 그의 관심이나 작품의 스타일이 몇 차례 바뀌었다. 하나의 유형에 자신의 창의력을 매어 놓지 않으려는 자유스러움이야말로 그의 스타일일 것이다. 구본창은 표현행위의 주체인 자신과 자신이 마주하는 외부현실을 엄격하게 대치시키려 하지 않는다. 바꿔 말하면 사진은 그에게 현실을 인식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는 것이다. 작품의 중심에는 항상 그 자신이 놓여 있고, 사진은 그 가장 깊은 부분에 도달하기 위해서 그가 선택한 행위일 따름이다. 그는 소위 스트레이트하게 찍는 사진가는 아니지만, 그가 만들어내는 세계는 결코 허구가 아니다. 그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상상력이나 감성, 기억, 갖가지 상념이야말로 그에게는 어떤 현실보다 리얼한, 살아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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