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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원의 작가론 - 3) 안해룡 : 기록의 역사적 행보
기록의 역사적 행보
김석원(쿤스트독미술연구소 학술지원 팀장, ksw5053@naver.com)
안해룡은 시각예술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사진과 영상을 함께 사용한다. 그의 관심은 한국 이 분단국가로서 겪게 되는 전쟁과 국가 간의 이데올로기(Ideologue)에 대한 문제, 제도권 밖의 학생들의 교육적인 측면등 사회 각 분야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안해룡의 사진과 영상 <신성불가침 지역,1996>, <아이들아, 이것이 우리 학교다 -도요하시,2006>,<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 My Heart Is Not Broken Yet, 2007 >를 시대 순으로 살펴보고자 하며, 그의 다양한 사회적 관심과 오랜 시간 동안 축적된 사진과 영상은 많은 관객에게 정서적인 울림을 주기에 충분하다.
● 신성불가침 지역(1996년)
“3만7천명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한반도에서 미군은 신성불가침(神聖不可侵)한 성역이다. 비행기 등의 훈련 소음에 피해를 당해도, 군사시설을 위한 공여지(供與地) 때문에 사유재산권이 침해를 받아도, 오폐수와 폐유를 무단 방류해서 환경을 오염시켜도 미군은 결코 건드릴 수 없는 성역이다. 심지어 미군이 한국인에 대해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도 주권을 가지고 재판권을 행사할 수 없었다”.
- 작가의 작업노트 중에서
신성불가침지역1996
안해룡이 참여한 전시 <지속하는 순간 _ 오키나와 열도와 한반도: The Persisting Moment _ Okinawa Archipelago and Korean Peninsula>는 모마(MOMA) 산하에 있는 P.S.1에서 1996년 전시를 한 것이다. 이 전시회는 미군기지에 대해서 한국인 사진가 4명과 오키나와 사진가 2명이 각자의 눈으로 기록한 다큐멘터리 사진전이다.
카즈마 코즈에가 기획한 사진전의 역사적인 배경을 살펴보자. 이 기획전은 일차적으로 미국에서 멀리 떨어진 일본영토에 있는 오키나와의 미군 군사기지와 그 주변의 모습들을 기록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단순하게 일본의 영토에 있는 오키나와의 모습만 보여주려고 한 것이 아니란 것이다, 오키나와는 역사적으로 한국과 밀접한 관계성을 가진다. 한국은 현재까지 분단국가로서 1945년 이후 지금까지 미군기지가 주둔해 있으며, 1945년 일제로부터 해방되었지만, 지금 일본에서는 그 당시의 역사적인 연결교리가 오키나와 에서 현재까지 진행형으로 지속되고 있다. 그 원인과 결과는 한국과 일본의 현실적인 모습이기 이전에 현대의 글로벌 화된 시대에 불행한 현실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신성불가침지역1996
현재, 오키나와, 한국에서는 60년 동안 미군기지가 동일하게 거주하고 있다. 오키나와 그리고 한국에서는 미군의 군사기지 때문에 여러 가지 문제가 악화되고 있다. 그것을 순차적으로 나열하면, 주변 민간인의 생명과 존엄성,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 등은 양쪽의 국가에서 복잡하게 얽혀 있다. 결국 이 기획전의 최종적인 목적은 사진가들의 시각을 통해서, 역사의 중요한 순간이 지금까지 어떤 식으로 지속되고 있는지에 대한 인과관계(因果關係)를 구명하고 자 하는 것이다.
안해룡의 <신성불가침 지역> 을 살펴보자. 첫 번째 사진을 보면, 한국의 미군기지 앞에서 시민들이 항의를 하는 사진으로서, 스트레이트 하게 촬영한 사진을 다시 회화적인 기법으로 재구성했다. 판 화지를 바탕으로 제작한 사진은 수체화의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작가는 이 장면을 스트레이트 하게 보여주는 것보다는 자신의 기억처럼 남아있는 잔상처럼 표현하고 싶었다고 한다. 전반적으로 어둡게 처리한 화면구성은 얼굴 표정을 중점적으로 보여주기 보다는 전체적인 상황중심적인 효과를 준다. 미군, 시민, 전경을 둘러싼 사람들과의 긴장감은 실제보다 더 가감된 이미지를 유도한다.
● 아이들아, 이것이 우리 학교다 -도요하시(2006년)
“오늘날 미술가의 작업은 전통적인 창작행위와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다. 그들은 물질적인 미술품의 생산만을 자신들의 행위와 역할로 인식하기보다는 조사, 인터뷰, 자료수집, 진행 등의 프로세스를 내포한 행위에서 자신들의 역할을 찾고 있다. 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물질적인 작품이 결국 “자본화”로 이어지는 것에 대한 비판적 시각의 반영이며, “시간성”과 “장소성”의 문제를 미술의 영역에 적극적으로 도입하려는 의지의 소산이다“.
- 김강의 전시 서문 중에서
안해룡의 <아이들아, 이것이 우리 학교다 -도요하시>를 살펴보자. 도요하시는 일본의 나고야 시에서 1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인구는 약 4만 명가량의 조그만 시이다. 6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도요하시의 조선 학교를 약 5년 동안 작업을 한 것이다.
작가는 그곳에서 집단(커뮤니티)과 접촉해서 그들과 함께 어울려서 하나의 이야기를 펼쳐나가고 있다. 작가는 도요하시의 조선 학교의 모습을 추적하기 위해서 과거의 졸업앨범 사진은 수집하고 현재의 모습은 그들과 함께 어울려서 기록을 해나간다.
아이들아,이것이 우리학교다-_도요하시
위의 사진을 보면, 표면적으로는 귀엽고, 생동감 있는 집단의 모습들을 포착하고 있으며, 그들만의 관계성이 사진에서 조화롭게 구성되어있다. 예를 들면, 학교에 가야금을 치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축구를 하는 모습 등이 그러하다. 이런 모습은 한국에 있는 평범한 학교와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들의 내면을 조용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조선학교는 순수한 자립으로 형성된 노고가 있음을 알게 된다.
일본에서 전시에 대해서 작가의 글을 인용하면 “도요하시 프로젝트의 첫 전시는 2006년 2월4일 도요하시조선초급학교의 학예회가 열리는 날 학교 복도와 계단의 벽을 이용해 전개되었다. 복도에는 과거의 학교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복도에는 학부모의 앨범에서 찾은 과거 학교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내가 4년 동안 오가면서 찍은 사진과 함께 전시되었다. 동포들은 자신들이 만들어온 조선학교의 역사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그것은 잊고 있었던, 아니면 개인의 기억 속에만 담고 있었던 도요하시조선 초급학교의 역사를 외화 시키는 과정 이었다” 고 기술한다.
2008년 서울에서의 전시는 문래동의 작가들이 있는 예술 공간에서 철공소의 2층과 3층 공간을 이용하여 전시하였다. 일반적인 사진전은 깔끔한 갤러리를 상상하게 되지만, 안 해룡 의 사진전은 골목의 구석에 위치한 허름한 건물의1층부터 옥상까지 계단을 올라가며 전시된 것이다. 외견상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는 공간을 예술 공간으로 기묘하게 조합시켰다.
옥상으로 올라가는 중간지점에는 영상을 보여주고, 건물 밖에는 8 -16m 가량 되는 학교의 전경을 찍은 사진을 건물에 붙였다. 일본에 있는 학교를 서울의 공간으로 이동시킨 것이다.
외부에서 보면 일반적인 학교모습처럼 보인다. 학교의 입구도 똑같이 재현했으며, 서울에서 도요하시의 조선 학교 공간을 간접적으로 체험 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다른 사진에서는 도요하시초급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하고, 현재는 도요하시의 학부모가 된 재일동포 2세 박용배 씨와 도요하시 학부모들이 현판을 다는 모습을 촬영한 사진이 눈에 뛴다.
●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 (My Heart Is Not Broken Yet, 2007년)
안해룡의 사진을 보면, 자신이 위안부출신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증언한 김학순 할머니의 모습이 보인다. 할머니는 자신의 집을 마치 박물관처럼 만들었다. 작가는 할머니 사진을 한 장을 보여주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할머니가 어떤 일을 해왔는지 증명을 하고자 한다. 그리고 텍스트와 이미지를 조합해서 사진을 보여준다. 이런 행위를 하는 이유는 사람들의 시선을 고정시키고 관람자 스스로가 해석할 수 있게 배려한 장치인 것이다. 관람객들은 사진 앞에 자연스럽게 머물면서 집중해서 바라보게 된다. 작가는 이 사진을 다시 조합해서 영상을 만든다.
안해룡은 위안부 할머니의 모습을 비디오로 촬영을 한 후에, 이것을 다시 사진과 영화로 제작한다. 안해룡의 사진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 My Heart Is Not Broken Yet, 2007 >는 영화 제목에서 택스트가 큰 의미를 부여한다. 이 문장에서 특히 마음이란 것은 논리적으로 규정하기가 쉽지않다. 마음을 규명하는 문제에 있어서 심리학적으로 접근하게 되면 철학적, 혹은 인문학적으로 공격의 대상이 된다. 그것은 마음을 정의하는 부분에 있어서 명증성을 갖는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 보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마음에 대한 정의를 모르고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기억과 마찬가지로 구체적인 실체를 이끌어내기는 쉽지가 않다. 마음은 상대방이 느낄 수 있지만 알 수는 없다.
2008년 6월에 개봉한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 My Heart Is Not Broken Yet, 2007 >는 일본인이 아시아를 침략하던 시대에 전쟁에 끌려간 조선인 위안부 송신도 할머니가 일본에서 10년 동안 재판을 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일본의 시민단체와 개인들의 자발적인 모금을 통해서 제작된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는 기존의 위안부와 관련한 다큐멘터리 영화의 제작 배경과는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송신도 할머니는 다른 이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자신의 과거를 대중들에게 드러내고, 일본 정부에게 공개사과를 요구한다. 이 영화를 보고 난 후에 느껴지는 것은, 다른 사람이 겪었던 괴로움에 대해서 위로를 한다는 것은 어떤 값어치가 있을까? 그 분의 상처에 대해서 우리는 공감할 수 있겠지만, 본질적인 상처를 회복할 수 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는 자신의 아픔을 얘기하는 과정에서 무척 솔직하고 담담한 어조로 말씀하신다. 송신도 할머니의 인터뷰 중에 임신한 아이를 본인의 자궁 속에 손을 넣어 꺼내서 없애 버릴 수밖에 없었던 내용이 있다. 관람자의 입장에서 이 대목을 듣는 순간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제3자의 입장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현실을 본인은 어떻게 이겨내셨는지 생각해본다. 일본이 저지른 역사적인 잘못은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지만, 일본은 아직도 그들의 과거에 대해서 반성하는 기미가 보이지 않다.
일본 정부의 사과를 받아내는 재판에서 진후에 할머니가 하신 말씀 중에 ‘나는 그 판결에서 졌지만 내 마음은 결코 지지 않았다’. 는 외침은 관객들에게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는 것은 단순히 재판에서 지지 않았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할머니는 불합리한 재판과 함께 자신의 소신이 지지 않았다는 말을 한 것이다.
위안부를 찍은 이유에 대해서 작가는 남자로서 위안부 작업을 하는 것은 괴롭다고 얘기를 한다. 그리고 이런 작업 과정이 자연스럽지가 못하다고 한다. 마치 범죄자가 피해자를 질문하는 것 과 같은 심정이 든다고 얘기한다.
일반적으로 다큐멘터리 영화는 다른 장르의 영화에 비해서 관객들의 몰입도와 참여도가 높다고 볼 때, 관객의 감정이입도 순간적으로 강하게 스며들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사람들, 혹은 자신의 삶이 건강하지 않는 이들에게 이 영화를 권하고 싶다. 자신의 삶이 힘들고 괴로워도 인생은 현재 진행형으로 계속된다. 이런 표현방법이 고답적일 수 있겠지만, 언젠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긍정적인 사고가 생기고,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시각이 생기는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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