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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과이의 한국인, 일본인 작업 - 강제욱
글.사진 / 강제욱 (사진가)
강제욱은 서울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을 수료했다. 2001년부터 <지오>, <시사저널>,<아시아나 컬쳐>,<사진예술> 등 다양한 국내외 매체에 사진과 글을 기고하고 있다. 5회의 개인전을 열고 제 5회 사진비평상 작품부분 우수상 을 수상하였으며 30여 회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저서로는 '낡은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청어람미디어,공저)가 있다. 최근 2년3개월동안 남미에서의 봉사 활동을 마치고 귀국했으며 사진가로 활동 중이다.
E-Mail : kangzeus@hotmail.com
Homepage : www.kangjeauk.com
예전에 다큐멘터리 사진가를 꿈꾸는 후배들을 위해 기획과 취재 과정 그리고 발표 등에 관한 연재를 한 적이 있다. 이번에 새롭게 연재될 내용은 앞서 언급했던 연재의 후편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본 연재는 교재의 형식을 벗어나 필자의 경험에 비추어 한명의 다큐멘터리 사진가가 어떠한 생각을 갖고, 어떤 과정을 통해 기사를 발표 하는지 보여주는 글이 될 것이다. 이를 통해 후배들에게 선배의 입장에서 사진가 강제욱이 현장에서 체험하며 느꼈던 소중한 경험들을 따끈따끈하게 전달하고 싶다.
기록의 의미와 작업의 목표
다큐멘터리 사진은 시대의 기록이라는 매우 중요한 목적을 갖고 있다. 만약 현시대를 기록하는 다큐멘터리 사진가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 100년 후 1000년 후에 후대들은 단편적인 지식들로만 장님 코끼리 만지듯 현재의 모습을 추측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처럼 다큐멘터리 사진은 예술적 표현에 앞서 ‘시대의 기록’이라는 중대한 목적을 갖고 있다. 목적만 놓고 본다면 예술의 추구는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예술이 삶의 연금술’이라는 점을 놓고 본다면, 어쩌면 가장 이상적인 예술의 모습이 바로 다큐멘터리 사진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다큐멘터리 사진은 시대의 기록이며 동시에 대상에 대한 헌신과 사랑이다. 대상에 대한 이미지의 착취행위만 일삼는 다면, 이는 진정한 다큐멘터리 사진가의 태도라고 볼 수 없다.
파라과이에서 동양인 이주민에 대한 작업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을까? 첫째로 디아스포라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던 전후 한국과 일본의 상황에 대한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본인은 작업을 하기에 앞서 내 작업의 목표를 먼저 설정한다. 필자가 파라과이에 한명의 봉사자로서 파견되었던 것은, 한국을 대표해 파라과이인들을 돕고 한국과 파라과이 두 나라간의 우정을 쌓는데 작은 기여를 하기 위해서였다. 따라서 파라과이에서의 봉사활동은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한국인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는 것이 중요했다.
하지만 낮선 타국에서의 봉사활동이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필자가 처음 파라과이에 와서 좌절 했던 부분은 이러했다. 한국정부의 지원으로 제3세계의 나라에 온다면 사명감도 사명감이지만 어느 정도 우쭐함도 갖게 된다. 그러나 막상 현지에 도착해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한국의 존재를 모르는 경우도 허다하며 그냥 동양인이라고 무시하는 일도 많기 때문이다. 파라과이가 그랬다. 한국이라는 나라를 몰랐고, 한국인뿐만 아니라 동양인을 은근히 인종적으로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한국이 경제적으로 세계 11위에 올랐다고 해서 우리가 문화적으로도 선진국이라고 말하기는 힘들 것이다. 다른 나라들이 우리나라를 바라보는 관점은 어떨까? 존재도 모르는 경우가 많고, 돈은 있다고 하지만 오히려 한국을 깔보는 나라들도 많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경제적인 저력은 보여주었지만 다른 선진국들처럼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국의 문화적인 힘과 저력을 충분히 보여주지는 못 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이 필자가 봉사자로서 개도국인 파라과이에서 생활하며 가장 크게 느꼈던 부분이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지금 가장 절실한 것은 파라과이에서 빵을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식량을 나눠줘야 할 정도로 빈곤한 나라는 아니다.), 문화교류에 더 힘을 쓰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도국이 스스로 문화경쟁력을 갖고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주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의 문화를 알리는 형식으로 말이다. 한국이 ‘문화선진국’이라는 이미지를 세계에 알리지 않는다면, 세계 경제 5위의 경제 대국이 된다 하더라도 아무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졸부국가가 될 것이다. 우리보다 경제력이 떨어지거나 특별히 나을게 없는 아르헨티나, 캐나다에서도 한국인 여행자는 입국심사장에서 주요주의 대상으로 대접 받는다. 혹시 불법체류로 남아서 돈 벌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오해 말이다. 이 얼마나 황당하고 기가 막힌 일인가? 앞으로는 절대로 이런 일이 생겨서는 안 될 것이다.
물론 필자가 민족주의 혹은 국가주의를 선도하려는 것은 아니다. 국가라는 개념은 어떻게 보면 정치, 혹은 정치지도자 들이 만들어낸 실용적인 체제에 불과하다. 그리고 민족이라는 개념 또한 이념적 목표를 위해 만들어낸 허상일 수 있다. 민족이라는 단위는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짧게는 100년 안에 소멸할 수도 있다.) 민족은 다양한 민족으로 쪼개지고 혼합을 이뤄 새로운 민족이 탄생되고 또 소멸한다. 민족이라는 개념은 고정 되어 있지 않고 끊임없이 변한다. 한국인이라는 민족의 개념도 그렇다. 정착민과 이주민(혹은 유목민)의 끊임없는 교류 혹은 침략에 의해 여러 민족이 섞이고 사라져 갔다. 그리고 그 결과 지금의 조선이라는 민족이 생겨난 것이다. 현재 한국에 있는 10명중의 1명의 사람이 외국인이라는 점을 본다면, 지금도 끊임없이 우리 민족은 변화를 겪고 있는 셈이다.
단순히 국가주의가 조장한 혈통주의의 신봉, 편 가르기 식 민족주의의 개념은 폐기되어야 한다. 한국의 문화도 그렇다. 한국의 문화가 유성처럼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한국의 문화는 수천년 동안 주변국가의 영향을 받았다. 학자들에 의하면 한국은 주변의 아시아 국가뿐만 아니라 수천년 전부터 인도,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교역을 하고 문화적으로 영향을 받고 살았다. 그리고 근현대에는 미국과 서구의 절대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어떻게 보면 우리의 정체성이란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나를 어떻게 제련하고, 이를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또 융화시켰냐? 에 대한 결과일 것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의 정체성에 대한 해답은 우리의 내부보다는 밖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
필자는 다큐멘터리 작업을 통해 너와 나의 벽을 허물고 서로를 연결시켜 주기를 희망한다. 벽은 오해를 낳고, 무지와 오해는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까지 몰고 가기도 한다. 벽은 단순한 무지함 때문에 형성되는 경우도 있다. 한국과 파라과이가 그랬다. 필자는 파라과이에서의 봉사기간 동안 한국인, 동양인의 모습을 기록하고 이 행위를 통해 두 나라의 벽을 허물고 서로를 연결시키고 싶었다. 그리고 한국과 파라과이가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교민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민은 두 나라를 연결시켜주는 매개체이기 때문이다. 파라과이의 교민들은 한국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파라과이인이기도 하니까.
작업의 진행 및 발표
필자는 사진가이지만 파라과이에서는 봉사단원이라는 신분을 절대로 망각해서는 안되었다. 내가 찍는 사진의 목표는 봉사라는 차원 혹은 봉사목적의 접근일 때 정당성을 부여 받는 것이었다. 물론 이는 나를 파견했던 코이카(한국국제협력단)가 요구했다기 보다는 내 스스로에게 정한 룰이었다. 파라과이에 있으면서(2004년 4월부터 2006년 7월까지 목공교사로 활동을 하였다.) 현지인들과의 교류와 더불어 한국인, 일본인과도 많은 우정을 쌓았다. 2년이 넘는 시간동안 틈틈이 그들의 일상과 행사를 기록하였다. 내 사진작업은 그들에게는 사진을 찍어주는 친구 혹은 사진사의 의미를 갖는다. 촬영 후 사진을 모두 그들에게 돌려주었다. 자신의 소중한 인생의 단편을 기록하는 사진으로 자신들의 앨범에 끼워줄 것이다. 마치 내가 목수로서 그들을 돕는 것과 똑 같은 행위였다. 행사가 있을 때 촬영을 요청해 오기도 한다. 그러면 난 기꺼이 가서 행사를 촬영해 주고 전달해 주었다. 내가 찍어 주어서 단순히 동네 사진사를 불렀을 때 드는 경비를 절감하는 차원은 아니다. 단순히 그들로부터 이미지를 착취하는 이방인이 아닌 그들과 친구가 되고 그들과 삶을 공유하고자 하는 것이다.
한국인 작업중 (원석이와 월드컵 응원중)
교민 1.5세대인 호세형과 부인인 혜란선배(코이카 OB단원이다.) 그리고 두 아들 원석, 원용이 그리고 이들을 통해 만난 수많은 교민들과의 만남이 내 작업이다. 아들의 100일잔치, 돌잔치에 갔고 2006년 월드컵때 함께 붉은 티를 입고 한국팀을 응원했다. 아이들이 자라는 것을 보고 함께 먹고 함께 웃고 함께 슬퍼했다. 친척 아이의 고등학교 졸업식, 교민들의 체육대회에 참여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사진을 찍어서 선물하였다. 내 작업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바로 이들과의 우정이었다. 우정의 표현으로 이들에게 할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무엇일까? 바로 현지의 잡지에 내가 기록한 파라과이에 살고 있는 한국인의 365일을 발표하는 것이었다. 파라과이에 살고 있지만 한국인들은 공동체문화가 강하다.
파라과이의 한국인_씨름대회
파라과이의 한국인_졸업식
따라서 40년을 넘게 이곳에 살아온 이들이지만 파라과이인들은 한국인을 잘 모른다. 내 작업을 통해 그 동안 볼 수 없었던 수년동안 바라온 한국인의 일상을 보여주고 싶었다. 파라과이에는 WILD 라는 패션 및 문화잡지가 있다. 문화와 관련해서는 유일한 잡지이며 다른 수십개의 파라과이 매체 전체를 통틀어 가장 우수한 퀄리티의 잡지였다. 모 회사인 emg(entertainment & media group)는 아순시온패션위크, 슈퍼모델에이젼시 등을 함께 진행하는 파라과에서 가장 규모가 큰 종합기획사이다. 파라과이 최고의 인쇄업체인 AGZ(Artes Gráficas Zamphiropolos)와 협력업체이기도 했다. WILD는 매달 한꼭지씩 사진작업을 6페이지에 걸쳐 보여주었다. 매달 수많은 사진가들이 이 잡지에 기고를 하고 싶어 안달이다. 파라과의 상업사진계를 대표하는 Martín Miguel Crespo를(아르헨티나 출신) 만났고 그의 소개로 WILD의 편집장인 Fredi Casco를 만났다. 5월에 있는 내 개인전 시기에 한국인 작업을 싣고 싶어서 만난 것이다. 그러나 이미 다른 사진가들로 스케줄이 꽉 쫘 있었으며 몇 달 후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결국 귀국하기 직전인 7월호에 실을 수 있었다. Fredi는 본업은 아티스트이다. 사진과 설치, 영상, 오브제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역사와 폭력에 관한 작업을 꾸준히 하고 있었다.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여를 했고 꾸준히 아르헨티나와 칠레등의 국가에서 열리는 국제행사에도 초청을 받아 바쁘게 살고 있었다. (사실 필자가 그의 이름은 가장 먼저 알게 된 것은 브라질 뽀르또 알레그레에서 열린 메르코수르 비엔날에 전시장에 걸린 그의 작품을 통해서 였다. ) 그는 백남준을 존경했으며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백남준추모전시의 참여 작가 이기도 했다. (이렇게 세상이 가깝다. 그리고 예술가들에게는 국경이 없다.) 작가들은 백남준의 작품을 주제로 작업을 하였다. Fredi는 TV붓다를 카톨릭문화로 재해석하는 작업을 선보였다. 놀라웠다. 6월에는 아순시온의 국립미술관에서 그의 개인전이 열렸다. 파라과이를 그리고 남미를 대표하는 작가이다. 그러나 생계를 위해 잡지사의 편집장을 하고 있었다. (나중에 Fredi의 부인인 디자이너가 내 도록을 디자인해 주고 그녀의 소개로 AGZ를 통해 인쇄를 할 수 있었다.) 잡지 기고를 위해 3~4차례 Fredi와 만났다. 기존의 작업을 보여주고 새로 작업을 보완하기로 했다. 5월 1일에 열리는 한국인의 날 행사(교민종합체육대회)도 새로 촬영하기로 요청했다. 그리고 함께 1차 셀렉트를 했으며 최종적으로 7월호에 실리게 되었다. 어느날 책을 받아 보았는데 깜짝 놀랬다. 6p의 기사가 10p로 늘어나 있었다. 작품을 수준을 떠나 그 만큼 그들의 이웃인 파라과이의 한국인들의 모습에 대한 관심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니 그 관심을 이 작업을 통해 만든 것이다. 잡지가 나왔을 때 가장 기뻐했던 사람들은 바로 교민들이었다. 이러한 기사로 인해 한국인들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파라과이에 심어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가장 부족하면서 중요한 부분이기도 했다.) 관에서 만들어 배포하는 자료집과는 의미가 달랐다. 작가를 통해 보여주는 행위는 동시에 문화적인 저력도 함께 보여주기 때문이다. 개인전도 마찬가지였다. 파라과이가 얼마나 아름다운 나라인가를 한국인 작가의 시선을 통해 보여주었고 자연스럽게 그 전시장에 한국인 교민의 파라과이에서의 삶의 단편을 기록한 작품을 함께 걸었다. 시립미술관에 이어 재파라과이 한국대사관관저에서도 다시 한번 개인전을 열었다. 김병권 대사님이 주최한 대사관 만찬의 부대행사로 열린 것이었는데 대통령부부, 부통령 부부, 내외무부 장관 등이 참석해 내 전시회를 둘러 보았다.
전시장에서 김병권 대사 니까노르 대통령 부부와 함께
전시장에서 프레디 까스꼬와 작가들과 함께
우리의 또 다른 이웃인 일본인 작업도 진행하였다. 이 작업의 일부는 ‘낡은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2편’에 실릴 예정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일본인들을 위한 작업이기도 했다. 제일 먼저 독일인 2세인(파라과이에는 타 대륙에서 온 민족 중 독일계 이주민이 가장 많다.) Gabriela와의 인연이 시작이었다. 코이카 봉사단원이 가르쳤던 시골학생이 바로 Gabriela의 어머니였던 것이다. 그녀의 집에 방문했고 우정을 쌓았다. 사진도 찍었다. 그녀의 애인인 일본인 3세인 Daniel를 만났고 그와의 인연도 시작되었다. 이들이 사는 지역은 수도인 아순시온에서 아주 멀었다. 최소 6시간에서 8시간이상 걸리는 오지였다. Daniel을 통해서 일본인마을인 Pirapo의 일본인 가족들을 섭외 해서 가족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되었다. 방문하고 인사하고 이야기하고 기념사진찍듯 가족사진 찍어주고 이런 일정을 계속 하였다.
일본인 가족 작업중
파라과이의 일본인_전통무용공연
파라과이의 일본인_스모축제
슬라이드 필름을 구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따라서 한국을 떠날 때 가져간 단 두롤의 120mm 슬라이드 필름을 이용해 작업 하였다. 아순시온에서 현상을 하였는데 결과물은 눈물이 나올 정도였다. 너무 누런색이 많이 돌았다. 누런색이 끼어 실내의 형광등 빛을 줄여 주었다고 스스로 위로했다. EMS로 한국에 보냈다. 먼저 Photonet을 통해 기사화 되었다. Photonet측과 상의를 하여 스캔과 색상보정에 심여를 기울였다. 다행히 그들의 노력으로 현상의 문제는 해결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나중에 단행본이었다. 다시 스캔을 받은 모양인데 필름 현상의 문제를 그대로 보여주는 결과물을 보게 되었다. 하여간 책이 나왔고 파라과이 코이카 사무실로 어느날 EMS가 왔다. 10권의 따끈따끈한 낡은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 2편이 들어 있었다. 가장 기뻐했던 이들은 Daniel과 삐라뽀에서 만난 일본인들이었다. 이후에 디지털 카메라로 그들의 문화(공연, 스모축제)를 기록하였고 그들에게 선물하였다. 다음엔 일본에 직접 건너가 일본인들에게 이 선물 보따리를 풀어놓을 것이다. Daniel과의 우정은 더욱 돈독해져서 이후에는 아순시온의 내 집에도 찾아와 술도 마시고 잠도 자고 갔다. 그의 가족들도 내 안부를 묻는다. 조만간 일본으로 유학을 온다고 하니 우리의 연은 계속되나 보다. 가끔 MSN을 통해 그와 대화를 한다. 생각보다 지구는 아주 좁다. 작업을 통해 사람과 만나고 이 만남이 나에겐 너무 소중하다.
이렇게 다큐멘터리 사진가로서의 가장 큰 기쁨은 작업의 결과물로서 인쇄된 책을 받아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더 큰 기쁨은 그 결과물을 대상들에게 돌려주었을 때 그들의 기쁨을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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